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두 얼굴을 보다

<로스트 도터> & <굿 럭 투유 리오 그랜드>

by KinoDAY

보통 사람들은 막내와 늦둥이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죠. 그래서 제가 막내라는 걸 알던 사람들도 늦둥이라는 걸 알고 나면 더 많은 질문을 합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요. 늦둥이라서 좋은 거 있어?" 라든가 "늦둥이면 누나들이 되게 귀여워하겠네?"와 같은.


그러면 저는 늘 답을 얼버무립니다. 누나들과의 사이가 유달리 좋다고 느낀 적은 없으니까요. 또 늦둥이라서 좋겠다는 말에는 굳이 반박하지 않는 편입니다. 다만 일장일단이라고 좋은 게 있으면 항상 나쁜 것도 있는 게 세상일이라고 속으로는 생각하죠. 부모님의 경제적, 사회적 전성기와 늦둥이의 인생 그래프는 묘하게 빗겨 나가기 마련이라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기도 하고요.


다만 나이를 먹으면서 늦둥이에게 특권 아닌 특권이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기 어려운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원치 않게, 또 예상치 못하게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이겠죠. 특히 인상적인 두 순간이 있습니다. 일단 군대에서 반년 만에 휴가를 나와 막 백 일이 된 조카를 만난 날입니다. 덕분에 저는 누나의 육아를 옆에서 미력하게나마 돕고 나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전역 후 반년 만에 팬데믹이 닥친 것도 한몫했습니다. 비대면 강의를 끝내고 방에서 나오면 거실에는 육아 휴직을 한 누나와 나날이 키도 크고 무거워지는 조카가 있었으니까요.


또 다른 순간은 엄마가 짐을 내려놓는 순간입니다. 육아라는 짐을 거의 덜어낸 후 새로운 취미,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엄마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베란다 가득 식물원을 만들거나 어릴 적 꿈이셨던 미술에 도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어찌 보면 엄마로 거듭나는 첫 단계와 엄마의 역할을 끝내는 마지막 순간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경험이 제게 소중하거나, 저의 시야를 틔워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로스트 도터>와 <굿 럭 투유 리오 그랜드>를 보기 전까지는요. 두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에야 저는 늦둥이로서의 삶에 숨겨진 특권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두 영화는 정확히 제가 가족들에게서 목격한 순간을, 여성이 엄마로 거듭나고 또 엄마로서의 삶을 내려놓는 순간을 스크린에 띄워 놓은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로스트 도터> 모성애라는 금기에 갇힌 욕망을 마주하다


그리스로 혼자 휴가를 떠난 대학 교수 '레다(올리비아 콜맨)'. 바닷가에서 유유자적하던 그녀의 눈에는 마찬가지로 해변에 놀러 온 젊은 엄마 '니나(다코타 존슨)'가 계속해서 들어온다. 딸 엘레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딸과 잠시 떨어진 사이에 꽤나 힘들어하는 니나의 모습을 보면 레다는 자신의 두 딸을 떠올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평화롭던 레다의 휴가에 조금씩 균열을 생긴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그렇듯이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던 차에 갑자기 엘레나가 실종되고, 레다는 해변가 숲에서 그녀를 찾아 니나에게 되돌려 보낸다. 그리고 레다는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과거의 자신(제시 버클리)'을 니나와 겹쳐 보면서 상념과 혼란에 빠져든다.


<다크 나이트>, <크레이지 하트>, <나의 작은 시인에게> 등에 출연한 배우 매기 질렌할의 연출 도전작인 <로스트 도터>. 감독의 데뷔작인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화려한 실적을 자랑합니다. 2021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후,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죠.


사실 노미네이션의 강렬함에 비해 <로스트 도터>의 도입부는 좋게 말해 평이하고, 나쁘게 말해 재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로 휴가 온 레다가 숙소에 짐을 넣고, 바닷가에서 햇볕을 쬐며 책을 읽고, 바다를 보며 식사하는 장면이 전부입니다. 왜 이 작품이 그 찬사를 받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평화롭고 또 지루하죠. 그나마 몇몇 관광객들과의 불화, 바닷가 카페 아르바이트생인 '윌(폴 메스칼)'과의 대화만이 지루함을 견딜 버팀목입니다.


그러나 평이함이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목에 걸맞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영화는 강렬한 서스펜스가 자아내는 격랑 속으로 관객을 빠뜨리죠. 마치 이 순간을 위해 감추어 왔다는 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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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전에 여성을 놓을 수 없던 그녀

그 중심에는 인형이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니나는 딸 엘레나를 잃어버리고, 레다는 다른 바닷가 관광객들과 함께 그녀를 찾아 나서죠. 해변 옆에 있는 숲에서 엘레나를 발견한 레다는 니나에게 딸을 돌려보내는 한편, 엘레나가 들고 다니던 인형을 남몰래 가져갑니다. 사건의 발단이죠. 이후 레다는 그 인형을 극진히 돌봅니다. 인형이 레다의 현재와 과거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인형은 수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던 그녀의 죄책감과 모성을 포기했던 과거에 대한 회한을 스크린 위로 불러와 줍니다.


젊은 시절 교수가 되기 위해 학업에 열중해야 했던 레다는 첫째 딸 비앙카에게 자신이 아끼던 인형 미니 마마를 물려줍니다. 이때 영화는 인형이 일반적인 의미가 아닌 부정적인 의미에 주목합니다. 보통 인형은 부모의 사랑이 담긴 선물로 여겨지죠. 그러나 이를 비틀면 부모를 괴롭히거나 방해하지 말고 알아서 시간을 보내라는 속뜻도 담겨 있습니다. 사랑의 증표이면서도 부모 자식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이중적인 상징이죠. 엄마의 속뜻을 알아챈 비앙카가 인형을 괴롭히며 서운함과 미움을 드러내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레다는 비앙카를 달래는 대신 도리어 인형을 아끼지 않는다며 딸에게 화를 내죠. 인형을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인형은 도로 위에서 산산이 부서집니다. 부서진 인형은 아이와의 관계를 끊어버린 엄마 레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죠. 이 순간을 기점으로 <로스트 도터>는 단순히 '딸을 잃어버린' 이야기가 아닌, '딸을 포기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lost가 lose의 과거형인 만큼, 단지 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딸을 포기했던 이야기에 관한 것으로 읽어낼 수도 있죠.


그래서 레다는 엘레나의 인형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막 엄마가 되어야 했던 과거의 자신을 회상하고, 마찬가지로 처음 엄마가 된 니나를 알아가기 시작하죠. 이렇게 옛 기억과 새로운 만남 사이에서 영화는 모성애라는 금기가 숨기고 있던 여성의 욕망을 가감 없이 스크린에 펼쳐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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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이미지를 파괴하다

그러자 평화롭던 이야기에는 긴장감과 불편함이 깃듭니다. 젊은 레다, 나이 든 레다, 니나라는 세 엄마의 교집합이 고루한 엄마의 이미지를 여러 방면에서 파괴하고자 하기 때문이죠. 제시 버클리의 젊은 레다는 딸들과의 전화가 그녀를 지루하게 하고, 그녀 또한 딸들을 재밌게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다정다감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파괴합니다. 올리비아 콜맨의 레다는 아이들을 떠날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며 펑펑 웁니다. 그녀는 성모 마리아와 같은 희생적인 어머니 모델과는 거리가 멀죠. 다코타 존슨의 젊은 엄마 니나는 결혼 후 가족과 완전히 어울리지 못한 채 자신의 존재감을 잃고 방황합니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는 엄마의 이미지에 썩 들어맞지 않죠.


이들이 기존의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괴로워하는 데는 공통의 이유가 있습니다. 희생 대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이기심이 그 이유입니다. 이 욕망은 레다와 니나의 관계가 평탄치 않은 이유이기도 하죠. 니나의 고모를 비롯해 니나의 가족들은 레다를 의심합니다. 레다는 자신이 타고난 엄마가 아니란 걸 인정하고, 어머니가 희생정신으로 무장해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단호히 부정하기 때문이죠. 그들은 레다가 니나를 추동하지 못하도록 견제합니다. 니나가 레다와 함께 있는 매 순간을 방해하며 레다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죠. 일례로 레다는 영화관에서 난동을 부리는 남자들에게 항의하지만, 그들은 관리인이 올 때만 조용히 하며 그녀가 유달리 예민한 인물인 것처럼 대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레다는 니나를 보며 마음에 깊이 묻어두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립니다. 휴가지 바닷가에서 만난 한 여성과의 관계 안에서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딸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사연을 이야기하죠. 니나 또한 레다에게 결혼과 육아에 지친 자신을 고백하고요. 외도라는 공통의 경험 덕분에 그들의 관계는 더 끈끈해집니다. 물론 젊은 레다와 니나 모두 외도와 불륜이 잘못된 관계임을 이미 알고 있죠. 하지만 그들은 애인을 통해 아이들과 육아라는 짐을 떨쳐낸 자기 가치를 재확인합니다. 레다는 자신의 학문적 능력과 업적을 알아주는 하디 교수와 사랑에 빠집니다. 니나는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인정해주는 윌과 눈이 맞죠. 이는 두 엄마 모두에게 잘못된 걸 알더라도 포기하기에는 너무 달콤한 열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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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로서의 모성애

그렇다고 해서 <로스트 도터>가 모성애의 기존 가치와 중요성을 아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피 흘리는 레다가 두 딸과 통화하는 마지막 장면만 보더라도 이기적인 엄마였던 레다마저도 결국에는 완전히 모성애에 담긴 의미를 완전히 파괴하거나 거부하지는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일시적으로나마 모성애를 둘러싼 금기를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모성애는 그간 인류를 지탱해 온 신화 중 핵심적인 요소죠. 일례로 그리스 신화의 가이아를 비롯해 수많은 고대적 여신들의 역할은 출산을 통한 우주와 생명의 창조였습니다. 인간에게 여성의 출산과 어머니로의 변화는 항상 신성시되었고,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되는 질서로 여겨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모성애는 그 자체로 금기였기에 성스럽고 거룩한 대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정하고 위험하거나, 성스럽고 거룩한 금기의 대상은 인간에게 허용되지 않습니다. 금기는 특정한 의미 체계와 사회 질서를 설정하여 카오스(Chaos)를 초래하려는 욕망을 통제하기 때문이죠. 달리 말해 다양한 사회적 금기는 범람하는 강물을 제어할 둑을 쌓는 것처럼 인간의 삶을 추동하는 욕망을 절제된 형태로 표출할 통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모성애라는 금기는 여성이 자기 즐거움을 누리려는 욕망을 통제하고 육아에 전념하도록 유도합니다. 그 대가로 여성에게 엄마라는 새 정체성 안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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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규정하는 모성애의 이미지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안정성은 일시적으로 파괴될 때 재확인되고 강화된다. 금기의 위반은 안정적인 일상을 헤집어 놓고, 허용되지 않은 경험을 가능케 합니다. 이후 안정된 일상으로 복귀하면 이 경험은 일상의 근간이 되는 금기를 더욱 강화하죠. 여행이나 축제에서 일탈을 맛본 후 평상시 삶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한 맥락입니다. 이는 엄마의 자격을 던져버리고자 했던 니나와 그런 니나에게 공감해주던 레다 간의 연대가 깨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불륜의 장소로 낙점된 레다의 휴가 숙소에서 레다의 휴가가 끝남으로써 그들은 각자 엄마로서의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로스트 도터>는 여성은 자녀를 포기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잠시 고통 때문에 자녀가 미워지더라도 균형을 찾고 온전한 행복을 추구할 방법을 보여주는 작품에 가깝죠. 오프닝 장면을 다시금 떠올려 보면, 희생적인 모성애가 지탱하던 평화로운 세계가 이기적인 모성애와 일탈로 인해 불안정했다가 다시금 회복되는 영화니까요.


매기 질렌할 감독은 원작 소설을 두고 “엄마, 연인, 여성으로서 느낀 은밀한 감정들이 책 속에 표출되었다. 기이하고 고통스럽지만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느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화도 엄마의 특정한 이미지만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처음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숨 막히는 압박을 느끼는 엄마의 모습도, 그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찾는 엄마도 긍정합니다. 그 순간들을 견뎌낸 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고 자부하기도 하는 엄마의 모습에는 박수를 보내죠.


물론 <로스트 도터>는 근본적으로 성별, 아이의 유무, 육아 경험의 정도와 같은 다양한 기준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죠. 어떤 모습의 엄마에 익숙하든 간에, 모성애라는 금기를 깨는 이들의 용기를 부정할 수는 없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로스트 도터>는 모성애를 둘러싼 신화에 도전하며, 그 금기에 숨겨져 있던 격동의 현실을 스크린 위로 끄집어 올립니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금기에 도전하는 쾌감


2년 전 남편과 사별한 60대 여성 '낸시(엠마 톰슨)'. 교직에서 퇴직하고 아이들마저 성인이 되어 자신을 떠나 홀로 남게 되자 그녀는 처음이지 마지막으로 인생의 숙원이었던 버킷리스트를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단 한 번도 섹스에 만족해 본 적이 없으니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갖기로 한 것. 그런 그녀의 앞에 젊고 매력적이며 자신의 일에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리오 그랜드(다릴 맥코맥)'가 나타난다. 마침내 버킷리스트가 현실이 되려는 찰나에, 긴장해서인지는 몰라도 낸시는 리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리오도 유려하게 답하며 그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대화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두 남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생의 방향성을 둘러싼 고민에 직면한다.


사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여러모로 놀라운 영화이기도 하죠. 영화팬들에게 익숙한 대배우 엠마 톰슨이 처음 노출 연기에 도전한 작품이자, 성매매자들의 이야기를 양지에서 다루는 영화입니다. 성을 사는 이가 중년 여성이고 파는 이가 청년 남성이라는 점도 예상을 빗겨나가는 지점이죠. 여기까지만 보면 그 어떤 작품보다도 선정적이고 논란으로 가득한 영화일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도 부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첫인상만으로 평가받기에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를 관통하는 주제가 눈에 밟힙니다. 단순히 성매수자와 성매매자가 네 차례에 걸쳐 만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보다는 수십 년간 강력한 금기에 묶여 있던 사람이 예상 밖의 만남 덕분에 자신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알을 깨고 나오는 부화 과정을 그려낸 영화에 가깝습니다. 특히 <로스트 도터>가 막 엄마가 되어가는 여성들의 딜레마를 다룬다면,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엄마의 역할을 끝낸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춘 영화라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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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가 접한 완전히 새로운 섹스

영화의 목적이 성적 만남을 중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낸시와 리오의 첫 만남에서부터 두드러집니다. 카메라는 리오 그랜드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낸시 모습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리오의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한 낸시의 리액션에 주목하죠.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평생 주어진 사회의 규칙을 충실히 따른 사람입니다. 은퇴한 60대 종교 교사였던 그녀는 대학원에 다니는 아들과 스페인에서 예술을 하는 딸을 하나씩 두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했으며, 자신의 오랜 커리어도 아름답게 마무리했죠.


그녀는 리오의 서비스를 예약하면서 두 개의 전혀 다른, 하지만 어찌 보면 하나로 연결된 반응을 보입니다. 낸시는 우선 섹스에 대해 대화를 나누죠. 그간 그녀는 자신의 감정이나 쾌감 대신 남편의 욕구와 만족만을 우선시했죠. 그래서 낸시는 섹스를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담대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또 궁금한 게 많을 수밖에 없죠. 그녀는 리오에게 경험한 상대방의 수나 다양한 체위에 대해서도 물어봅니다.


하지만 리오의 청산유수 같은 대답은 단순히 섹스에 대한 답 그 이상입니다. 낸시가 리오와의 대화를 통해 완벽해 보이던 자기 삶이 사실은 완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죠. 그녀는 리오보다 오랜 기간을 살았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과 그만큼 공허한 것들이 많다는 현실을 알게 됩니다. 만약 그녀가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감싸고 있던 알과 껍질은 더 강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리오 그랜드를 만난 후 낸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변화를 보여주는 수단이 단지 섹스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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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방향을 바꾼 그녀의 오르가즘

한편으로 그녀는 리오를 궁금해하기도 합니다. 낸시는 수십 년간 자기 삶을 구성한 원칙과 신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리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더 알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리오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용기와 결함이, 깨달음만큼이나 깊은 고정관념과 편견이 함께 드러난다는 점이죠. 낸시는 리오가 숨기려 했던 사적인 정보를 캐내고, 호텔 방 밖에서도 만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고 착각합니다. 그에게 당당히 직업을 밝히고 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해보라고 권하죠. 정작 본인은 모범적인 삶을 사는 아들을 지루해하고 정반대로 열정적으로 자유롭게 사는 딸을 골치 아파하면서요. 리오 입장에서 그녀의 조언은 내로남불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부조화와 모순마저도 낸시가 깨나가야 하는 또 다른 알껍데기라 할 수 있습니다.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반복하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이를 스스로 지워나가는 과정이 있어야 그녀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요. 결국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단지 섹스와 성매매에 대한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그저 트리거에 불과합니다. 성을 비롯한 다양한 금기에 자신을 가두고 있던 개인들이 비로소 금기를 깨고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야말로 영화가 진정으로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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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낸시가 리오와의 섹스가 아닌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한다는 점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입니다. 그녀가 섹스로 상징되는 자신을 향한 억압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타인에게 지닌 고정관념과 편견마저도 떨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한 단계 성장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기 때문이죠. 또 리오에게 이별을 고한 낸시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당당히 바라보는 장면도 꽤 감동적입니다. 섹스와 같은 금기에 그저 갇혀 있는 대신, 60여 년간 살아온 자기 삶과 자기 자신을 성찰하며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길을 찾는 모습은 누구든 본받을 가치가 있으니까요.


소피 하이드 감독은 데뷔작인 <52번의 화요일>로 제30회 선댄스영화제 감독상과 제6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수정곰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금기 내지는 성역이라 여겨지는 소재를 이용해 보편적인 삶의 자세와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내는 도전적인 스토리텔링의 맛만 보더라도 그 이유는 놀랍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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