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썰킴 May 18. 2024

독서와 감수성(2)

2.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힘

중학교 시절 맞이했던 어느 봄이었다. 선생님의 수업을 듣다가 지루해진 나는 무심코 창문 너머를 보았다. 창문 밖에는 비가 내렸다. 연분홍의 비였다. 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벚꽃 잎들이 별 빛처럼 쏟아졌다. 아름다웠다. 이후로도 여러 해 동안 봄을 맞이했지만, 중학교 시절 보았던 것만큼 선연한 봄은 없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아름다움. 그 후부터 나에게 봄은 벚꽃이었고, 벚꽃은 나의 봄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계절에 무뎌져 갔다.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조급함과 온갖 오락, 유흥거리에 취해 나는 계절을 느끼는 감각을 잃었다. 그 당시의 독서 역시 성취 지향적인 책만 읽었다. 투쟁하는 책들, 열심히 살라고 나를 밀치는 책들. 동기가 부여되었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나는 지쳤고 휴식이 필요했다. 손에 놓았던 문학을 손에 잡았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조급함은 버리고 천천히.        


 무언가를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것에서 벗어나 저자의 고운 생각에 감탄하고, 문장에서 그려지는 다양한 풍광에 나는 매료되었다. 아름다움에 취할 때 나는 다음 페이지로 나아가지 못했다. 읽다가 지쳐 멈추는 것이 아닌 책에서 보여주는 그 풍광과 정취에 결박당했다.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추고 싶었다. 느리게 읽고 음미하며 읽는다는 지독(遲讀)과 미독의 경지가 바로 이건가 싶었다.       


 느리게 읽은 후부터 잃었던 계절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심봉사의 개안정도는 아니더라도, 감각을 잃었던 어느 신체 한 부위가 감각을 찾은 것 같았다. 계절의 감각이 돌아왔다. 봄의 싱그러운 냄새며, 여름의 울창함과 얼큰함, 가을의 선선함, 겨울의 적막과 순백이 모두 느껴졌다. 계절을 느끼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나의 존재가 온전히 내 삶 속에 존재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행복한 사람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일까. 아니면 오랫동안 한 곳에 정주해 있어도, 가진 것이 없어도 매일같이 새로움을 느끼는 사람일까. 말할 것 없다. 후자이다. 느끼는 바가 없으면 천만금을 가졌어도 온 우주를 보았어도 기쁨도, 즐거움도, 행복도 없다. <다시, 책은 도끼다>의 박웅현 저자 또한 그의 책에서 적게 보고 많이 느끼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서 여행하려고 노력하는 것, 많이 보려고 하지 말고 자세히 보려고 하는 것이 중요해요. 책 읽는 것도 마찬가지 같아요. 제가 다독 콤플렉스를 버리자고 자주 말하는데요. 자랑하려고 많이 읽는 게 핵심이 아니죠. 얼마나 체화됐느냐, 얼마나 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쳤느냐 이런 것들이 중요합니다. <생각의 탄생>에 보면 꽃을 그리는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관찰에 대해 이런 말을 해요. “꽃을 보려면 시간이 걸려,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말이지.”라고요. 마찬가지로, 책도, 여행도, 생각도, 천천히 나의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박웅현 저자도 다독보다는 천천히 읽으며 많이 느끼는 독서에 무게 추를 싣는다. 여행을 잘하는 사람과 좋은 독자는 급하지 않다. 다들 노력을 들여 천천히 보고 천천히 걸을 뿐이다. 빠른 것에는 진지한 노력이 결핍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사랑의 결핍이다. 김사인 시인도 말하지 않던가. 시도 제대로 읽으려면 사랑을 투입해야 한다고. 이처럼 뭐든 자기 존재를 온전히 밀어 넣어야 그 반대 방향에서 하다못해 졸렬한 감상이라도 나오는 법이다.     


 이런 방면에서 일본의 하시모토 선생은 제대로 된 방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는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감수성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을 했다. 단지, 책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 나오는 세시풍속을 꼼꼼히 가르치고, 경험하게 했다. 특히,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자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은수저>에 3년이라는 시간을 할애해 보자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소설이 전후 잊혀 가고 있는 일본의 연중 전통행사나 사계절보다 섬세하게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24절기를 가르칠 교재로서 뛰어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깊이 읽는 즐거움, 이토 우지다카>     


 그가 <은수저>를 통해 가르친 계절의 변화를 인지하는 능력은 ‘감수성’을 키워주었다. 감수성은 세상을 인식하는 힘으로, 세상의 사물들에게서 즐거움을 찾고 흥미를 유발하여 스스로 찾아 공부하는 자세를 길러주었다. 그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모두 감수성이 풍부했을 것이다. 그의 제자였던 일본 변호사연합회 사무총장인 가이도 유이치는 그의 수업 하에서 자라온 학생들은 모두 로맨티스트가 되는 경향이 있다고 회고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와 감수성(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