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래 영화들은 한 작품 내에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곤 한다. 여러 개의 서브플롯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잘 엮어서 멋진 메인 플롯으로 만드느냐가 좋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아쿠아맨> 또한 '아쿠아맨의 각성'이라는 메인 플롯 외에도 메라와의 로맨스, 부모님의 사랑, 옴과의 형제 이야기, 아틀란티스의 역사, 캐릭터 소개 등 수많은 서브플롯을 다루어야 했고, 더불어서 호쾌한 액션도 선보이고 DC 유니버스의 재건이라는 미션 또한 완수해야 했다. 이러한 과제를 제임스 완 감독은 <분노의 질주: 더 세븐>처럼 과감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깔끔하게 완수했다.
2. 제임스 완 감독이 선택한 요소들은 공간적 배경, 캐릭터, 서스펜스 그리고 액션이다. 구제척으로 보면 공간적 배경과 캐릭터는 다음 편을 위한 기초공사이고 서스펜스와 액션은 이번 영화의 관람 포인트를 담당한다. 실제로 <아쿠아맨>은 그 배경인 아틀란티스와 수중 세계를 설명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서로 다른 7가지 왕국의 기원, 역사, 발전과정, 육지세계와의 관계, 살고 있는 종족 등에 대한 충실한 설명을 통해 시리즈의 배경을 착실히 구축해나간다. 특히 이러한 설명은 <맨 오브 스틸>처럼 대사를 통해 브리핑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최소한의 정보가 대사를 통해 주어지고, 관객들은 영화의 액션과 영상을 통해 그 정보를 체화한다. 마침내 DC도 발전했다고 느껴지는 대목이자 제임스 완 감독의 뛰어난 연출센스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또한 많은 캐릭터들을 빠짐없이 챙기며 관객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메인 빌런인 옴의 경우 차후 <토르> 시리즈의 로키와 같은 활약을 기대케 하며, 중간 빌런인 '블랙 만타'는 그 기원과 활용도를 보았을 때 속편에서 아서 커리에게 정신적으로 심각한 대미지를 줄 주요 캐릭터로 보인다. 그 외에 아서 커리보다 더 주인공 같은, 걸 크러시 그 자체인 메라는 이번 영화 최고의 발견이 아닌가 싶다. DC가 원더우먼과 할리 퀸처럼 의외로 여성 캐릭터를 잘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도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아틀란티스라는 공간적 배경과 캐릭터들의 구축은 훌륭한 비주얼과 시각효과를 만나서 말 그대로 눈 호강하는 명장면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3. 호러 영화를 통해 이름을 알려서인지는 몰라도, 제임스 완 감독은 서프라이즈와 서스펜스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영화의 완급을 완벽하게 조절해낸다. 서프라이즈로 시작해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는 액션 시퀀스들은 그 사이에 이루어지는 스토리 전개가 늘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특히 트렌치들과의 수중 추격전 시퀀스는 순간적으로 호러 영화를 연상시키는(<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디멘터가 튀어나오는 장면처럼), 영화에서 가장 서스펜스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장면이었다.
이처럼 본편과 속편을 모두 염두에 둔 영리한 선택을 이어가던 제임스 완 감독의 승부수는 액션이었다. DC가 그간 무리한 세계관 확장과 캐릭터성의 붕괴, 안일한 스토리텔링으로 비판받던 와중에도 신들의 전쟁을 연상시키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액션을 보여주었기에 <아쿠아맨>의 액션 역시 상당한 기대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아쿠아맨의 차별화된 액션을 위해 제임스 완이 선택한 방식은 '롱 테이크'다. <본> 시리즈 이후로 할리우드는 액션씬에 빠른 속도감과 탁월한 리듬감을 부여하기 위해 1~2초 정도의 매우 짧은 씬들을 이어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마블의 <어벤저스> 역시 루소 형제가 연출을 맡은 이후로 비슷한 경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쿠아맨>의 액션은 이러한 트렌드를 벗어나 독자적인 영역을 이뤘다.
영화 초반 아탈라나 여왕의 액션이나 중반부 시칠리아 섬에서의 액션에서 알 수 있듯 <아쿠아맨>의 액션 시퀀스는 씬들이 길다. 롱테이크를 통해 액션의 시작부터 끝 까지를 모두 느끼게 하는 연출인데, 롱테이크가 아닌 씬들조차 패닝과 틸팅을 활용한 씬들인 경우가 많다. 다만 롱 테이크는 속도감이나 리듬감을 구현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제임스 완은 이마저도 카메라의 원근을 빠른 속도로 큰 변화를 주면서 극복해낸다. 여기에 DC 특유의 슬로 모션이 곁들여지면서 <아쿠아맨>의 액션은 마블과 DC 양쪽 모두로부터 차별화되었고, 이 점이 영화의 호평을 이끌어낸 가장 탁월한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물론 후반부에 펼쳐지는 대규모 전투 씬은 이러한 카메라 워킹 필요 없이 히어로 영화를 뛰어넘는 그 스케일만으로도 탁월한 쾌감을 선사한다.
4. <아쿠아맨>은 전혀 예상치 못한 즐거움도 선사한다. 최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바람이 불고 있는 할리우드에서 <아쿠아맨>은 정치적 올바름을 활용하는 교과서적인 예시를 선보인다. 굳이 억지로 여성 캐릭터를 추가하거나 캐릭터의 성별을 바꾸지 않고도 엠버 허드의 메라처럼 자주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캐릭터를 선보이며, 백인 캐릭터를 다른 인종으로 바꾸더라도 제이슨 모모아처럼 캐릭터에 부합하는 캐스팅을 하면 된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러 영화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보여주기 위해 작품에 인위적인 수정을 가했다가 관객들의 역풍을 맞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쿠아맨>처럼 정도를 걷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5. <아쿠아맨>은 이처럼 잘할 수 있는 요소들에 집중해서 최대치의 매력을 뽑아낸 작품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쿠아맨>이 놓친 요소들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무엇보다도 단순한 플롯의 문제는 어떤 포장으로도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쿠아맨의 각성하는 동기나 빌런인 옴의 동기가 애매하다 보니 결말부에서 둘의 액션은 화려하기는 하지만 감정이 담긴 액션은 아니었다. 작위적이고 우연적인 사건들로 가득한 편리한 전개는 네레우스 왕처럼 몇몇 캐릭터들이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주인공인 아쿠아맨의 캐릭터성을 뚜렷하게 확립하지 못했다는 점은 큰 문제다. 아틀란티스의 왕을 원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그 각성의 과정 등이 잘 드러나지 않다 보니 제이슨 모모아라는 배우의 매력에 캐릭터가 묻어가는 느낌이 연출된 것이다. 메라와 정반대의 상황이랄까.
또한 빈번한 유머들은 효과적이지 못해서 전개의 집중을 흩트릴 뿐이고, 몇몇 삽입곡을 제외하면 시종일관 귀가 아프도록 울려 퍼진 OST의 활용 역시 효과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는 편이었다. 쉽게 말해서 <아쿠아맨>은 매력적인 영화이지만,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단지 DC의 영화들이 지금껏 매력적이지도 않고 잘 만든 것도 아니었다는 점이 문제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