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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Jan 20. 2023

사람과의 관계에서 망설이게 돼요.

2023.01.19 7번째 일기

To. 찌니님

저는 사람을 꽤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여러가지의 방식으로 호의를 베푸는 일들을 즐거워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동일한 방식으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호의로 상대방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 가까이 있는 나의 주변사람들에게 베푸는 일들이 크게 힘들거나 아깝지가 않습니다. 특히 서로가 그런 마음을 가진 관계라면 더더욱 망설임이 없습니다.


다만 그런 관계가 아닌 경우도 꽤 많은 것 같아요. 바라는 것 없이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드는 사람들인데, 상대방이 나에게 가진 마음을 정확히 읽을 수가 없어서 조금 더 다가가거나 호의를 베풀고 싶어도 부담스러워할까봐 나의 행동을 멈추는 날들이 많습니다.

또 다른 케이스로 한 때는 너무 잘 지냈지만 연락이 뜸해서 연락하기 망설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고민은 주변에서도 많이 보긴 했지만, 저는 특히나 그 사람들과 즐겁게 지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어서 보고 싶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더더욱 그런 것 같아요.

언제는 용기 내서 연락을 해본 적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상대방의 반응이 별로 반가워보이지 않았다고 해야할까요? 물론 모든 사람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조금의 상처도 받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찌니님은 저에게 뭔가를 기대하지 않고 무한대로 잘해주셨던 것 같아요. 어린 날들에 너무 받기만 했다는 생각에 저도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찌니님에게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도움도 드리고 많은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꽤 오래전부터 해왔었어요.


이런 사람과의 관계에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저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역시 센스의 영역일까요? 어떤 날은 집에 돌아가며 ‘아, 내가 그사람에게 너무 오바했나?’ 생각하기도 하면서 별 고민을 다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 것 같아요!




To. 낮잠님

저는 크게 아프고 난 이후, 사람과 인간관계에 집착이나 미련을 놓게 된 것 같아요. 내 인생에 남아있는 시간을 나도,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하루하루 주어진 ‘나의 시간’이 굉장히 귀해졌거든요.

그래서 제가 더 다가가고 호의를 베풀었는데 그걸 거부한다면 저는 더이상 그 사람과의 관계에 노력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하루 24시간 중 내가 잠을 자는 시간 8시간 정도, 내가 일을 위해 소비하는 시간(씻고 이동하고 일하는 시간) 11시간 정도, 하루 세끼 밥 먹는 시간 2시간 정도, 그럼 나에게 남는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하루에 3시간 밖에 없습니다. 그 시간을 누구에게 쓸 것인가 생각했을 때, 나, 가족,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이렇게 쓰기만 해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노력해야만 저를 좋아해주고 호감 가질 사람들에게 굳이 시간을 투자하지 않게 되었어요.

저를 별로 안 좋아하거나 관심 없는 사람에게 나의 하루 3시간 중 1초도 쓰기 싫거든요. 내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도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에게 내가 애정을 베풀고 그 사람을 위해 노력하면 그 사람은 나를 더 좋아해주고 아껴주겠죠. 내 입장에선 그게 더 의미있는 일이잖아요?


저는 내가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남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상당히 짧다는 걸 안 이후부터는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 사람과 관계를 포기하는 법을 습득했습니다. 

그 포기에 내가 상처 받지 않도록, 그 포기로 인해 저에 대해 나쁜 평이 생기는 것도 받아들이도록, 그렇게 수년 간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제가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눈치 보고, 돈을 쓰고, 마음을 쓰고, 시간을 쓰고 오만가지 노력을 했을 때보다, 사람과 인간관계에 집착이나 미련을 버린 지금 저는 가장 인복이 넘쳐 나고 있습니다. 

단순히 발이 넓은 게 아니라, 제가 도움을 구하면 언제든 나서주는 깊은 관계들이 넘쳐 나죠. 낮잠님도 그런 저의 사람들 중 하나잖아요.


제가 낮잠님에게 무한대로 잘해준다고 느낀다면, 그건 낮잠님이 저를 얼마나 존경해주고 사랑해주는지 말하지 않아도 제가 늘 느끼기 때문이겠죠. 낮잠님이 저에게 최선의 애정을 보여주는 사람이기에 저도 최선의 애정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이건 우리가 정말 오랜 기간 마음을 나눠서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거라, 기본적으로는 마음에만 두지 말고 표현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그렇기에 낮잠님이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고민하는 건 너무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이 고민의 해결 방법은 굉장히 간단해요. 문득, 이 말을 전해야겠다 할 때 그걸 전하는 용기있는 행동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어제 뜬금없이 자기 전에 낮잠님에게 보낸 메시지처럼요. 

그걸 반복하다 보면 어색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저도 그렇게 계속 하다 보니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최고야 등등 표현을 어색하지 않게 하게 되었으니까요.


서로 그 마음을 순수하게 주고 받지 못하는 관계라면 굳이 억지로 잡고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나에게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밖에 없는데, 그걸 나눠 쓸 사람을 선별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요? 

이 세상에 제일 중요한 건 나니까요.


※ 이 글은 찌니와 낮잠이 공동으로 쓰고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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