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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Apr 02. 2019

캡틴 마블

MCU의 과거, 현재 , 미래를 아우르며

1. <캡틴 마블>은 MCU 최초의 여성 주연 영화이며,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여러 모로 우려와 걱정이 크고 논란도 많았던 영화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캡틴 마블>이 아무래도 페미니즘과 같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란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켑틴 마블>에게 정치적 올바름은 주재료가 아닌 훌륭한 향신료였다.



2. 우선 페미니즘을 활용하는 부분을 살펴보면, '캐럴 댄버스'는 1990년대 미국 공군 파일럿으로 주인공의 설정과 시대적 배경을 적절히 활용해 여성의 불평등한 처우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실제로 미 공군에서 여성 파일럿은 90년대 중반에서야 단독으로 비행할 수 있수 있었다). 실제로 <캡틴 마블>은 군인이라는 신분 상의 제약을 뛰어넘으려는 캐럴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주제적인 여성, 여성 간의 멘토 멘티 관계, 여성 파일럿 간의 동료애를 강조해주는 인상적인 연출로 가득하다.


후반부에 욘-로그(주드 로)가 다시 한번 스스로를 자신에게 증명해보라는 상황에서 간단하게 '증명할 것이 없다'라고 대답하는 장면 역시 영리한 씬이었다. 페미니즘이 남성성을 부정하거나 그들을 비난하는 무기가 아니라 남성적 질서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체성들이 공존하는 다원화된 사회를 만드는 도구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페미니즘에 접근하는 태도는 MCU의 전작인 <블랙 팬서>와 가장 큰 차이이기도 하다. <블랙 팬서>가 과도하게 흑인 주의를 주창하다 히어로 영화로서의 본분을 다소 잊어버린 것에 비해, <캡틴 마블>은 페미니즘을 차용한 히어로 영화라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다.  



또한 여성이라는 정치적 약자뿐만 아니라 '난민'이라는 국제적 약자들의 문제를 적절히 극에 흡수시킨 것도 인상적이었다. 본래 빌런으로 보이던 스크럴 족을 영리하게 반전의 장치로 활용해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높임과 동시에 난민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적절히 환기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윈터 솔저>, <시빌 워>, <인피니티 워>를 거치면서 철학적 논쟁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 이슈까지 영화 안에 포용시키면서 시리즈의 현실감을 끌어올리는 마블의 물오른 기획력이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3. 시리즈의 연속선상에서도 <캡틴 마블>은 훌륭한 영화다. 현재 MCU는 <아이언맨>에서 시작해 <어벤저스: 엔드게임>으로 이어지는 '인피니티 사가 Infinity Saga'를 진행하고 있는데, <캡틴 마블>은 인피니티 사가를 마무리할 <엔드 게임>에 앞서서 여러 질문에 답을 해줘야 했다. 캡틴 마블은 왜 합류해야 하는지, 왜 이제야 등장하는지, 왜 하필 닉 퓨리는 캡틴 마블을 호출했는지 등. <캡틴 마블>은 이러한 질문에 적절히 답을 주며 <인피니티 워> 쿠키영상의 떡밥을 완벽히 회수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어벤저스의 시초를 보여주고 시간대 상으로 <퍼스트 어벤져>와 <아이언 맨> 사이의 간극을 채워주기도 한다. 대망의 마무리를 앞둔 깔끔한 세계관 정리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4. 하지만 이처럼 거시적인 이슈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 그리고 시리즈의 속편이라는 정체성을 잘 살려낸 것 외에 영화 내부에 상당한 문제점이 존재하는 것은 아쉽다. 제일 큰 문제 관객 이 '캐럴 댄버스'를 이해할 수는 있어도 감정 이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영화는 크리 행성에서의 캐럴을 빠르게 보여준 뒤, 지구에 불시착해서 닉 퓨리와 예전 동료인 마리아를 만나는 캐럴과 과거의 그녀의 이야기 플래시백으로 교차해서 풀어낸다. 아마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처럼 과거와 현재의 스토리가 맞아 들어가면서 히어로가 탄생할 때의 감흥을 최대치로 끌어내려던 시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와는 정반대로 캐럴의 과거는 현재 스토리의 흐름을 끊을 뿐이고 따라서 원하던 결과를 맺지 못했다. 주인공에게 집중할 수 없으니 그에게 공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편집에도 문제가 있지만, 영화의 연출에도 문제가 많다. 영화는 캐럴이 과거에 넘어졌다가 일어나는 장면들과 슈프림 인텔리전스의 통제를 벗어나는 장면을 통해 그녀의 정신적 각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문제는 영화 상으로 그가 정신적으로 좌절할 만한 사건이 없다(...)는 점이다.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처럼 개인의 정체성을 둘러싼 처절한 내적 갈등과 고민을 <캡틴 마블>에서는 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캐럴이 슈프림 인텔리전스에게서 벗어나고, 자신의 능력치를 깨달으며, 능력을 활용한 하이라이트 액션씬 모두 MCU의 전작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벅찬 감동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유머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아마 과거에 실패한 많은 히어로 영화들이 남긴 액션도 스토리의 연장선이라는 교훈을 까먹은 부분인 듯싶다.



5. 이외에 MCU라서 유독 아쉬운 부분도 있다. 사실 크리와 스크럴의 대립은 MCU 영화들을 모두 챙겨본 사람이라면 반전을 손쉽게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이다. 액션 시퀀스도 감정적인 면이 아닌 그 수준만 떼어놓고 보면 나쁘지 않지만, 이미 <윈터 솔저>, <시빌 워>, <인피니티 워> 등에서 수준 높은 액션을 맛본 관객들 입장에선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이는 루소 형제가 연출하지 않는 대부분의 MCU 영화(<스파이더맨: 홈커밍>, <블랙 팬서> 등)에서 나타나는 문제로, 액션 시퀀스의 컷과 컷 사이의 템포가 한 박자씩 늦어지며 액션이 지루해지곤 한다. <캡틴 마블>의 경우 '욘-로그'와 '로난' 등의 빌런이 캠틴 마블의 능력에 걸맞지 못한 점도 액션씬의 퀄리티를 낮추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번 빌런들은 단지 능력뿐만 아니라 그 매력이나 개성적인 부분도 스테레오 타입이거나 맥거핀화되면서 근래 MCU 영화 기준에 크게 못 미치긴 한다. 차라리 구스가 메인 빌런이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6. 종합하면 <캡틴 마블>은 페미니즘과 난민이라는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된 이슈를 잘 활용하고, MCU라는 세계관과 인피니티 사가를 위한 교두보로서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대가로 단독 작품으로서의 완성도 또한 놓쳐버린 셈인데, MCU이기에 가능하고 그래서 아쉬운 영화다.

 

A (Acceptable, 무난함)

숲만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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