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명의 요람, 도시에 대한 통찰
세종 시로 이사를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들리던 행정 수도(지금의 세종 시) 건설 이야기는 머나먼 이야기 같았다. 이십대 시절, 버스를 타면 가끔 경유했던 세종 시는 항상 먼지 흩날리는 공사판이었고, 나는 언제쯤 도시가 완공되는지 늘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 스무 살 후반쯤에는 세종 시는 도시의 윤곽이 잡혀있었다. 계획도시답게 반듯반듯한 도로가 깔려 있었고,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아파트 단지들은 ‘이것이 바로 미래 한국 도시다’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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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세종 시 집들은 투자 대상이 되었다. 여러 해 동안 부동산 광풍이 세종시를 휩쓸었다. 세종시집들의 투자 가치는 매우 높았고 분양권 당첨은 로또와도 같았다. 대다수가 집을 주거의 용도가 아닌,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전통적 관념의 집은 사람이 정주하는 곳이지만, 이제는 잠시 거쳐 가는 장소로 변했다. 즉, 거류하는 곳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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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건설되는 도시는 사람들은 저마다 여러 가지의 이유로 사람이 붐빈다. 사람들을 끌어들일 요소가 많다. 편리한 교통, 근린 시설, 큰 규모의 쇼핑몰, 많은 일자리, 치안의 안정, 문화 시설, 투자 가치와 같은. 그렇다면 사람들이 빠져나간 구도시는 어떨까?
구도시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신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빠져나간 구도시는 슬럼화로 이어진다. 슬럼화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이 빠져나가니 인적도 드물어지며, 종국엔 안전하지 않은 공간으로 전락한다.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우리 한국은, 이제야 도시 슬럼화가 표면적으로 나타난다. 예전에는 번성했던 도심을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떠난다. 사람이 없으니 상권이 죽고 활기가 없어진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비단 한국 도시에만 국한된 것일까? 아니다. 도시화가 먼저 진행되었던 미국에서는 이런 도시 슬럼화는 오래전부터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보다 선행하여 관심을 갖고 고민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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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도시의 삶과 죽음”이란 책은 건축 잡지사의 편집인으로 일했던 제인 제이콥스가 저술한 책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도시의 슬럼화를 분석한 이 책은 한 치의 의심할 바 없는 명저이다. 이미 반세기 전에 쓰여진 책이라기엔, 지금의 우리네 현실과 맞닿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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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야기하는 건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요건은 세 가지이다. 활기, 안전, 다양성이다. 하나하나 분리해서 이야기하기에 세 요소는 너무나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달성하기 위해선 활기찬 거리를 조성해야 한다. 이런 거리를 조성하기 위해선, 사람들 간의 접촉 수를 늘려야 한다. 접촉 수를 늘리려면 사람들이 거리에 많이 나오게끔 해야 한다. 사람들이 거리에 많이 활보하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만큼 거리에 흥밋거리가 많아야 한다. 흥밋거리 많은 거리는 복잡성이 높고, 다양성이 높은 거리다. 그런 거리를 조성하기 위해선 거리의 블록이 짧고, 모퉁이 마다 무언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며, 신/구 건축물이 혼재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거리에는 사람 붐빈다. 그리고 사람이 붐비는 거리는 안전하다. 사람들 간의 시선이 서로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서로의 시선이 촘촘한 안전망을 만들어준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때로는 무인 카메라보다 더 안전하다. 이런 붐비는 거리를 조성하면 다양한 사람, 다양한 직종, 다양한 상점들이 거리에 존재하기 때문에 도시의 다양성 또한 자연스레 증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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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도시를 살리는 것도 사람이고, 죽이는 것도 사람이다. 흥미로운 도시, 붐비는 도시, 활기찬 도시가 되려면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해야 하는 것이 도시 계획가들의 소명이란 생각이 든다. 그녀가 비판하는 현대 도시 건축의 모티브가 된 하워드의 ‘전원 도시’,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를 보며 왠지 내가 사는 세종시가 떠올랐다. 효율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지만, 흥미가 결여된,, 거리를 걷고 싶지 않은,, 말 그대로 노잼 씨티다. 이는 복잡성의 결여, 획일화, 구획화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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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주 전공이 아니라 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도시 생태계를 조망하는 관점을 제공해주므로 매우 유익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한 호홉에 읽히는 책을 좋아하는데, 간만에 장거리 레이스를 하는 마음으로 책을 본 것 같다. 도시에 대한 사례가 미국의 지명만 나와서 지루하고,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가끔씩 나오는 도시에 대한 전율스러운 통찰이 그런 지루함을 무마해주었다. 도시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