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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킴 May 18. 2024

독서는 추억이 된다(2)

2. 독서는 추억이다

 친한 친구에게 가끔 카톡 메시지가 온다. 주로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은 최근 근황과 과거에 재미있었던 추억들이다. 특히 과거에 실수했었던 일, 좋아했던 이에게 고백에 실패했던 일, 재미있게 놀았던 일이 이야기기의 주제이다. 그리고 이 추억 팔이를 보조해 주는 수단은 2000년대를 풍미했던 싸이 월드이다.


 현재는 다른 SNS에 밀려서 역사의 퇴적물이 되어버렸지만, 당시에 10, 20대라면 가입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 있던 SNS였다. 나 역시 싸이월드를 어쩌다 접속하면 사진첩에 남은 많은 사진들과 일기장에 적혀 있는 기록이 과거를 떠올리게 만든다.     


 누구나 과거를 추억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 추억이 새겨진 장소에 가 옛 시절을 떠올리거나, 졸업 앨범을 다시 꺼내 볼 수도 있다. 같은 추억을 공유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과거 그 시절에 많이 들었던 노래를 들으며 지난날을 떠 올릴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싸이월드처럼 온라인 공간에 사진을 올리고, 자기 생각을 기록하던 SNS 또한 과거를 복기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이렇게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는 우리 주변에 꽤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보았음에도 아무런 추억과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다. 나는 그들의 내면은 사막처럼 메마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추억이 많은 삶은 그 자체로 풍요로운 인생이다. 노년에 이르러 한가한 시간을 가져 추억을 되새기며 과거를 음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처럼 인생을 되돌아볼 때 보석 같은 추억들이 곳곳에 들어박혀 있다면 얼마나 값지고 행복하겠는가.     


 나에게 추억을 기억하는 방식을 묻는다면 내 대답은 ‘책’이다. 내 서재에 꽂혀있는 책들은 모두 저마다 나와 얽힌 사연을 갖고 있다. 서재에 꽂혀있는 책들을 꺼내 다시 볼 때마다 책의 내용이 다시금 떠오르고, 책을 읽었던 당시 나의 추억도 동시에 펼쳐진다. 그 당시 내가  글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왜 이 책을 골랐는지, 당시 나의 상황과 감정 상태까지 온전히 기억난다. 그 책을 사서 집으로 들고 와 첫 장을 넘기던 설렘, 작가의 생각에 전율하던 내 가슴,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열심히 메모하던 시간들이 통째로 기억이 난다.          

 영화 <나비효과>에 나오는 장면과 비슷하다. 나비효과의 주인공 에반은 자신의 일기를 보면 일기가 쓰인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에게 책이란 꼭 그런 존재이다. 물론 영화처럼 과거로 실제 돌아갈 수는 없어도, 예전에 읽었던 책을 읽으면 그 시절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나에게 책이란 과거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매개체이다.      


 현 인생 중 가장 후회스럽지 않았던 순간을 묻는다면 단연코 나는 전력을 다해 독서했던 시간이라 말할 수 있다. 독서의 기억은 그만큼 강렬한 체험이었다. 몸의 떨림을 넘어, 마음과 영혼을 전율하게 만드는 위대한 문장과 생각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바라고 고대했던 순간이었다. 잊힌 미지의 문명과 유적을 고고학자의 마음이 꼭 이랬을까.


 책 읽던 기억이 강렬한 것은 나뿐이 아닌 모든 열독가들의 경험이다. 일본의 시인 다카하시 신키치는 <너무 탐하는 욕망>이라는 자신의 독서 에세이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몰입하던 유년 시절의 강렬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나는 풀밭에서 배를 깔고 읽고 있었다. 아직 백 쪽 정도 남아있었다. 날이 저물고 주위는 점점 어두워졌다. 방과 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저녁밥도 먹지 않은 채 책을 읽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글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나의 두 눈은 충혈되어 불을 내뿜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한 글자를 다 읽을 때까지 나는 일어서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작은 글자가 어둠 속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만큼 해가 지는 것을 저주한 적이 없었다. 전신으로 엄습해 오는 밤을 밀어내고 읽기를 계속했다. 아무래도 도중에 그만둘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위대한 영혼이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 않았을 테지만, 이걸로 보면 번역이 서툴다거나 잘못된 번역은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며 원작자의 정신이 연소 되었는가 아닌가가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노파를 죽인 라스콜리니코프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확인하지 않고서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너무 탐하는 욕망, 다카하시 신키치>     


 그의 숨도 못 쉴 정도의 몰입이 이해가 된다. 이야기에 최고조로 몰입했을 때 느낀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이 느껴진다. 이런 경험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강렬한 독서의 경험이 삶의 온축이 된다. 이런 경험들이 켜켜이 쌓아진 인생이라면 그 삶은 필시 풍요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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