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Jun 22. 2019

롱 샷

자가당착과 부조화의 늪에 빠지다

1.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3과 4를 보면 클레어의 연설을 돕고 프랭크의 자서전 출판을 담당하는 '토마스 예이츠'라는 작가가 등장한다. 그는 클레어와 내연관계로 발전하지만, 분량과 비중의 문제로 클레어에 비해 토마스의 감정과 내면은 드라마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만약 드라마를 보면서 토마스의 입장이 궁금했다면, 샤를리즈 테론과 세스 로건 주연의 <롱 샷>이 해답일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롱 샷>은 <하우스 오브 카드>의 토마스가 클레어를 만났을 때 어떤 감정이었을지를 <노팅 힐>과 같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재해석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2.  <롱 샷>은 정치 드라마와 로맨킥 코미디라는 두 가지 장르가 공존하는 영화다. 상이한 두 장르의 색과 결은 샤를리즈 테론과 세스 로건이라는 각자의 영역과 이미지가 확실한 배우들을 통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렇기에 남녀 주인공의 관계가 발전함에 따라 정치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역시 영화 전개에 맞춰 스며들 수 있다. 그리고 <롱 샷>의 주된 재미는 바로 장르의 구분이 약화되는 과정, 즉 영화의 중반부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의 중반부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하우스 오브 카드>와 <노팅 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샤를리즈 테론의 '샬롯'이 대권을 노린다는 점, 연설 작가인 '프레디'와 내밀한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관계가 발전한다는 점은 <하우스 오브 카드>의 클레어와 토마스를 연상시키고 '프레디'가 본인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을 우연히 만나 삶의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다는 점은 <노팅 힐>의 내러티브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롱 샷>이 상이한 장르, 내러티브, 캐릭터를 하나로 엮는 과정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의도적이다 싶을 정도로 클리셰나 예상 가능한 스토리 전개를 거부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서 예상치 못했던(혹은 개연성이 거의 없는) 사건들을 연이어 등장시킨다.


다른 하나는 코미디 영화에 걸맞은 유머의 활용이다.  <왕좌의 게임>, MCU와 같은 대중문화의 레퍼런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유머 코드나 <데드풀>과 <19 곰 테드>를 떠올리게 하는 성적, 인종적 유머, 그리고 최근 새로운 문제가 된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풍자는 두 장르 간의 불협화음과 긴장감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감춘다. 실제로 시사회 당시 극장에서 꽤 많은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고. 다만 유머 코드가 상당히 미국적이라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여지도 크고, 세스 로건의 출연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강도나 수위가 약한 편이기도 해서 온전히 만족스러운 코미디라고 보기는 어렵다.



3. 코미디로서 일정 부분의 성취를 이룬 <롱 샷>은 정치 드라마로서도 나름의 매력을 뽐낸다. 영화를 보다 보면 생각보다 강한 정치적 성향을 띄는 점이 놀라울 수도 있는데, 당장 작중 '샬롯'은 힐러리 클린턴을 연상시키는 인물이며 여성 대선 후보라는 소재로 인해 페미니즘과 관련해 상당히 직접적인 대사들도 등장한다. 또한 대통령과 언론사를 묘사하는 방식, 기후 변화와 관련된 소재의 등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민주당을 지지하는 스탠스를 분명히 하는 점은 비록 톤은 전혀 다른 작품이지만 <바이스>와 유사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롱 샷>의 기본적인 설정과 내러티브 전개 방식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과연 이 영화가 페미니즘적 시각을 진지하게 반영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우선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남성의 판타지가 현실로 이루어지는 내용이다. 그렇기에 여성인 '샬롯'은 걸 크러시 넘치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연상의 여성을 대하는 남성 판타지의 대상과 수단으로써 기능할 뿐이기도 하다. 또한 작중 샬롯의 성장과 변화도 프레디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기에 종국에는 샬롯 역시 남성에 의존적 태도를 버리지 못한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코미디 영화이기에 극적 과장은 허용할 수 있지만, 영화의 외적인 지향점과 내적인 화법 사이에 간극이 커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4. 영화 내적으로도 <롱 샷>은 후반부에 들어서 유머의 타율도 낮아지고, 몰입감도 떨어진다. 두 인물(장르)이 하나가 되는 과정에 비해 그 결과물이 기대한 만큼 인상적이거나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초반부 샬롯의 정치 관련 에피소드에서 느껴지던 현실감이 후반부 로맨틱 코미디 내러티브 안에서 증발해버리고, 그 결과 영화의 전후반부 사이에 강한 괴리감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치 <킬러의 보디가드>처럼. 정극과 코미디 사이의 균형점을 놓친 셈이다.


5. 샤를리즈 테론이 로맨티 코미디도 소화할 수 있다는 재발견과 세스 로건과 호흡이 유발하는 웃음은 충분히 <롱 샷>만의 장점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유머의 수위가 더 과감하지 못한 것,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해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끝내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서로 다른 영화들이 거듭 겹쳐 보이는 것도 그리 독창성과 신선함의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는 않다. 그래도 취향이 맞는다면 분명 실컷 웃고 나올 수는 있다(사실 생각없이 보라고 만든 영화다).


소재와 배우들의 잠재력을 오롯이 발산하지 못한 로맨틱 코미디, <롱 샷>이다.



P(Poor, 형편없음)

<하우스 오브 카드>와 <노팅 힐>이 부조화를 이룰 때


매거진의 이전글 갤버스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