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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진철 Jul 10. 2019

수영일기 #4

거의 일 년 만에 다시 수영을 시작했다. 기초반 잠깐 다닌 게 전부니 사실상 새로 시작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원래 다 시작하고, 그만두고, 또 하고 그러는 거지 뭐. 수영장도 새로 옮겼다. 원래 다니던 곳이 공사를 시작해 9월 전까지는 쓸 수 없다고 한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수영장 자유수영반에 간신히 등록했다. 시설은 낡았지만 레인에 사람이 없고 한적해서 좋다. 킥판도 잘 갖추어져 있다. 나 같은 초보자가 눈치 안 보고 쓰기 딱이다.


자유수영 시간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호흡, 발차기, 킥판 잡고 나가기 정도가 전부다. 일단은 물에 다시 익숙해져야 한다. 레인에 몸을 넣는다. 미지근한 물의 온도가 좋다. 긴장된 마음으로 물안경을 내린다. 숨을 힘껏 들이마시고는 얼굴을 물속에 넣는다. 음 소리를 내며 코로 숨을 내뱉는다. 숨을 조금 남기고 고개를 들어 파 하고 입으로 내뱉는다. 수영 첫 시간에 배우는 음파 호흡법이다. 호흡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는 정말로 물속에서 으음음 하고 소리를 내면 훨씬 쉬워진다. 물속에서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는 게 보인다면 시야가 트일 만큼 긴장이 풀렸다는 뜻이다.


발차기는 기본 중 기본이다. 수영하는 동안에는 쉬지 않고 계속 발을 차야 한다. 예전 강사님은 찬다기보다는 물을 밀어낸다는 느낌을 가지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킥이 자동화'될때까지 계속 연습하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게 쉽지 않다. 수영이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운동인게 이 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킥을 연습한 날에는 내내 허벅지가 당겼다. 예전 배웠던 내용들을 생각하며 계속 발로 물을 밀어냈다. 위로 아래로. 위로 아래로.


아무리 오랜만이라도 호흡과 킥만 하는 것은 재미없다. 한켠에 알록달록 쌓인 킥판에 눈이 간다. 오늘은 보라색으로 정했다. 킥판을 잡고 팔을 길게 뻗어 물속에 들어간다. 입으로는 음 소리를 내며 연습했던 킥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간다. 수영장 바닥 흰 벽돌이 뒤로 당겨지는 게 보인다. 나아가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으으으음 하고 내뱉는 호흡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호흡이 30% 정도 남기면 이제 고개를 들고 파 하고 뱉어내야 한다. 자 이제 남은 건 40%. 35%. 31%. 그리고 30%.


푸우. 얼큰하게 물을 삼켰다. 공기가 빠지면서 몸이 가라앉았다. 호흡을 생각하다가 발차기도 약해졌다. 몸이 앞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수영장 물은 언제 먹어도 찝찝하지만 뭐 어쩌겠어 하고 넘긴다. 레인 한가운데서 세수를 한 번 한 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물안경을 쓰고 몸을 던진다. 음 하고 숨을 머금고 앞으로 나아간다. 놀란 탓인지 아까보다 숨이 소진되는 속도가 빠르다. 자 침착해야 돼. 마음을 다잡는다. 다시 수영장 바닥이 보이기 시작한다. 좋다. 이제 킥을 유지하면서 고개만 살짝 들어 숨을 보충하면 된다. 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 셋, 둘, 하나.


푸우우우우우우. 두 번째로 물을 먹었다. 시발.


레인 끝으로 돌아와 다시 음파호흡과 발차기를 시작한다. 화려한 스킬을 뽐내는 옆 레인의 중년들을 보고 있자니 코트 한구석에서 드리블 연습을 하는 풋내기 강백호가 된 기분이다.


종료를 알리는 벨과 함께 물에서 나와 샤워쟝으로 향했다. 물은 좀 먹었지만 건물 밖을 나서는 기분은 그래도 개운하니 괜찮았다. 다음 달에는 수강신청에 꼭 성공해 강좌를 듣고 말겠어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계속 연습이다. 호흡의 기초. 킥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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