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을 숭배하는 세상 과연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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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챕터를 쓸 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챕터를 추가한 이유는 '노력', '의지', '인내' 등은 제가 생각하는 관점에서 습관과 대척점에 있기 때문에 꼭 집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노력을 숭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땀과 노동의 가치를 신성시합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고, 경제적인 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이에 대한 책임을 우리의 '의지'와 '노력'에 묻곤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안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저는 2가지 이유로 노력 숭배사상에 의문들 제기해 보려 합니다.
노력만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승리할 수 없다.
저는 이것을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때 처음 경험했습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시험이었기 때문에 어떤식으로 공부해야 하는 지 감이 없었고, 남들 하듯이 학교 교과서에 맞는 참고서를 구매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요령이 없는 때라 제가 생각해 냈던 전략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참고서를 모두 외우자' 였고 열심히라는 단어로는 당시의 성실함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외웠고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참고서를 보지 않고서도 참고서 내용을 그대로 외워 쓸 수 있을 정도 였으니깐요.
저는 당연히 1등은 내 몫이겠거니 하고 난생 첫 중간고사를 쳤고, 결과는 안타깝게도 처참했습니다. 노력에 비해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던 첫 좌절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1학기 기말고사, 2학기 중간고사도 비슷한 수준의 노력과 방식으로 시험을 준비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좋지 않았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낀 저는 2학기 기말고사 때 조금 방법을 바꿔보기로 합니다. 노력의 대상이 조금 잘 못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2학기 기말고사 때에는 기존에 공부하던 참고서 대신에 그냥 학교에서 공부하던 교과서를 외워보기로 합니다. 밑져야 본전이니깐요. 역시 대부분이 예상하듯 그 시험에서는 제 노력이 빛을 보았습니다. 이때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력의 양과 질이 해답이 아닐때도 있구나.
사실 제 어렸을 적 사례를 들었지만 이는 자본주의에서도 비슷합니다. 먼저 저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며, 아래의 사례는 단순히 자본주의에서 소득과 노력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함이니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 저는 자본주의식 줄세우기를 매우 혐오하는 사람입니다.
1.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모으시는 할머니
2. 계속 낙방하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는 9급 공무원 응시생
3. 중소 기업 직장인
4. 일반 대기업 직장인
5. 시장을 두루 살피며 기회를 계속 엿보는 사업가
6. 시드머니 3천의 경매 투자자
7. 벤처투자자
이들을 순수하게 노력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1번 할머니가 가장 많은 소득을 벌어야만 합니다. 제일 일찍 일어나 근면성실하게 일하시고, 가장 늦게 퇴근합니다. 남들처럼 헤프게 돈을 사용하지도 않고 해당 작업을 위해 어마어마한 노동력을 투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님이 자본주의에서 얻어가는 소득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큰 소득을 벌어가는 집단의 노력에는 뭔가 특별한게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업가의 노력은 배울만한 것이고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노력은 무식한 것이다. 라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이들 사이에 노력의 질적 차이는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할머니의 방식은 제 어렸을적 '참고서 위주의 공부방식'처럼 이 상황에 안맞는것 뿐이죠. 분명 할머니의 노력 방식이 통하는 분야가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게 재활용 자원 시장에는 안맞았던 것 뿐입니다.
사람에게는 관성의 법칙, 컴포트 존 같은 안락한 경계가 있기 때문에 성과가 크던 작던 상관없이 하던 행동을 반복합니다. 제가 3학기동안 '참고서'를 고집했던것 처럼 말이죠. 노력을 기울이는 것 만큼이나, 다른 기회를 탐색하고, 나의 현재 방식에 문제가 있는 지 검토하는 것도 중요함에도 이 영역은 자본주의 시대에서 노력에 비해 더 낮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왜이리 한 분야를 끈질기게 못하냐, ', '정말 너의 최선이야?', '1만시간의 법칙 몰라?' 라는 식으로 말이죠. '기회의 탐색'도 정말 중요한 부분임에도 이 영역은 운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슈카 티비에서 1만시간의 법칙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슈카 본인이 1만시간 동안 스타크래프트를 했어도 임요환 처럼 되지는 못했을 거라면서요. 슈카 본인도 어떻게 보면 '기회의 탐색'의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증권사 직원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살려 컨텐츠를 제작했으며 현재 150만 유튜버가 되었습니다. 성공한 모든 사람들은 1만시간의 법칙을 지켰겠지만, 1만시간의 법칙을 지킨 모든 사람들이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굳이 스타크래프트를 1만시간이나 하면서 내가 내가 임요환정도 될 깜냥이 있는 지를 알아보는건 낭비입니다. 1000시간에 깨달으면 좋고, 100 시간이면 더 좋습니다. 포기는 더욱 지향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우리에게 주는 이점은 우리가 마음대로 종목을 선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이점을 포기하고 어쩌다 몸 담게된 영역에 평생의 시간을 허비 하는 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리그오브레전드의 페이커 선수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걸 봐야하는 것 처럼요.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 가장 빛을 볼 최적의 영역을 끊임없이 탐색해야만 합니다.
인간의 의지는 매우 나약한 편이다.
우리는 노력이 성공의 디폴트 값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더욱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노력'과 '의지'를 지속하는 일은 정말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점입니다. 누구나 변화를 갈망하고 이를 위한 강력한 의지를 세우지만 그 강력한 목표와 의지는 늘 수포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포기는 '나는 충분히 간절하지 않았던 거야',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거야'라는 자책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이 희미해질 즈음 새로운 목표를 다시 세웁니다. 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소모적인 반복을 이어나갑니다. 우리는 건강한 식습관이 우리에게 중요함을 앎에도 불구하고 치킨이 튀겨지는 이미지, 소리, 냄새 그리고 편리한 배달 시스템에 굴복하고 맙니다.
'우리의 노력이 전부야' 라는 말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승자와 패자를 나누기에 간단명료해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토를 달지 않는 세상의 몇 안되는 문장이기도 하지만 최신 뇌과학과 심리학은 이 문장을 부정합니다.
마시멜로우 테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눈앞의 마시멜로우를 보면서 참게하고 15분동안 넘게 참을 경우 마시멜로우를 한개 더 준다는 일종의 '의지력'테스트입니다. 이 테스트가 더욱 주목 되었던 건 마시멜로우 의지력 테스트를 통과한 아이들을 계속 추적해보니 이들이 통과하지 않았던 아이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더 성공을 했다는 점입니다. 노력 만능주의의 훌륭한 증거인 셈이죠. 잘 참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더 성공한다. 는 공식은 이치에 맞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은 대부분이 알지 못하는 이 이야기의 뒷부분에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가지 과제를 줍니다. 만약 당신이 마시멜로우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해낸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의지력을 타고났고 이를 활용해 나가면 되니깐요. 하지만 마시멜로우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걸까요?
대략 75%의 아이들이 마시멜로우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스테판 커리 선수나 이치로, 김연아 선수처럼 타고난 의지를 갖고 있지 못한 우리들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할까요?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이해했는 지 다른 과제에 몰두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마시멜로우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던 아이들을 이 테스트에 통과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여러가지 전략을 시도합니다. 그 결과 아이들에게 의식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인지적 제어'는 거의 효과를 보지 못한 반면에 아이가 본질적으로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상황제어 전략'이 가장 효과적으로 아이들의 인내 시간을 늘리는데에 도움이 되엇다고 합니다.
스테판 커리나 김연아 선수처럼 타고난 재능을 갖지 못한 우리들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비교우위를 갖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지를 과신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노력과 의지에 의존하는 습관을 버리고 이것들이 지켜질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을 조성하는 것이 성공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우리의 의지가 아닌 우리가 갖고 있는 시스템, 환경이 곧 우리의 힘입니다.
마무리
인간에게는 '내성착각'이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내성착각이란 인간이 '본인이 어떤 것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통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습관과학을 공부하고 실행하면서 제 자신이 내성착각이 유독 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내성착각의 노예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제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사실 착각에 가깝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각자의 핸드폰에 스마트폰 사용기록을 확인해봅시다. 아마 평균적으로 하루에 4~5시간을 쓰고 있을 겁니다. 이 결과치를 보고 여러분들은 아마 이런생각에 빠질 겁니다.
"4~5시간이 많이 쓰는건가? 많긴 하네. 이건 내가 아직 마음을 안먹어서 그래, 마음만 먹으면 나는 스마트폰 같은 거에 시간 빼앗기지 않을 자신이 있어. 지금은 단지 아직 필요를 못느끼는 것 뿐이야"
그럼 한가지 내기를 해볼까요? 핸드폰 사용 시간 내기를 한번 해봅시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여러분의 의지만을 활용해서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최대한 줄여보는 겁니다. 한 달 뒤에 만약 여러분이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하루 2시간 내외로 줄일 수 있다면 이 내기는 여러분이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제가 지는 간단한 게임입니다. 아직 게임을 시작도 안했지만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여러분들 대다수는 이 내기에서 지게 되어있습니다.
사람들 대다수는 여전히 뜻이 있는 길에 있고, 의지만 있다면 모든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법이 그렇게 쉬운 것이었다면, 세상에 뚱뚱한 사람들은 왜 있고, 게으른 사람들은 왜 있으며, 가난한 사람은 왜 있는걸까요? 우리가 내성착각의 노예라는 것, 우리의 의지는 정말 나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습관과학의 출발점입니다.
의지만능주의는 우리에게 주어진 뇌를 절반 정도만 쓰는 비효율적인 전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