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는 강렬한
1. 몇 년 사이 할리우드에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바람이 불며 여성, 흑인을 비롯한 비주류 인종, 사회적 약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할리우드는 미국 내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세력이기 때문에 이러한 진보적인 스탠스가 그리 놀랍지만은 않다. 개인적으로 이 트렌드를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정치적 올바름을 반영한 영화들은 영화 자체의 디테일과 미학보다 영화가 상징할 수 있는 '메시지'만을 중요히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MCU의 <블랙 팬서> 또한 마찬가지다.
2. <블랙 팬서>는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그 일환으로 대부분의 배역에 흑인 영화들을 캐스팅하고 와칸다를 MCU내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지닌 국가로 설정했다. 영화를 통해 긴 시간 동안 고통받았던 흑인들에게 보상을 주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다.
'블랙 팬서'라는 이름은 미국 내에서 폭력적 노선의 흑인 인권 운동을 펼쳤던 흑표당을 떠올리게 하고 트찰라와 킬몽거의 관계는 누가 봐도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의 비유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팔려갔던 흑인 노예들을 기리는 대사들, '바다에 수장해줘. 우리 선조들이 노예로 끌려가던 배에서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처럼' 같은 대사들은 지금까지 인종차별의 유리창에 가로막혀 고통받았던 흑인들의 심금을 울렸을 것이다. 이들의 아픔과 흑인들의 동포애를 감싸 안으며 미래지향적으로 끝나는 엔딩은 <너의 이름은.>처럼 한 집단의 공동체적 트라우마에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교과서적인 마무리다. 하지만 <블랙 팬서>는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과 역사적 상징으로서만 영화를 활용한 나머지, 영화 자체의 미학인 장르, 캐릭터, 개연성을 모두 놓치고 말았다.
3. <블랙 팬서>는 엄연히 히어로 영화다. 특히 MCU라는 시리즈의 일부인 작품이다. 따라서 <블랙 팬서>는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역사적, 사회적 슬로건을 대변하기 이전에 한 프랜차이즈의 히어로 영화로서 기능해야 했다. 그리고 처절히 실패했다.
히어로 영화는 히어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본연의 특성을 살려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블랙 팬서>는 자유로운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장점을 지닌 영화였다. 이미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블랙 팬서/트찰라'는 타 히어로와 차별화된 위치를 확보했었기 때문이다. 트찰라는 슈트의 발톱을 활용한 동물적이고 아크로바틱한 액션과 MCU의 주요 히어로들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벌써 히어로로 완성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블랙 팬서>는 캐릭터 정체성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시빌 워>보다 퇴보한 전개를 보여줄 뿐이다.
슈트의 특정 기능만을 강조하고, 한 타이밍씩 길어진 액션 씬의 쇼트들 덕분에 육체적이고 박진감 넘쳐야 할 블랙 팬서의 액션은 긴장감이 전무하다. 하이라이트를 장식해야 할 마지막 액션씬이 대표적이다. 검은 배경에서 검은 슈트를 입은 인물들이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2시간을 인내한 관객의 입장에서 허망하기 그지없다. 블랙 팬서의 발톱은 스파이더맨의 거미줄,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토르의 묠니르처럼 트레이드마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제작진은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이는 그들이 캐릭터의 특징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는 의미일 뿐이다.
<시빌 워>에서 아버지를 죽인 빌런을 앞에 두고도 복수심을 참아낼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한 인물이었던 트찰라지만, 정작 본편에서는 아버지의 과거 행적에 충격받아 정처 없이 헤맬 뿐이고, 그가 확신과 신념을 따라 행동한 순간은 결말부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이러한 전개는 에릭 킬몽거와의 대립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관을 확립하는 히어로의 성장을 위해서였겠지만, 전작에서 이미 완성된 히어로의 모습과 상충하며 캐릭터의 정체성을 파괴할 뿐이다.
4. 이것이 다가 아니다. 작중 제대로 구축된 캐릭터는 전무하며 대부분이 영화 전개의 도구에 불과하다. 전작들에서부터 등장했던 율리시스 클로와 에버렛 로스 요원은 단지 킬몽거를 영화에 끌어들이고 영화의 액션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트찰라의 절친인 와카비가 변절하는 모습은 플롯 상의 필요에 의한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아무런 개연성도, 캐릭터의 내면도 느껴지지 않는다. 빌런인 에릭 킬몽거 역시 메시지의 전달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작중 그가 어떻게 와칸다의 문화, 제도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지 등은 전혀 설명이 되지 않으며 몇 명 되지도 않는 첩보요원을 활용해 전 세계를 뒤엎겠다는 그의 계획은 아무런 개연성도, 정당성도 확보되지 않는다. 그저 겉모습만 멋진 껍데기인 것이다. 그나마 슈리, 오코예, 음바쿠 정도가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지만 그들도 철저히 조력자 캐릭터에 머물 뿐이다. <블랙 팬서>는 MCU의 영화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캐릭터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다.
심지어 스토리마저도 진부하다. 'I am Iron man'처럼 모두의 예상을 깨는 충격적인 전개를 선보이곤 하던 MCU지만, <블랙 팬서>는 그런 전개도 보여주지 못한다. <라이언 킹>을 연상시키는 갈등 구도는 기시감으로 가득하고 영화의 전개는 탄생, 좌절, 극복, 쟁취라는 예측 가능한 경로를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전개가 <아이언맨 2>처럼 MCU라는 시리즈의 연속성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영화 속 와칸다는 MCU에 등장한 지구와는 전혀 다른 수준으로 발전한 국가다. 와칸다의 존재만으로도 다른 히어로들, MCU라는 세계관의 균형이 위태로워지는 셈이다. 그래서 광활한 영상미와 아프리카 전통 리듬이 더해진 OST로 인해 이색적인 분위기를 갖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블랙 팬서>는 굉장히 이질적인 영화다.
5. <블랙 팬서>라는 작품은 영화를 '상징'과 '은유'로만 바라본 결과물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메시지와 흑인들의 아픈 역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세부적인 묘사들, 액션을 비롯한 스토리 전개의 디테일함, 인물들의 정체성, MCU라는 세계 내에서 연결과 균형이 갖추어질 리가 없었던 것이다. 즉 <블랙 팬서>는 영화라는 매체의 고유함, 미학을 포기한 대신 정치 사회적 메시지를 갖추어낸 프로파간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