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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킴 May 18. 2024

곱씹으며 읽기의 효용(3)

3. 상상하는 인간


 ‘세계는 얼마나 좁으며, 네모난 책은 얼마나 넓은가’ 명나라의 사상가 이탁오가 했던 이야기다. 그는 책 안의 세계가 현실 세계보다 거대함을 그는 알았다. 현실 세계는 크지만 끝이 있다. 내면의 세계, 상상의 세계는 끝이 없다. 책 안의 세계는 저자들의 상상력으로 지어진 공간이다. 저자들은 내면의 공간에서 자유로이 사유하며 그들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 세계를 종이 위에 글자로 옮긴 것이 책이다. 한계선이 없는 상상의 세계가 담긴 책이 현실 세계보다 큰 것은 당연하다.      


 인간에게 상상력은 중요하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라면, 인간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다양한 것을 떠올린다. 소설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리고, 철학자는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법칙에 대해 생각한다. 정치가는 나라의 미래를 그려보고, 공학자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이 발전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다양한 것을 떠올리고 현실 세계로 구현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머리 안의 생각이 실제 세계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머리 안에 다양한 생각 재료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다양한 생각들을 연결시켜 남들과 다르게 창조해 낸다.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전개되는 다양한 플롯과 소설 구성을 알아, 소설을 잘 쓸 가능성이 크다. 뛰어난 공학자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공학 원리를 조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다양한 생각 재료, 즉 다양한 개념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질 좋고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유영만 교수도 그의 저서 <공부는 망치다>에서 그의 견해를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내가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의 폭과 깊이는 내가 보유하고 있는 개념적 수준의 다양성이 비례한다. 다르게 창조하고 싶으면 다른 개념을 끊임없이 습득하거나 이종 결합시켜 색다른 개념을 변경하거나 창조해야 한다.

<공부는 망치다, 유영만>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공부해 나가는 사람이다. 그들의 공부란 새로운 개념을 지속적으로 습득하며 자신의 일에 융합시키는 일이다. 알고 있는 개념과 새로 습득한 개념이 처음에는 충돌하거나 관련 없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자기 안에서 개념들이 혼융되며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지금까지 말해왔던 맥락에서, 나는 <미생>을 그린 윤태호 만화가가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인턴이란 소재와 바둑을 연계시켜 전개해 나가는 그의 이야기는 힘이 강했다. 그 이야기 안에는 비정규직의 고달픔, 청년들의 애환, 미생에서 완생을 지향하는 인생관도 같이 녹여져 있다. 바둑 해설가 박치문이 중간중간 풀어내는 바둑 대국의 형세에 대한 설명이 주인공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물려 떨어지며 감칠맛을 더했다. 윤태호 만화가는 이처럼 서로 관계없는 이종의 소재를 결합하여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상상력이 자신이 갖고 있는 개념적 다양한 개념과 주제들의 연결이라 가정한다면, 슬로 리딩은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읽으면서 개념을 습득하고 생각하면서 개념들 간 연결이 이루어진다. 이 연결들은 전에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 생각을 만든다. 개념의 습득과 연결의 반복될수록 사람의 상상력은 커진다. 기존에 없었던 것들을 만들어내는 상상력.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야 말로 대체 불가한 인간이 되는 길임과 동시에, 남들과 차별화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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