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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an 19. 2019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

충성. 정치적 무관심. 명예. 군인에 대해

1. 2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가장 처절한 전쟁이었다. 말 그대로 '세계' 전쟁이었고 산업화와 공업화로 향상된 생산력이 모두 전쟁에 집중되면 어떤 비극이 발생할지 알게 된 첫 번째 전쟁이었다. 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저자인 한스 폰 루크는 독일 지상군의 대령으로 참가했고, 그 실상을 글로 남겼다.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는 전쟁 한복판에서 군인에 대한 한 군인의 고찰이다.


2. 군인은 특수한 존재다. 고대에서 현재까지 인류의 역사를 한 페이지도 빠짐없이 장식한 이들이자,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모순적인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든 위협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마음만 먹으면 한 국가를 뒤엎는 것도 가능한 이들이다. 안타깝지만 최근까지도 우리는 그 위험성을 두 눈으로 목격한 바 있다.


이렇듯 특수한 존재인 군인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특수한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한스 폰 루크는 자신이 '국가에 대한 충성'과 '군인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은 군인의 '명예'이기에 이 가치들을 훼손하지 않도록 교육받았다고 회고한다. 이는 나치 독일이 군국주의 체제라서가 아니라, 모든 군인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교육이 그 빛을 발한 결과였다. 단지 긍정적인 방향이 아닐 뿐.


롬멜 장군


3.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군인은 '국가에 대한 충성'을 다해야 하는 존재다. 여기서 문제는 '국가'의 정의다. 국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군인의 행보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일까? 아니면 정부일까? 물론 현대의 시점에서 보면 국가는 당연히 국민이고 군인들은 국민의 권익을 지켜야 함이 분명하다. 하지만 당시 독일은 나치의 지지도가 워낙 높았고, 또 반대세력을 나치가 철저히 감시, 견제했기에 나치와 국민의 의지를 구분하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독일군이 히틀러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저자의 기록에 따르면, 롬멜을 비롯한 독일군 장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에 대한 식견이 전무한 히틀러에 대한 신뢰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히틀러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흔적도 보인다. 하지만 끝내 이들이 히틀러를 거스르지 못했던 이유는 과연 그러한 행위가 국가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국가를 위한 길을 고민하다 결국 국가와 국민에게 가장 큰 아픔이 되는 선택을 해버렸으니, 저자가 평생을 후회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전방과 후방의 구분도 없이 전 국토가 전쟁터가 된 상황, 패망을 향해 다가가는 상황에서 저자는 본인이 할 수수 있는 마지막 일을 했다. 소련군의 전진을 최대한 방해해 한 명이라도 더 서측으로 피난 가도록 시간을 버는 일, 그가 지휘하던 연대 소속의 병사들이 한 명이라도 서방 연합국의 포로가 될 수 있도록 미끼가 되어주는 일. 한스 폰 루크는 군인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국가에 충성한 것이다. 그 당시 루크는 아마 군인만이 느낄 수 있는 다른 차원의 비극을 맛보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이 대목에서 <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록>을 함께 읽으면 그 비극을 조금이나마 더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원 없이 맨몸으로 싸우는 군인들과 공포에 떠는 여성과 민간인의 대비, 한스 폰 루크의 심정을 일말이라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북아프리가 전선 이미지


4. 작중 저자가 가장 많이 언급하는 단어들 중 하나가 '페어플레이'다. 영국군과 대치하며 그들과 맺었던 협약이라든가, 수많은 전투에서 살아남는 저자의 일화들을 설명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에게 페어플레이는 인명을 소중히 하는 일이었다. 패배가 확실하거나, 전투가 시작되기 전이라면 무의미한 인명 희생과 살상을 자제하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전장에서 적으로 만났다 하더라도 국가의 부름을 받아 그 전쟁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군인들은 공통점을 지니기에 전투 혹은 전쟁이 끝난 후에는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최선을 다했다며 격려하고 서로를 존중해 주는 것,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페어플레이이며 히틀러가 보여주지 못한 미덕이었다.


결국 전범이라 해도 무색하지 않은 독일군의 장교가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치적 중립을 끝까지 지켰기 때문이었다. 전쟁도 정치의 연장이고, 전투는 군인이 할지언정 전쟁은 정치인이 한다는 점에서 그저 충실히 전쟁에 참가한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정치적 중립을 바탕으로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고 인명을 아끼며 적군이더라도 존경하고 인정하는 것, 이것이 2차 대전을 치르며 저자가 느끼고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 진정한 군인의 태도이자 명예가 아닐까.


저자가 책의 제목을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로 지은 것도 이러한 군인의 모습을 부각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에게 롬멜은 상관이기에 앞서 교관이었고 그의 롤모델이었다. 실제로 롬멜은 뛰어난 전공을 올린 장군이자, 정치에 일절 간섭하지 않은 장교이고, 당시 시대상을 정확히 예측한 뛰어난 인물이었다. 한스 폰 루크에게 롬멜은 충분히 이상적인 군인 그 자체로 보였을 것이다.


나친가 점령한 파리


5.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이 전쟁 이야기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영국, 소련, 프랑스, 북아프리카, 폴란드에 이르는 숱한 국가와 지역들의 사람들과 문화가 담겨 있다. 소련군의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은 냉전체제에서 왜 소련이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또 그의 가족, 친구, 전우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국적을 초월한 사랑과 우정을 만날 수도 있다.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는 군인에 대한 책이고 전쟁에 대한 책이지만 또한 1940년대라는 시대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 내가 모르는 시공간을 경험하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이 나의 현실과 맞닿는 것.


4. 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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