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쉘> & <D.P.>
제가 고함20에서 활동을 한 계기는 자의 반 타의 반이었습니다. 대학신문 특채 면접을 봤지만, 이런 저런 사정이 겹쳐 탈락한 게 타의였습니다. 군대 사지방에서 고함20의 기사를 읽은 건 자의였죠. 특히 "하태경 의원님, 페미니스트 청년은 청년도 아닌가요?"라는 제목의 기사 중 "하 의원이 짚어낸 20대 남성의 문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유의미한 것이 있다. 징병제다. 징병제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청년 남성의 대안 정당은 필요하다."라는 대목을 읽고는 '아 이곳에서 활동하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졌었죠.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고함20에서의 나날이 항상 예상한 대로는 아니었습니다. '청년'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했지만 고함20의 청년에도 제한이 있는 듯 느꼈기 때문이죠. 군대 내 괴롭힘이나 군대 내 채식 식단 등을 기사로 쓸 때마다 많고 많은 기삿거리 중 왜 이대남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뉘앙스의 피드백을 받으면 항상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왜 징병제라는, 남성 간의 위계로 인한 어려움을 인정하거나 살펴보려 하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가부장제하에서 기득권 남성에 의해 억압받는다는 점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젊은 남성과 여성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같은 여성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는 계층, 나이, 인종 등 서로 다른 처지와 상황으로 인해 차이가 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젠더 갈등이 나날이 심해진다는 기사나 통계를 보면 가끔은 애꿎은 피해자들 간의 싸움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을 안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서로에게 주어진 사회구조적 억압과 차별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이해시키고, 서로의 공감을 끌어내려는 노력이 없지는 않습니다. <밤쉘>과 <D.P.>는 그 노력 중 가장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남성적 사회 구조 내에서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어떤 차별을 당하고 있는지, 그리고 남성이라는 사회 안에서 또 어떤 억압과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죠.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트럼프와 설전을 벌인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는 트럼프의 계속된 트위터 공격으로 화제의 중심에 선다. 그녀는 트럼프의 공격에 대해 폭스뉴스의 회장인 '로저 에일스(존 리스고)'가 자신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신을 이용해 화제성을 유지하려 하는 것에 불만을 품는다. 한편, 폭스뉴스의 앵커로서 스타덤에 오르겠다는 야망에 불타는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은 로저 에일스에게 접근하다 그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고통에 시달린다. 때마침 메긴의 동료이자 케일라의 상사였던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수년간 이어진 로저 에일스 회장 성희롱 건을 고소하고, 세 여성은 조금씩 ‘언론 권력의 제왕’인 로저 에일스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많은 여성 영화들은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이 자행되는 구조를 고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더 나아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이 어떻게 연대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찰하죠. 2018년에 있었던 폭스뉴스 스캔들을 영상화한 <밤쉘:세상을 바꾼 폭탄선언>도 다르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선택한 스토리텔링 방식이죠. 영화는 폭스뉴스 사옥 건물을 중심으로 여성 억압의 구조적 측면을 부각하고, 여성 운동의 진정한 목적을 일깨웁니다.
실제로 <밤쉘>은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뉴스 채널인 폭스뉴스의 사옥 구조를 메긴 켈리의 입을 빌려 설명하면서 시작하죠. 얼핏 봤을 때 이 장면은 공간적 배경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제공해 이해를 도우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메긴의 설명이 끝나면 관객은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죠. 그 순간 폭스뉴스의 사옥은 여성 차별이 자행되는 구조의 축소판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구조와 위계의 폭력이 깃든 공간을 조명하다
수많은 보수 일간지들과 여러 사무실이 밀집되어 있는 건물 구조를 설명할 때 영화는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폭스뉴스의 오너인 머독의 사무실이 8층이라는 것, 회장이자 사실상의 편집장 로제 에일스의 사무실은 2층이라는 것, 그리고 수많은 실무자가 일하는 장소는 대부분 지하에 있다는 사실이죠. 이러한 건물 구조는 남성 중심적 사회의 두 가지 문제점을 꼬집습니다. 우선 남성들이 장악한 권력은 건물의 지상에 있고, 권력의 피해자인 대다수 여성이 건물 지하에서 일하는 모습은 유리 천장의 다른 버전처럼 보입니다. 또한 회장의 사무실이 오너 일가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은 층에 있다는 사실은 로저 에일스의 성추행이 그저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적 구조가 유발한 문제임을 암시합니다.
작중 그레천 칼슨의 폭로가 폭스뉴스 회사 내에서 다루어지는 방식은 위의 권력 구조, 곧 건물 구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2층에 위치한 폭로 당사자인 로저 에일스는 자신이 여성들을 고용하고 스타로 만들었음을 강조합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지하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들이 자신을 옹호하는 변명을 외부에 늘어놓도록 지시하죠. 미디어 업계 종사자라는 특성상 상하 관계가 분명하고, 폭스뉴스의 악명 때문에 다른 매체로 이직하는 게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도 악용합니다. 이는 여성들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해자의 편을 들게 되는 이유를 꿰뚫습니다. 로저에게 성추행당한 메긴이 자기 경력, 생활비, 자녀들의 교육비 등을 이유로 그레천의 편에 서는 것을 망설이는 것처럼요.
동시에 영화는 진짜 원인이 그가 아님을 강조합니다. 여성들을 이용하는 로저 에일스 또한 체스판의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죠. 8층에 자리 잡은 머독 일가는 로저와 지속해서 마찰을 일으키고, 그를 내쫓기 위해 그의 성추문 폭로를 이용합니다. 그가 막대한 이윤을 남길 때는 성추행에 관심이 없었으나, 그가 회사에 불이익이 되는 순간 내쫓죠. 그래서 케일라는 루퍼트 머독이 로저를 회사에서 내보낸다는 공지를 발표하자 그 길로 퇴사합니다. 진정한 원인은 제거되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이처럼 작중 지하와 지상, 지상 2층과 8층이 강조된 폭스뉴스의 사옥은 현실의 축소판이나 다름없습니다.
엘리베이터에 깃든 여성성
흥미롭게도 여성 차별의 구조인 건물 안에는 해결책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엘리베이터입니다. 작중 인물들은 수직의 구조로 이루어진 폭스뉴스 건물의 각 층들을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오갑니다. 특히 영화는 케일라, 메긴, 그리고 그레천이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죠. 이름에서 드러나듯 올라가는 것이 엘리베이터(Elevator 혹은 Lift)의 가장 큰 기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합니다. 세 여성 모두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건물과 폭스뉴스의 구조에 반대한다는 점을 멋지게 표현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또 세 여성이 그 안에서 서로의 상황을 눈치채고, 은연중에 협력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엘리베이터는 곧 여성 간의 연대를 뜻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엘리베이터에 탄 세 캐릭터가 의미하는 바도 간과하면 안 됩니다. 겉만 보면 셋은 다 같은 금발 머리 여성(Bombshell, 밤쉘은 금발 여성을 뜻하는 어휘이기도 하다) 일 뿐이죠. 하지만 사회의 위계질서를 함께 거슬러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는 청년, 중년, 장년의 서로 다른 여성이 타 있습니다. 가장 어린 케일라는 성추행당했는지 묻는 메긴에게 그녀 역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기득권층에 불과하다고 쏘아붙입니다. 반면에 중년에 접어든 메긴은 그녀 역시 남성 상사가 인사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며 억울함을 역설하고 분노를 표하죠. 장년 여성인 그레타는 그녀처럼 성추행당한 여성들이 숱하게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자신이 더 일찍 나서지 못한 것을 자책합니다.
서로 다른 상황에 부닥친 케일라, 메긴, 그레타는 서로 간에 믿음이나 신뢰가 거의 없습니다. 케일라가 메긴을 비난하는 것처럼 그레타는 메긴이 자신과 뜻을 같이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메긴 역시 로저의 성추행을 폭로한 후에도 그레타와 별다른 인사를 나누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대목에서 엘리베이터 장면은 더더욱 <밤쉘>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여성 운동의 지향점이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민 끝에 변호사에게 증언하던 메긴이 자신 외에도 20여 명이나 되는 피해자의 존재를 깨닫고 놀라듯, 영화는 비록 현실적으로 각기 다른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해도 여성들이 연대할 때 비로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여성도 다 같은 여성은 아닙니다
사실 영화의 주인공이자 로저 에일스의 성추행 사건의 판을 뒤바꾼 메긴 켈리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작중 그녀는 골빈년이라는 비난에는 아랑곳하지 않지만 “부부간 강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정보에는 흥분하죠. 로저가 자신과 다른 동료들에게 성공의 기회를 주었다고 인정하면서도 폭스뉴스가 직장 내 성희롱을 방관한 것에 대해선 미국 민권법 제7조에 따라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현실의 그녀 역시 “예스 민즈 예스(Yes means Yes)” 운동이 남성 혐오적이라고 평했죠. 또 블랙페이스(백인이 얼굴을 검게 칠해 흑인 분장을 하는 것)가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말했다가 이직한 회사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최근 미디어 내 인종 다양성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트윗을 올려 다시 한번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로스쿨을 졸업한 기득권층 엘리트 백인 여성의 존재 덕분에 <밤쉘>의 메시지에는 설득력이 생깁니다. 일반화된 금발 여성 세 명이 한 쇼트 안에 담기자 역으로 여성이라는 이미지 안에 갇힌 세 사람의 다양성이 드러나기 때문이죠. 통념에서 어긋나는 메긴 켈리가 주인공이기에 모든 여성의 경험은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스크린에 묻어져 나올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다양성 내에서 존재하는 공통된 차별과 피해의 경험이 더욱 강조되고, 연대하여 구조적인 차별과 억압에 맞서야 한다는 영화의 메시지에는 더 큰 힘과 진정성이 실리는 것이죠.
물론 <밤쉘>이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특히 피해 여성들의 음성을 직접 들려주거나 작중 캐릭터들이 카메라를 빈번하게 직접 들여다보는 연출은 사건의 무게감을 강조하면서도 극 영화와 다큐멘터리 사이 경계를 허물어 혼란을 안기기도 하죠. 그런데도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 해야 할 말을 시원하게 다 하는 영화임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건물이라는 메타포가 마음에 들면 더욱 그럴 것이고요.
훈련소를 수료하고 헌병대로 자대 배치를 받은 이병 '안준호(정해인)'는 선임인 '조석봉(조현철)'의 친절과 병장인 '황장수(신승호)'의 괴롭힘 속에서 군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우연히 준호의 관찰력과 집요함을 확인할 수 있었던 중사 '박범구(김성균)'는 그를 D.P. 팀으로 옮기지만, 준호는 첫 번째 임무에서 선임의 실수로 인해 처참히 실패하고 영창살이를 하게 된다. 그러나 새롭게 부대에 부임한 대위 '임지섭(손석구)'은 준호의 실패가 온전히 그의 책임이 아니라 판단하고, 본래 D.P. 팀이었던 상병 '한호열(구교환)'을 복귀시켜 준호와 같은 팀으로 배치한다. 천방지축이지만 풍부한 경험을 쌓은 호열은 준호에게 필요한 노하우를 알려주고, 그들은 한 팀으로서 탈영병들을 쫓기 시작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는 공개 직후부터 엄청난 이슈몰이를 했죠. 수많은 현역과 예비역들의 악몽을 유발하는 사실적인 군 생활 고증이 큰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기의 배경이 단지 리얼함 때문은 아니라는 겁니다. 잊고 싶은 그 리얼함마저도 화제가 된 진짜 배경에는 변하지 않는 군대와 시스템에 대한 회의감이 자리합니다.
<D.P.>를 수놓은 군대의 고질병들
제목인 <D.P.>는 탈영병 추적병을 뜻하는 Deserter Pursuit의 줄임말입니다. 드라마는 이름대로 탈영병을 체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추적병의 이야기를 여섯 에피소드로 나누어 담아냅니다. 그 과정에서 드라마는 자연스레 각 탈영병의 사연을 소개하고 각종 병영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죠. 살인자를 잡기 위한 첫 단계로 살해 동기를 파악하듯, 탈영병들을 체포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탈영 동기를 알아야 하니까요. 구타, 방독면 씌우고 물 붓기, 라이터로 음모 태우기, 자위행위 강제하기, 얼굴에 살충제 뿌리기 등 군대를 경험했다면 직간접적으로 접했을 사실적인 이야기가 탈영 동기를 가득 메웁니다.
그 외에 군대의 여러 모순점을 가차 없이 비판합니다. 군대에 갈 경우 가족을 돌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는 징집률이 약 90%에 이르는 현행 징병제도를 유지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들죠. 타 부대와 협동하여 탈영병을 잡는 과정에서는 병사와 병사, 병사와 간부 간의 갈등에 가려져 있던 부사관과 간부 간의 대립과 부조리가 수면 위로 떠 오릅니다. 육군 주임원사들이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육군참모총장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던 사건과 오버랩되는 대목이죠. 박찬주 전 육군 대장 갑질 사건 사건처럼 일부 간부들이 병사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악습 역시 카메라가 포착합니다.
심지어 갓 입대한 이병 안준호의 시점에서 사건들이 묘사되어 더욱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게 특징입니다. 아직 군대와 사회 사이에 있는 이병 계급의 특성 덕분에 단지 탈영병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군대 조직 전반의 문제로 사건들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첫 번째 탈영병을 잡지 못하는 에피소드에서는 탈영병이 겪은 폭력만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서류와 현실이 따로 놀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면피하려는 군대 특유의 문화를 제대로 꼬집으며 탈영병을 잡지 못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놓치지 않죠.
개인이 아닌 조직과 시스템 전반의 문제
또한 <D.P.>는 단지 문제를 열거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모두가 경험했거나 알고 있는 모순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은 채 존속되는 원인을 나름대로 진지하게 파헤쳐 봅니다. 조석봉 일병과 황장수 병장의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죠. 평범한 미대생이자 친절한 학원 선생님이고 후임인 준호에게 "우리는 선임처럼 되지 말자"라고 말할 정도로 선량한 청년이었던 석봉. 그는 거듭되는 황장수의 폭행에 시달리다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하나의 괴물, 복수귀로 변해갑니다. 황장수에게 복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를 사로잡은 순수한 기쁨과 광기, 그리고 해방감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죠.
이 선후임 관계를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황장수가 저지른 범죄는 끔찍하지만, 그 역시 일부분은 군대라는 조직이 만들어 낸 피해자라는 사실을 지적하죠. 왜 자신에게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고 미안해하지 않느냐는 석봉의 말에 장수는 "그냥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어"라고 대답합니다. 그 대답은 전역 후 아르바이트하는 장수가 처한 상황과도 맞닿아 있죠.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치우려는 장수에게 사장은 군필이 일을 그렇게밖에 못하냐고 비난합니다. 이 비난 밑바탕에는 좋은 게 좋은 것이고, 본인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주지 않는 한 현행 유지가 주목적인 군대라는 조직의 생리가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장수의 대답을 들은 석봉도 비슷한 맥락으로 항변합니다. 내가 저지른 범죄만 범죄냐고요. 나를 체포해 부대로 되돌려 보내려는 너희들도 내가 고통받는 것을 알고도 내버려 두지 않았느냐고 일갈하죠. 이렇게 <D.P.>는 두 선후임의 입을 빌려 적극적인 저항을 할 수 없고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황의 병폐를 꼬집습니다. 군대니까, 곧 군대가 끝날 거니까, 군대가 끝났으니까라는 이유로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죠. 개개인의 잘잘못을 따진다고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회의감과 문제의식은 마지막 에피소드의 부제인 '방관자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군대의 모순이 살아 숨 쉬는 존재, D.P.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사실 DP병의 존재는 그 자체로 작품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탈영병을 잡아 오는 게 임무인 DP병은 군대라는 조직이 와해하지 않도록 하는 작업의 최전선에 위치한 이들이죠. 그런데 그들도 부내 안에서는 탈영병의 경험과 다를 것 없는 부조리에 시달리고 같은 잘못을 범합니다. 군대에 끌려와 피해자가 된 이들이 오히려 범죄자로 전락하는 딜레마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보직이 바로 D.P.인 것이죠. 다섯 번째 에피소드의 부제 '군견'처럼요.
그러다 보니 두 주인공의 서사에 큰 비중이 주어지지 않은 점은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기도 합니다. 시즌제를 염두에 둔 측면이 있겠죠. 모든 이야기를 첫 시즌에 풀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다만 탈영병의 사연을 전개의 중심에 두고, 각각의 사건을 소개하기 위한 도구로서 그들을 쫓는 준호와 호열을 이용하다 보니 주인공인데도 중심에서 밀려나 있는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탈영병 한명 한명의 사연이 한국군의 모순점을 증언하고 있으니 비중이 더 적은 듯 느껴지기도 하죠.
결말까지 우직한 <D.P.>의 문제의식
그런데도 마지막 순간까지 일관된 톤, 문제의식, 명확한 메시지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D.P.>는 박수받을 자격이 충분한 작품입니다. 결말만 보더라도 이 드라마의 우직함이 느껴지죠. 일견 <D.P.>의 결말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듯 보입니다. 준호는 대대장의 훈시가 끝난 후 다른 병사들의 대열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마치 자신부터 달라지면 군대가 변할 수 있다는 희망과 다짐을 상징하는 것처럼요.
그러나 2014년에 실제로 발생한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모티브가 된 듯한 쿠키 영상을 통해 <D.P.>는 그 희망의 범위를 축소합니다. 드라마의 배경이 2014년이기에 더욱더 충격적이죠. 석봉의 말마따나 6.25 전쟁 때 쓰던 수통이 아직도 훈련소와 자대에서 버젓이 사용되는 이상, 군대에 꽃필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얼마나 나약한지, 냉혹한 현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8년이 지난 2022년 현재에도 가끔 들려오는 군대 내 악습과 구조적 문제를 보면 이렇게 최소한의 희망만을 간직한 채 군대라는 조직의 생리와 특성을 솔직 담백하게 담아내는 <D.P.>의 선택이 많은 공감을 샀던 것도 이상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