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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선 Aug 25. 2024

아빠와 뽁뽁이 붙인 날

2022년 5월 말, 부모님은 집을 이사하셨다. 평생을 단독주택에 사시다가 생애 처음으로 아파트에서 살게 되셨다. 엄마는 매번 밥을 차릴 때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해서 주방 문과 안방 문을 통해 나르던 음식을 이제는 주방과 연결된 거실에서 문을 통과하지 않고 바로 식탁 위에 음식을 올려다 놓는다. 단독주택에 살면서 여름에는 비가 새고 습기로 인해 곰팡이가 생겨서 고생했다. 겨울이면 상수도와 보일러 동파로 인해 항상 확인하고 대비해야했다. 뿐만아니라 수시로 집안 곳곳이 망가져서 보수하느라고 힘이 들었다. 아파트에 이사 오고 나서부터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서 몸이 편해지셨다고 좋아하신다. 다만, 마당이 없어서 답답하다고 하신다. 그렇게 아파트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살고 계시던 부모님에게 매달 관리비는 편리함과 맞바꿔야 할 비용이었다. 10월에 관리비 고지서를 봤는데 20평도 되지 않는 집에서 난방비만 7만 5천 원이 나왔다. 이러다가는 겨울에 큰일이 날 것 같아서 당장 다이소에 가서 방한용 뽁뽁이를 사 왔다.


저녁을 먹고 아빠랑 베란다와 거실, 방 창문들의 사이즈에 맞게 뽁뽁이를 재단했다. 재단하고 나서 붙이려고 하는데 분무기가 집에 없는 것이었다. 물을 창문에 골고루 뿌려야 뽁뽁이가 촥 붙을 수 있는데 말이다. 나의 실수였다. 나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그릇에 물을 떠서 손끝에 묻힌 후 톡톡톡 뿌려보았다. 5개의 손끝은 1개의 노즐로 되어있는 분무기의 정교함을 따라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보다 못한 아빠가 물이 가득 담긴 그릇을 뺐더니 그대로 입으로 갖다 대셨다. 그러더니 입에 한 모금 가득 머무신 후 사극에서 망나니가 입에 물을 머금고 날이 잘 선 칼에 뿌려대는 것처럼 투명한 유리창에 뿜어대기 시작하셨다. 너무 웃음이 나왔다. 웃음을 참으며 "아빠, 사극에 나오는 망나니 같아." 이렇게 말하니까 아빠도 웃기셨던지 입에 머물고 있던 물을 삼켜버리셨다. 그러고는 켁켁켁 사례에 걸리셨다. 본인도 웃기셨다고 생각하나 보다. 아무튼 아빠의 입으로 뿜어낸 물로 우리 집 창문들에는 뽁뽁이가 전부 안락하게 자리 잡았다. 온 집안에서 아빠의 애정? 의 냄새가 뿜어 나오는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아빠는 무뚝뚝하고 집안일에 손을 전혀 대지 않는 분이셨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아파트로 이사 와서 기분이 좋으셔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침 튀기는 열정을 보여주시는 게 신기했다. 아빠 덕분에 가족들이 전부 웃을 수 있는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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