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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n 14. 2019

갤버스턴

벗어날 수 없으니 지옥이고 가고 싶으니 천국이다

"무서워요. 들어가서 자도 돼요?"


1.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는 범죄자, '로이(벤 포스터)'. 아직 많이 남은 삶을 새롭게 살고 싶은 소녀, '록키(엘르 패닝)'. 삶의 늪에 빠져 고통받는 두 사람이 새로운 인생을 위해 도망치는 이야기. 이 이야기가 바로 <갤버스턴>이라는 영화다. 범죄 스릴러로 시작해 로드 무비로 이어지는 영화는 중반부까지 큰 변곡점 없이 잔잔히 진행되며 두 사람과 록키의 동생, 티파니까지 갑작스럽게 시작된 3명의 동행 간에 유대심을 쌓는 과정을 차분히 스크린에 펼쳐 보인다.



<갤버스턴>을 보면 연상되는 영화들이 있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레옹>,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도 꼽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로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우선 시각적인 측면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미국 남부 텍사스라는 점, 주요 등장인물이 3명인데 이 3명이 원래는 가족이 아니지만 유사 가족 관계로 연출된다는 점 등에서 두 작품의 도상적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록키가 내뱉는 저 위의 대사가 함축한 내러티브 상의 유사점이 더 심금을 울렸던 것 같다. <로건>을 보면 '로라'는 꿈에서 다칠까 봐 잠을 못 잔다고 말하는데, 이에 로건은 꿈에서마저 사랑하는 사람들을 헤칠까 봐 잠을 못 잔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이나 <갤버스턴>에서 "무서워요. 들어가서야 자도 돼요?"라고 묻는 록키의 모습 모두 그 순간까지의 혹독하고 기구했던 인생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효과적으로 함축해서 제시하는 장면이다. 또한 서로를 전혀 모른 채 다른 경험을 해온 인물들이 감정적으로 유대감을 형성하는 계기이기도 하며, 이러한 스토리 전개의 유사함이 유독 <갤버스턴>을 보면서 <로건>을 떠올리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였던 것 같다.



"둘을 위한 삶을 살아"


2.  <갤버스턴> 속 갤버스턴의 해변가는 로이와 록키에게 제각각 의미 깊은 장소다. 로이에게는 한때 천국이자 삶을 다 해가는 시점에서 위안을 받는 장소이고, 록키에게는 인생 처음으로 맛보는 천국이자 희망을 상징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갤버스턴 해변가는 영화 내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밝은 조명과 슬로모션이 눈에 띄며 느긋하고 행복한 인물들의 표정이 인상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이 해변가에서의 장면들은 그들의 인생 중 극히 일부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로이와 록키가 얼마나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는지, 로이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그럼에도 앞으로 시한부 인생이나마 가치 있게 쓰고 싶어 하는지, 록키에게 남은 인생에 대한 희망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기에도 하다. 그렇기에 로이가 록키에게 해주는 "둘을 위한 삶을 살아"라는 대사는 이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주며, 인물의 감정선을 포착하는 멜라니 로랑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잘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러한 행복한 순간 이후 <갤버스턴>은 장르적으로 로드 무비에서 다시 범죄 스릴러로 복귀하고, 기술적으로 영화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롱 테이크 시퀀스가 펼쳐진다. 마치 삶의 위안과 희망이 너무나도 짧았기에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오도록 감독이 의도한 듯한 장면으로 로이의 절망감과 복수심, 록키의 허망함이 처절하게 느껴지는 시퀀스다. 다만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인생의 변화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이라는 메시지가 파괴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시퀀스의 짜임새가 다소 안일한 부분도 있어서 아쉬움이 다소 남기도 한다.   




"넌 절대 버림받은 게 아니야"


3. 영화 속에서 로이와 록키가 만들어주고자 했던, 지켜주고자 했던 것은 그들의 삶이 아니다. 그들은 지옥을 살았던 이들이고, 그 지옥은 그들이 선택한 결과물이기도 하기에 결코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본인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책임져야만 했기 때문에. 하지만 티파니는 그렇지 않다. 비록 그녀는 누군가가 원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지옥을 견뎌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그녀에게는 없다. 이를 알기에 로이도 록키도 자신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티파니를 보호한 것이다. 버려졌지만 버려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호받은... 마지막 순간에 로이가 티파니를 떠나보내고 다가오는 허리케인 속에 남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다만 영화의 결말부에서 약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로건>에서 찰스와 로건의 죽음이 감동적인 것은 로라의 감정이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해졌기 때문인데, <갤버스턴>에서 관객들은 록키에게 이입할 순 있어도 티파니의 감정은 느끼기 힘들다. 영화가 로이와 록키에게 초점을 두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로 영화의 의도가 잘 전해지지 못한 연출 상의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며, <로건>과 달리 로이와 록키의 희생이 오롯이 감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4. 사실 <갤버스턴>이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것도 아니고, 장면과 장면 사이 맥락의 부재도 느껴진다. 상업적인 매력이 있는 영화도 아니다. 초반부 전개가 늘어지지만 간혹 예상을 뛰어넘는 영화의 전개가 등장하기 때문에 지루한 영화도 아니다. 또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좋아할 영화도 아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영화의 운명론적인 분위기는 티파니의 행복에도 불구하고 자기 계발과 노력의 힘을 믿는, 사회적 현실과 억압을 개인이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암울한 현실을 일깨우는 악몽일 뿐이니깐.


하지만 난 이 영화가 좋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좋다. 삶의 끝자락에 찾아온 안식을 붙잡으려는 범죄자와 아직 남은 삶을 즐기고 싶어 하는 소녀. 인내하는 벤 포스터와 분출하는 엘르 패닝의 연기는 너무 다르기에 더욱 잘 어울린다. 강렬한 새드엔딩도 좋다. 영화는 판타지를 실현시키기도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이 언제나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다만 그 엔딩을 향하는 길에서 가족과도 같은 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사랑을 하고, 위안과 희망을 맛보고,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발버둥 쳐본 인생이라면 아무리 새드엔딩 이어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영화관을 나오면서도 록키의 밝은 미소가 눈에 밟힌다.  




A(Acceptable, 무난함)

지옥에서 살더라도, 천국에 못 가더라도 삶의 의지가 있다면 그걸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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