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다양한 관점이 생긴다.
독서를 제대로 하면 세상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이 생긴다. 어떤 문제나 사물을 대면했을 때 한 면만이 아닌 여러 면, 여러 각도에서 두루 헤아릴 수 있는 생각의 너비와 깊이가 생겨나는 것이다. 한 면만을 보는 단선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편협할 수밖에 없다.
한 번에 하나의 판단과 하나의 생각밖에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은 단일화된 인격을 갖는다. 세상을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 창이 없기에 그들에게는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스스로에게는 언제나 합당한 일일 것이나, 그것은 세상의 다양성을 유린하는 폭력이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상식과 교양이란 것은 보편성을 그 근간으로 한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다른 관점에 대한 수용이 없다면 교양을 갖춘 상식적인 인간이 되는 길은 요원하다. 그래서 독서를 통해 다방면의 지식을 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 현상 중 하나의 관점으로 완벽하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들이 각자 가진 관점을 통해 해석될 뿐이다. 타인의 해석이 자신의 해석과 다르다고 해서 틀리다 하지 말자.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이다.
그러면 다양한 관점을 갖출 수 있는 독서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분야의 책을 사들여 골고루 읽어야 할까? 물론 그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방법을 권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하나의 질 좋은 책을 골라, 탈탈 털어 모르는 부분이 나오지 않을 만큼 샅샅이 읽어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고전이나 대작을 쓴 사람의 사고 수준은 범인의 수준을 훨씬 웃돈다. 그들의 지식과 사고를 과즙 짜듯이 온전하게 압출하여 섭취하는 것이 더욱 좋다. 고전과 명저는 보통 본질에 관한 것들을 주로 다룬다. 어려운 주제를 파헤치기 위한 복잡다단한 사고, 거미줄 같은 촘촘한 사고방식이 책에 펼쳐져 있다.
대작에서는 허투루 작은 것 하나 넘기지 않는다. 큰 것을 다루면서도 디테일에 집중한다. 그리고 사고의 전개가 정합적이고 정교하다. 논리 구조나 전개 방식이 기하학을 연상시킨다. 이런 대작을 제대로 읽어내게 된다면 여러 분야에 응용도 가능하다. 한 분야에 높은 경지를 이룩한 사람이, 다른 분야 또한 잘하게 되는 건, 이런 수준 높은 사고방식을 자신의 분야에서 체득한 후 다른 분야에도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한 권을 낱낱이 파헤치는 독서교육을 실제로 실시한 인물이 있다. 일본의 전설적인 국어 교사인 하시모토 선생이 그 예이다. 그는 패전 후 일본의 한 중학교에서 국어 선생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모든 것이 부족했었던 그 시절에 그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읽고도 기억에 남지 않을 교과서로 공부하느니, 훌륭한 소설로 학생들의 기억에 남을 수업을 하겠다고 말이다. 그는 나카 간스케의 <은수저>라는 소설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의 제자들에게 읽혔다.
그의 수업은 단순 이해를 넘어, 문학 연구가가 작품을 분석하는 수준에 필적했다. 그의 학생들은 한 작품을 오랫동안 붙들고 고심하고 흡수했다. 단순히 활자를 읽는 것이 아니었다. 소설에 나온 모든 것을 꼼꼼히 분석하고 조사했다. 그런 그의 수업은 바로 결실로 나타났다. <은수저> 소설로 공부한 학생들이 사립학교 최초로 도쿄 대학 최대 합격이라는 업적을 이륜 것이다.
그의 제자 중 최고재판소 23대 사무총장에 취임한 야마사키 도시미쓰는 하시모토 선생의 <은수저> 수업의 기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시모토 선생님께 배운 것들은 줄곧 내 안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나는 우연히 재판관이라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궁극의 만능선수일이랄까요, 사회 각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사상을 다룹니다. 판결을 내리는 마지막 순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법률지식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의 교양이랄까, 그것의 바탕이 되는 사고방식, 그리고 모든 사물을 균형 있게 바라본다는 사고입니다. 그런 모든 사고의 뿌리를 하시모토 선생님께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中-
제자들의 사고방식에 깊이 영향을 하시모토 선생의 ‘슬로 리딩’의 교육 방식은 제자들의 인생을 바꾸었다. 이런 ‘슬로 리딩’이 일본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옛 어른들이 가르치던 교육법 또한 세상을 전 방위적으로 파악해 나가는 사고방식을 기르는 ‘슬로 리딩’이었다. 그들의 교육은 한 단어를 가지고도 세상의 온갖 것들과 연결하며 앎을 확장시키는 방식이었다.
옛 어른들은 ‘하늘’이란 글자 하나를 놓고 읽고 또 읽으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물었다. “하늘은 무엇인가?” 하늘의 반대는 땅이고, 하늘에는 구름으로 있다. 하늘의 변화로 기후의 변화를 알게 되고,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과 별의 움직임으로 지구를 파악하고,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의 차이를 알아 농사법을 깨닫고, 시간의 개념을 깨닫고, 공간의 개념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 ‘하늘’을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면 수십, 수백 개의 질문이 이어진다. 질문의 답을 찾아가다 보면 과학과 수학, 문학과 지리, 심지어 인간과 삶의 기본 원리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철학까지 이어진다.
- 슬로 리딩, 생각을 키우는 힘 中-
서구 문화권의 독서가들도 느리게 읽기를 예찬했다. 프랑스의 문학 평론가였던 에밀 파게는, “독서는 천천히 해야 하는 것이 첫째 법칙이다. 이것은 모든 독서에 적용된다. 이것이야말로 독서의 기술이다”라고 말했고,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로맹 롤랑은 “다급하게 책을 읽는 버릇을 가진 사람은 좋은 책을 천천히 읽어 나갈 때의 묘미를 알지 못한다.”라 말했다. 모두 빠르게 읽기를 지양하고, 느리게 읽기를 찬양했다.
느리게 읽어야 재미도 붙고, 작가의 사상과 생각도 내 것이 된다. 그러면 세상을 보는 눈이 하나 더 생겨난다. 이런 눈을 갖기 위해선 책에 몸을 푹 담가야 한다. 독서는 그야말로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바다에 발목만 담갔다고 바다를 경험했다고 할 수 없다. 온몸을 내던져야 한다. 허먼 멜빌이 쓴 <모비딕>에서도 같은 말이 나오지 않는가. 대륙붕을 점령하려는 자는 직접 바다에 몸을 적셔야 한다고. 슬로 리딩을 통해 책에 내 존재의 전부를 적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