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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로 전하는 '사랑해'

남편이 나에게 표현한 사랑해 기록하기 3

by 찌니

남편은 요즘 일본어 공부가 한창이다.

사소한 표현들을 일본어로 하기 시작했다.


남편 : 왜 저 자막에는 사랑해 라고 나오는데, 말은 다이스키 (大好き) 라고 해?

나 : 일본에서는 그게 사랑한다는 표현이야.

남편 : 많이 좋아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거랑 다르잖아.

나 : 일본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표현이 조금 부끄러운 모양이야.

남편 : 그게 왜 부끄럽지? 사랑한다는 표현은 많이 하면 좋은 건데?

나 : 그렇지...일본어로도 사랑해는 참 예쁜 말인데.

남편 : 일본어로 사랑해가 뭐지?


이 남자...왜 알고 있는지 물어보지? 하면서 "아이시테루 (愛してる)"라고 답하자.

"씨익 웃으며 내가 더 아이시테루 (愛してる)야"라고 하고 화장실 갈래 하며 사라진다.


뭐야...이 남자, 갑자기 심쿵하게 하고 자빠졌네.




남편이 홀로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다. 남편은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오죽하면 나중에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자신이 좋아하는 걸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결혼을 못한다는 가정은 왜 없니...ㅋㅋㅋ)


남편이 나와 처음에 연애를 할 때도 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 숨길 자신은 없다보니 걱정을 했었다는데, 그래선지 남편은 초기에 차를 타고 가면서 '내가 일본 노래를 틀어도 될까?'라는 질문을 했었다.


당시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물어봤을 때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했었다 보니, 자신은 나름 용기를 내서 한 질문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왠지, 내가 게임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어느 정도는 서브 컬쳐에 대한 경험이 있을 거 같았고 왠지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의 그 질문에 '나 일본 노래도 좋아해'라고 내가 답했을 때, 이 여자 참 착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일부러 맞춰주는 줄 알았다고...(웃음)


하지만 연애를 하면서 자신의 플레이 리스트를 상당히 알고 있는 것을 넘어, 새로운 곡을 추천해주는 나를 보고 '어? 얘 뭐지?'라고 생각했고, 용기를 내서 본인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것에서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온 내 친구들, 일본 엄마 등과 일본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내 모습을 보고 멋있었다고 했다.


남편은 결혼을 하고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이 컸다. 이번에 이사 후에는 온 집안이 각자가 좋아하는 게임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남편의 경우에는 따로 굿즈를 모으고 관리할 수 있는 작은 공간도 생기면서 만족감이 매우 컸다.



이사 후, 남편은 본인이 아주 어렸을 때 좋아했던 '센티멘탈 그래피티'라는 게임의 굿즈를 모으는 것에 열중했다. 그리고 그 게임의 일본어 버전 공략집을 찾아내더니 읽고 싶어했다. 그리고 '세키로'라는 일본 닌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다룬 게임을 다시 시작하더니, 거기에서 등장하는 일본어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나, 일본어를 배워서 저 이야기들을 직접 읽고 싶어.


이상한 일본어를 구사하면서, 어딘가의 캐릭터의 대사를 따라하면서 내 일본인 지인들을 빵빵 터지게 만들었던 우리 남편. 그동안 내가 그렇~~~~~~게 일본어 공부를 해보자고 할 때는 니가 있는데 왜 하냐던 사람인데, 갑자기 제대로 일본어를 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자신의 완벽한 덕질을 위해서!


우리 남편의 가장 큰 장점이 말을 하면 바로 실행을 한다는 것인데, 일본어 공부를 하겠다는 발언을 하자마자 그는 공부를 시작했다. 1월에 말을 한 그날부터 매일 저녁마다 홀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

JLPT 5급에 나오는 단어 150개부터 외우겠다며 시작하더니 매일 복습을 하면서 돌파 중이다. 목소리를 내서 단어를 읽기도 하고 함께 일본 노래를 듣거나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들리는 일본어 단어를 이야기 하며 이 단어를 자신이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마흔이 넘어 하려니 단어를 외우기가 어렵고 자꾸 잊어버린다고 하면서 시무룩하지만, 그래도 또 책과 태블릿을 들고 공부하는 남편을 보면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좋아하는 것에 진심으로 사는 우리 남편, 늘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행복하길 바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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