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의 마음속엔 수많은 하늘과 바람과 별이 있었다
1. 윤동주라는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중학생 때였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예습을 해야 한다면서 처음 풀어본 모의고사에서 그를 처음 봤다. 아무것도 모를 때 읽은 그의 시는 비록 시험 시간에 쫓기고 있었지만, 그의 시는 분명 예뻤다. 단번에 윤동주라는 이름을 외울 수 있을 만큼. 하지만 그 이후로 윤동주 시인은 그렇게 반가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이따금 모의고사 문제를 통해 나에게 나타났고, 그때마다 나는 그의 시와 보기로 주어지는 그의 인생을 생선처럼 토막 내 파헤치는데 열중이었다. 그랬던 그의 시가 다시 아름다워진 순간이 있었다. 바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집어 든 순간이었다.
2.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옥사한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그의 지인들이 모아 발간한 시집이다. 그가 인생을 통틀어 창작한 모든 시가 있는 만큼, 윤동주라는 사람과 윤동주라는 시인의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시집을 읽으면서 알게 된 윤동주 시인의 모습이 몇 가지 있다. 그는 세심하고, 창의적이고, 소심하지만 저항적이었으며 동시에 우리처럼 평범한 청년이었다. 이처럼 입체적인 윤동주의 면모는 그의 시를 통해서 하나하나 드러난다.
<장>
이른 아침 아낙네들은 시들은 생활을
바구니 하나 가득 담아 이고
업고 지고...... 안고 들고......
모여드오 자꾸 장에 모여드오.
가난한 생활을 골골이 버려놓고
밀려가고 밀려오고......
제마다 생활을 외치오... 싸우오.
왼하로 올망졸망한 생활을
날이 저물어 아낙네들이
쓴 생활과 바꾸어 또 이고 돌아가오.
그는 자칫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평범한 소재에서 소시민들의 삶을 끄집어낼 줄 알았다. 누구나 가는 시장에서 그는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쁜 우리네 모습을 포착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올망졸망한 삶'의 이야기 기를 나누며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지만, 결국 그들은 각자의 살기 힘든 '쓴 생활'로 돌아간다. 어렵거나 힘든 단어 하나 없지만, 윤동주는 소시민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해내는 데 성공한다.
<간>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쓰산중에서 도망해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든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여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떨어진다.
푸로메디어쓰 부상한 푸로메디어쓰
불 도적단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푸로메디어쓰.
<간>은 그 제목 만을 보고 내용을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한국의 전래동화와 그리스 신화의 만남이라니,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리스 신화에서 불을 훔쳐 인간을 도운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로부터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 먹히는 벌을 받는다. 자신이 벌린 일을 뒤늦게 후회하는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을 거북이에게 꾀어서 용궁까지 갔던 토끼에 비유하는데, 정말이지 이러한 발상은 정말 천재적이다. 간을 잃는 자와 간을 잃을 뻔했던 자가 마음속 깊은 후회를 매개로 한 동서양 설화의 만남. 시대가 요구한다는 창의적 사고는 벌써 70년 전부터 있어왔다.
<위로>
거미란 놈이 흉한 심보로 병원 뒤뜰 난간과 꽃밭 사이 사람 발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그물을 쳐 놓았다. 옥외 요양을 받는 젊은 사나이가 누워서 쳐다보기 바르게-
나비가 한 마리 꽃밭에 날아들다 그물에 걸리었다. 노-란 날개를 파득거려도 파득거려도 나비는 자꾸 감기우기만 한다. 거미가 쏜살같이 가더니 끝없는 끝없는 실을 뽑아 나비의 온몸을 감아버린다. 사나이는 긴 한숨을 쉬었다.
나이보담 무수한 고생 끝에 때를 잃고 병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밖에 위로의 말이 없었다.
화자는 한 사나이에게 위로를 건넨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거미줄에 걸린 나비 마냥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한 사나이는 답답해서 병이 나고 말았다. 화자는 거미줄을 조용히 헝클어 버리는 것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한 사나이를 돕는다. 그의 답답함을 풀어주려고 한다. 이처럼 나서지 않고 조용히 억압받는 자들을 돕는 화자의 모습은 <초 한대>에서도 이어진다.
<초 한대>
초 한대-
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품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초는 자신을 불태워서 어둠을 내쫓는다. 이러한 초의 속성을 활용한 시를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윤동주가 주목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어둠의 빛의 색을 대조해서 희생의 고귀함을 더욱 드높이는 그의 재주란. 굳이 먼저 나서지 않고, 스스로를 불태워서 빛을 보여주겠다는 화자의 다짐. 그간 윤동주의 다른 시들에서도 꾸준히 드러났던 소심하고 지금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이 많지만, 자신을 성찰하고 더 적극적으로 시대에 항거하겠다는 그의 다짐이 <위로>와 <초 한대>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거기에 더해 시대정신에 함께하는 것(독립운동에 나서는 것)을 무엇보다 깨끗하고 고귀한 것으로 보는 그의 마음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사랑의 전당>
순아 너는 내 전에 언제 들어왔든 것이냐?
대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든 것이냐?
우리들의 전당은
고풍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눈을 나려감어라.
난 사자처럼 엉크린 머리를 고루련다.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었다.
성스런 촛대에 여한 불이 꺼지기 전
순아 너는 앞문으로 내 달려라.
어둠과 바람이 우리 창에 부닥치기 전
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채
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
이제 네게는 삼림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험준한 산맥이 있다.
이처럼 다른 이들의 삶을 볼 줄도 알고, 암울한 시대에 맞서 싸울 줄도 알았던 윤동주는 그러면서도 그 나이의 모든 청년들과 똑같은 고민을 지닌 청년이었다. 미처 깨닫기도 전에 사랑에 빠진 화자는 고민에 빠진다. 그 사랑을 계속해야 할지 혹은 그만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그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조용히 희생해주기로 결심한다. 위의 시들에서 알 수 있는 윤동주(혹은 그의 시 속 화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이 시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시이고, 그래서 윤동주 시인이 더욱 친밀하게 여겨지는 시이기도 하다.
3.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의 미완성 작품들까지 소개하며 끝을 맺는다. 모든 시들을 읽으면서 뒤늦게라도 윤동주라는 한 청년의 생각과 감정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진작 그러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시 하나하나를 붙잡고, 단어 하나하나를 붙잡고 외워가면서 왜 생선 뼈 바르듯 시를 발라내고 있었을까. 그저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었을 것을. 미드나 미국 영화를 보면 매주 수업 때마다 책을 한 권씩 읽고 리포트를 써오는 과제가 학생들에게 주어진다. 대학에서도 서평 쓰는 일이 드문 우리가 책을 저렇게 읽는 것을 바라는 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