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찌니 Oct 10. 2023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 않을 사위

본격 남편 자랑 에세이 '빵세 리포트' 4화

남편은 우리 친정의 친가, 외가는 물론 부모님 주변의 모든 사람들 사이에 '세상에 없는 사위'로 불린다. 이렇게 장인장모에게 진심을 다하는 사위가 세상에 또 있을리가 없다는, 이미 내가 데려가는 바람에 세상에서 없어져버린 사위가 바로 우리 남편이다.


남편은 연애를 할 때부터 우리 이모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했다. 남편은 저녁에 불쑥 집 앞에 와서는 잠깐 얼굴만 보자고 오곤 했는데, 그 때마다 우리 엄마에게 드리라며 여름에는 수박을, 겨울에는 귤을, 그 시기에 나오는 제철과일들을 들려보냈다. 어떤 때는 아이스크림도 있고 과자도 있었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서 소박하게 전해오던 남편의 마음에 엄마는 늘 감동을 받았다. 맛있는 걸 보면 지나치지 않고 당신을 생각해주는 남편의 그 마음씀씀이가 억만금보다 가치있었던 우리 엄마는 우리 결혼이 확정되기 전부터 이모들에게 남편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자랑했었다.

그리고 결혼 후, 남편은 이제는 사위가 되어 집에도 마음대로 들락날락 할 수 있었다. 어딘가를 돌아다니다가 '오 어머님이 좋아하는 거, 아버님이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사들고 친정집에 불쑥 찾아가곤 했다. 나 없이 남편 혼자 와서는 밥 달라고도 하고 잠시 낮잠 자고 간다고도 하고 커피 얻어 먹으러 왔다고도 하고 보고 싶어서 왔다고도 하고 온갖 이유를 붙이며 오는 이 특이한 사위를 보고, 친정집에 놀러왔던 손님들이 놀랐다.

손님이 계시면 계시는대로 같이 어울리며 장인장모에게 살갑게 구는 남편의 곰살맞음과 어른들을 강타하는 치명적인 사랑스러움이 폭발했는지, 나중에는 소문이 불려지고 불려져서 내가 들어도 세상에 이런 사위가 어딨나 싶었다.


그러던 중 남편의 평판이 '세상에 없는 사위'로 정점을 찍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결혼을 앞두고 친정집이 이사를 해야 해서 집을 보러 급히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 엄마의 발목이 크게 다쳤었다. 그 때는 겨울이라 눈도 내리고 길도 얼어있는 날씨였다. 엄마는 깁스를 한 상태로 목발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었는데도 집을 보러 다니겠다고 우겼다. 어차피 아빠나 우리 자매가 엄마 대신에 집을 알아본 적도 없고 뭘 잘 모르니 결국 본인이 돌아다니는게 속이 편하다는 건데, 맞는 이야기였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다친 엄마가 그러고 돌아다니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럼 내가 같이 다니겠다고 했더니 '너는 회사나 가라'며 추운 날 자기를 수발하는 모양새로 딸이 고생할까봐 한사코 함께 다니길 거부했다.

속상해서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는데, 남편이 이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줬다. 우리 엄마에게 자신이 같이 알아보러 가겠다며 김기사로 봉사해 드리겠다고 했다. 자기 차를 타고 편하고 빠르게 알아보러 다니면 되지 않냐며, 자기는 사랑하는 두 여자랑 한번에 데이트하고 좋다며 넉살 좋게 붙은 것이다. 엄마의 성격상 가족이어도 뭔가 부탁하기를 어려워하고 주는 호의도 버거워하는 사람인데, 희안하게도 연애 때부터 남편이 구슬리면 잘 넘어가서 그때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같이 다니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함께 집을 알아보러 간 날 하루 종일 우리 남편은 예비 장모님인 우리 엄마를 내내 업고 다녔다는 것이었다. 차에 내려서 아무리 짧은 거리도 엄마를 업어서 이동시켰다. 목발 집고 어쩌고 움직이는 것보다 이게 빠르다며 엄마를 재촉해서 업고 다녔지만, 사실은 엄마가 아직은 회복이 안된 상황에서 걷는 부담을 만들지 않기 위한 남편의 아이디어였다. 그 한겨울에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고 다녔다.

"김서방, 내가 너무 무겁지 미안해"라는 엄마 말에 "아니 어머님 언제 업혀 있었어? 깃털인지 알았네, 업힌지도 몰랐잖아"라며 헥헥대는 남편의 답은 엄마를 순간적으로 소녀처럼 빵 터지게 만들었다. 엄마가 그렇게 소녀처럼 활짝 웃는 건 수십년을 같이 산 딸인 나도 그날 처음봤다.

심지어 결혼 후에는 아빠도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한달 넘게 한 적도 있었는데, 남편은 그때도 한달 내내 본인이 출퇴근 시간을 조절해서 아빠를 회사까지 출퇴근을 시켜 드렸다. 남편이 미안해하는 아빠에게 "아버님은 저한테 진짜 잘하셔야 해요~자기 큰딸 A/S도 안해주는데 이렇게 장인 장모 업고 다니는 사위가 어딨어요~"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는데, 아빠는 이런 사위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 아빠는 늘 자기 사위와 통화를 하거나 만났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빼먹지 않고 있다.


이런 저런 다양한 에피소드는 엄마를 통해서 이모들을 거쳐 우리는 일면식도 없는 이모들의 지인들에 이르기까지 퍼져나가며, 나름 그들의 세상에서 우리 남편은 '사위돌=사위+아이돌'이 되어갔다.

남편은 누가 봐도 모든 장인장모가 원하는 사위였다. 딸인 나보다 훨씬 더 살갑고 자신이 장인장모를 무척 사랑한다고 온 몸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남편의 이런 모습이 더 사랑스러웠던 것은 우리 부모님에게 잘해서가 아니라, 시댁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남편의 모든 행동은 장인장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 아니라, 본인 부모님께 하는 행동을 그대로 우리 부모님을 자기 부모와 똑같이 생각했기에 나온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남편은 내동생, 우리 이모들, 이모부들, 고모들, 고모부들, 사촌 형제들 등에도 자기 가족들과 똑같이 챙기고 대했다. 내 동생은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만약 언니랑 형부랑 헤어지면 차라리 언니를 안 볼거라고 할 정도고, 미혼이었던 사촌 여동생들이 형부 같은 남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심지어 사촌 남동생들까지도, 분명 내 보기에는 동생들이 남편에게 놀림 당하는 거 같은데도 형~형~거리며 무척이나 따랐다.


사실 내 콩깍지를 떼고 봐도, 객관적으로도 남편은 어르신들 사이에서 사위돌이 될만했다. 우리 부모님 뿐만이 아니라 고모들, 이모들, 심지어 부모님 지인에 이르기까지 전자 기기로 어려움을 겪거나 제도를 알아보고 신청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단순히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서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쉽고 친절하게 알려드리는게 우리 남편이었다.

그들 눈에는 듬직한 외형, 낮은 목소리, 다정다감한 말투에 어려워하시는 건 친절하게 알려주고 해결해주는 이 남의 사위, 김서방의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을거다. 나를 포함한 자기 자식들은 안 그러니까.


지금 우리 부모님에게 가장 큰 자랑 중 하나가 자신의 사위다. 엄마는 '세상에 없는 사위'라는 타이틀이 붙은 자기 사위를 너무 자랑스러워했다. "다들 세상에 이런 사위는 없다지 뭐야, 그래서 내가 없다고 했지. 우리 사위가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데, 내 사위니까. 이제 그런 사위는 없다고 말이야."라며 뿌듯해하는 엄마를 보면, 역시 내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 중 하나는 남편과 결혼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나도 당연히 시댁에 잘하려고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남편처럼 살갑고 다정다감하지는 않지만 내 방식으로 시부모님이, 아가씨가, 시댁 가족들이 부족해한 가족의 부분들을 나도 채워나갔다. 시어머니가 어디 함께 가면 남들에게 나를 '우리 큰 애, 우리 큰자식'이라고 소개할 정도까지는 나도 가족의 한 부분에 잘 스며들었다. 얘는 왜 이렇게 시댁 식구를 좋아하는 거냐며, 이상한 며느리라고도 하신다.

시집살이가 두려워서 시댁과의 관계에 선을 긋고 싶었던 나의 결혼 전 마인드를 생각했을 때는 대격변급의 변화였다. 그리고 그 변화는 누구의 강요도 없이 남편이 보여준 모든 순간에 대한 나의 공감이자 존경이자 감사에 의한 자발적인 변화였다.

너희 집에, 우리 집에 누가 더 잘 하니 마니, 효도는 셀프느니 마니, 우리 부부는 그런 걸 따지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의 사위, 누구의 며느리가 되기 보다 우리 양쪽 집의 큰 자식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시작은 우리 남편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나는 세상에 없는 사위와 함께 살면서 소박한 진심됨이 통하는 가족애가 무엇인지 배우고 있다.




다음에 계속.



이전 04화 코드가 맞아서 결혼한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