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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선 Sep 29. 2024

이슬아 작가 강연을 듣고 온 날

9월 중순 긴 여름의 끝을 알리는 단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평소 좋아하던 이슬아 작가의 강연을 들으러 대전에 도착했다. 시외버스에서 내리니 비는 버스 타기 전보다 더욱 쏟아지고 있었다. '비야 아무리 와봐라 내가 슬아 작가님 보러 가는 길을 막을 순 없다.'라는 마음으로 빗속을 뚫고 대전 엑스포 시민광장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내가 왜 이 비바람을 뚫고 이슬아 작가의 강연을 듣고 싶은지부터 설명해야겠다. 지인이 내가 읽으면 좋아할 것 같다며 선물 해준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 첫 인연이었다. 벽돌처럼 두꺼운 책에 거부감이 들었는데 막상 책을 펴서 읽어보니 고운 모래가 깔린 해변으로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슬아 작가의 책을 읽을 때면 초대받은 해변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었고, 용기와 응원을 받을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솔직함과 당당함이 너무 매력 있었다. 제일 좋았던 것은 이 모든 것을 나에게 잘 흡수될 수 있게 글맛나게 쓴 글이었다. 


이런 분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강연장은 야외에 설치되어 있었고, 천장이 막혀 있었지만 비가 약간씩 들이치기 때문에 나눠준 우비를 입고 강연장 의자에 앉았다. 대전 MBC 아나운서의 안내에 따라 이슬아 작가가 강연장 무대에 올라왔다. 갈색 재킷에 청바지, 머리카락은 숏컷, 얼굴은 인터넷에서 보던 것보다 반은 작았다. 유하면서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슬아 작가의 책에서 강연장에 가는 자신에 대하여 쓴 글이 생각났다. 이슬아 작가의 아버지가 강연장에 이슬아 작가를 태워다 주고, 끝나면 함께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떠올랐다. '오늘도 강연 끝나고 아버지와 맞담배를 피고 올라갈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가님의 강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슬아 작가의 강연 첫마디는 미래의 동료 작가들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는 것이었다. 우리를 청중이 아닌 동료 작가로 말해주는 모습에 뭔가 친근한 기분이 들었다. 이 날 강연의 내용은 동시대 작가들과의 상생과 활동가들의 운동?에 관한 이야기였다. 글을 잘 쓰는 동시대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글을 쓰지. 나는 저렇게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작가도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면서 용기를 듬뿍 얻었다. 활동가들의 다양한 글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장애인 지하철 시위에서 경찰과 서울철도공사 직원들, 시민들 등에게 갖은 모욕을 받았던 전장연 대표(확실하지 않음..)의 글을 읽어주었다. '너희들이 늙고 힘이 없을 때,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이런 시설을 이용할 때, 너희들이 시위를 막았던 이 순간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라는 글귀는 내 마음도 먹먹하게 했다. 이슬아 작가는 세상의 아픔들에 귀 기울이고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내가 알던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고 세상을 향한 반항아 같은 모습이었는데 약간의 반전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공감하려는 사람이었다. 강연에서 새로운 작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의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이 되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슬아 작가의 팬들이 많이 와있던 자리였다. 질문을 하기 위해 불끈 쥔 주먹들이 무수히 허공에 올라와 있었다. 시간관계로 인해 채택되지 못한 주먹들은 쓸쓸히 주인의 허벅지 옆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만큼 질문들이 많았다. 그중에 나의 마음에 제일 와닿았던 질문이 있다. '슬아 작가님, 저는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생각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시작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완성을 못 할 때가 많아요. 어떻게 해야 하죠?'라는 질문이었다. 슬아 작가는 이렇게 대답해 줬다. '좋은 글이든, 안 좋은 글이든 끝까지 마감하려는 자세를 가져 보세요. 혼자서 힘들면 글쓰기 모임이나, 인터넷 모임 등을 통해서 마감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써보세요. 저도 고등학교 때부터 8년간 매주 1편씩 무조건 마감을 해야 하는 모임에 들어갔었어요. 매번 좋은 글이 나올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때 매주 마감을 하기 위해 썼던 글들이 지금의 제가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우선 마감을 정해놓고 써보세요! 완벽하지 않아도 돼요. 끝만 맺으면 돼요.'라는 답변을 해주셨다. 


요즘 나에게 제일 감명 깊게 들리는 답변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잡초단(잡다한 초고단)이라는 글쓰기모임 생각이 너무 났다. 2주 동안 한 편의 글을 써서 다 같이 모여서 읽고 평가해 주는 시간을 가지는 나의 글쓰기모임이 다가올 때면 고통스러웠다. 슬아 작가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바뀌었다. "이건 기회야! 잡아야 돼! 나에게 이런 마감의 행복함?을 주는 곳이 또 어디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글이 좋든 안 좋든 마감을 하는 습관을 들여주는 잡초단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질문시간이었다.


강연을 보고 근처 식당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마시고 홍성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의자에 앉아서 가고 있는데 슬아 작가의 말 중에서 "글을 쓰려면 세상을 다양하게 관찰해서 오감이 느껴지게 글을 써야 돼요. 그리고 시트콤 촬영 감독과 다큐멘터리 감독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돼요."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이 말 중에 오감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버스의자 등받이에서 느껴지는 진동들이 평소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갓난아이시절 부모님이 어부어부하며 나를 안아주며 흔들어줬을 때처럼 이 진동들이 나를 어부어부 달래주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이 기분 좋은 버스의 진동을 느끼며 깊은 잠에 빠져 홍성터미널까지 왔다. 내 주변의 작은 진동까지 관찰할 수 있는 힘을 주었던 강의였다.   



* 이슬아 작가의 말을 옮겨 적은 건 녹취를 푼 것처럼 확실하지 않습니다. 제가 받은 느낌대로 옮겨 적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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