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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킴 May 18. 2024

독서와 감수성(1)

1. 시가 나를 찾아왔어

 시가 나를 찾아왔다. 직장을 얻기 위한 공부로만 점철된 있던 나의 일상에 시는 한 모금의 감로수였다. 밤마다 시를 읽는 것은 메마른 내 가슴을 적시는 일이었다. 불안하던 미래와, 멀어져 가는 꿈을 붙잡고 스스로 다독이며 위무하던 밤이었다. 시 읽기의 첫 시작은 류시화 시인이었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읽은 후 그의 시집을 모두 구해다 읽었다. 밤마다 류시화 시인의 시와 그가 번역한 영적 스승들의 시를 반복해서 읽었다. 시를 읽을 때의 느낌은 내가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시 맛을 본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정호승, 정현종, 박노해, 이성복 시인의 시를 읽었고, 나아가 쉼 브루스카, 러쉬킨, 헤세, 릴케를 읽어나갔다. 시에 대한 사랑이 나날이 깊어지는 어느 날, 나는 고전 명작을 상영하는 영화관에서 우연히 <일포스티노>란 영화를 보았다. 어디에선가 들어봤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네루다 시인의 이야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칠레의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쓴 <파블로 네루다 우체배달부>란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었다. 파블로 네루다 시인을 모티브로 쓴 작품으로, 시와 은유의 세계를 진하게 녹여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이었다.


 영화 <일포스티노>는 칠레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이탈리아로 망명 온 네루다가 칼라 디 소토란 섬으로 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주인공은 마리오란 인물로 아버지를 어부로 둔 어촌의 순박한 청년이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어부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는 어부가 아닌 무엇을 할까 찾던 도중 우체부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 지원한다. 급여가 낮고 지원자가 없었던 까닭에 그는 바로 합격하여 일을 시작한다. 그의 업무는 세계적 시인인 네루다에게 온 우편물을 배달해 주는 일. 글을 읽고 쓸 줄은 알았지만 ‘시’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마리오였다.      


 마리오는 네루다가 고령의 나이임에도 네루다가 시인이기 때문에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인이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알기 위해 네루다의 시집을 사서 읽는다. ‘시’가 처음인 그에게 네루다의 시에서 접한 은유는 이해되지 않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는 네루다에게 편지를 배달하며 ‘시’에서 접한 은유에 대해 질문한다. 이에 네루다는 대답해 준다.     


네루다 : 은유란 뭐랄까, 뭔가를 말하기 위해 다른 것에 비유를 드는거야. ‘하늘이 운다’면 그게 무슨 뜻이지?

마리오 : 비가 오는 거죠.

네루다 : 맞았어, 그게 은유야

<일포스티노, 네루다와 마리오의 대화 中>     


 네루다의 답변에 마리오는 은유를 이해한다. 시에 맛을 들인 마리오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시집을 읽으며 사색한다. 해변을 거닐며 은유를 떠올리기도 한다. 네루다의 시가 시골 청년에게 새로운 눈을 주는 장면이었다. 이후에 시적 소양 쌓아가던 마리오는 네루다와 바닷가 모래 사장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네루다는 바다를 보고 즉흥적으로 지은 시를 마리오에게 들려주고 마리오는 이에 답한다.     


마리오 : 이상해요, 말씀하실 때 이상한 느낌이 왔어요.

네루다 : 느낌이 어땠는데?

마리오 : 모르겠어요, 단어가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는 거 같아요. 바다 같이요.

네루다 : 그게 운율이야. 뱃멀미가 나는 것 같았어요.

마리오 : 마치, 배가 단어들 사이에서 퉁퉁 튕겨지는 느낌이었어요.

네루다 : 배가 단어들로 튕겨진다고? 방금 자네가 한 말이 뭔지 아는가? 은유야. 

<일포스티노, 네루다와 마리오의 대화 中>       

   

 이 장면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네루다의 시가 시골 청년 마리오의 가슴에 감수성의 씨앗을 깊숙이 심었음을. 이를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음을. 시골 작은 어촌에 묶여 있던 마리오의 작은 세계가 우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에서 나는 마리오와 내가 겹쳐 보였다. 공대생인 내가, 감수성은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시를 읽으며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마리오처럼 변했다.  

    

 예전에는 만개한 꽃을 봐도, 떨어지는 낙엽을 봐도, 예술작품을 봐도 느끼는 게 적었다. 그런 것들을 보면 ‘이쁘다’ ‘멋있네’ ‘잘 그렸다’와 같은 단출한 감상만을 내뱉던 나였다. 하지만 시를 읽기 시작한 후부터 하나를 보더라도 많은 것들을 떠올린다. 길을 걷다 꽃을 만나면, 꽃이 피기 전까지 견뎠을 비바람의 나날을 생각하고, 찬란한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낙화의 순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꽃을 주제를 시를 쓴 시인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 나랑 꽃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게 달랐을까, 그들의 시선은 왜 이리 고울까 하고 시샘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시를 천천히 읽으며 나는 달라졌다. 자연과 사물을 보며 느끼는 울림이 커졌다. 이제는 하나의 사물을 봐도 다양한 생각이 샘솟는다. 사물의 외형이나 특성에 빗대어 나의 개인사, 인간사, 자연사, 세상사를 접합시켜 본다. 나는 확실히 민감해졌다. 민감해진 덕분에 일상이 바뀌었다. 심심한 물냉면 같던 일상이, 비빔냉면 같은 맵짠 일상이 되었다. 이게 모두 ‘시’ 때문이다. 아니, ‘시’ 덕분이다. 시는 나의 필요에 의해 찾아왔던가, 아니면 운명처럼 나를 찾아왔던가. 잘 모르겠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에 나오는 ‘시’처럼 ‘시’는 어느 날  나에게 불쑥 찾아왔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나는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니야, 그건 목소리는 아니었어

말도,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어

밤의 가지에서,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시,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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