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회사 막내라이프
얼마 전 출장 갔을 때, 넷플릭스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았다. 일상의 공간과 단절된 '비즈니스 호텔'이라는 곳에서 고민하다 골랐다. 1년에 한 두번 이 영화를 본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 저 구두 예쁘다.' 라든가 '저 팔찌 명품이었네, 저 커피잔,,,' 뿐만 아니라, 멋진 눈빛과 단어로 카리스마 넘치는 메릴스트립의 말투까지...아마 내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는 몇 안되는 영화 중 하나다. 영화 속 '앤드리아'를 보며 '밎아, 맞아!'하면서 공감하고 웃으며 멋진 인테리어와 옷들을 보며 뉴욕 워커홀릭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팀장님과 선배들의 책상을 닦고 전날 야근으로 어수선해진 테이블의 잡지와 남은 음료 등을 정리하는 것으로 패션 회사 막내의 하루가 시작된다. 선배들이 출근하면 커피를 타기도 하고 주문할 커피를 받아 적으며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 온다. 선배들의 취향을 미리 알면 참 좋겠지만 센스없는 막내도 가끔 있다. 하루가 그렇게 시작된다. 가끔의 회식 또는 외부 식사 장소 섭외도 막내의 몫이다. 지금이야 '근처 맛집'으로 검색하면 되지만 예전에는 타부서 막내들, 또는 선배들을 통한 정보가 필수였다.
택배, 퀵, 용달 등을 사용하는 것에도 능숙해야 한다. 보내고 받는 상품에 따라 다마스를 불러야 할지 트럭을 불러야 할지 오토바이에 실어 보내야 할지 결정된다. 보낼 때 훼손되지 않도록 받은 상품이나 소품을 확인해야 한다. 사실 마네킨이나 옷걸이 부터 커다란 나무, 의자등을 패킹하고 보내고 받는 일은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이케아에서 쇼핑한 가구를 패킹해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마네킨 하나는 사람보다 무겁다. 뽁뽁이와 박스는 창고에 사이즈 별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평소 회사 내 세워져 있거나 다른 부서의 불필요한 박스가 보이면 잘 챙겨둬야 한다.
수시로 잡지를 정리하고 소품도 제자리에 둬야 한다.며칠이라도 정리하지 않으면 쌓이고 쌓인 물건들 중에서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없게 된다. 특히 POP 종류가 그렇다. 타일이며 우드 머티리얼이며,,, 정말 샘플도 많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팀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 폴더도 찾기쉽게 잘 정리해야 한다. 수시로 던져지는 사진이나 카카오톡에서 휘발되는 자료가 발생하지 않게 매장별, 유통별, 항목별로 수시로 정리해서 팀원들이 사진이나 자료를 찾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월말이면 한 달 동안의 경비 정산과 세금계산서 정리,,,나도 막내 시절에 울면서 했던 것들이다.
매장을 방문해서 디스플레이 할 때, 진열하기 전과 후의 사진을 꼭 촬영해 두어야 한다. 가끔 매장 방문 후,회사에 복귀 하고 보니 진열 사진 중 한 공간이 빠졌다거나 진열에서 놓친 부분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대로 매장 다녀온 결과를 보고할 수는 없다. 그대로 보여 드리고 한 번 혼나고 말까, 다시 다녀 올까를 고민하는데,,,먼 지방이 아니라면 경기도 정도는 저녁이나 주말을 이용해 다시 다녀 오는 편이다. 일 못한다는 말 듣는 건 싫고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니라 실수로 라는 말도 하기 싫으니까,,, 그냥 몸이 힘들어도 다시 매장에 가서 부족한 부분 다시 진열하고 사진 확인해서 제대로 제출하는게 낫다는 생각으로 일한다. 몸이 좀 힘들어도 업무의 기준을 높여 놓으면 나중에 내게 더 도움이 된다고 위로한다.
가끔 3~4년차 대리 초반의 직원들이 막내 사원에게 업무 지시하는 것을 보게 된다. "A씨, 등을 의자에 붙이고 앉으면 안되지, A씨, 재킷을 어깨에 걸치고 앉아 있으면 건방져 보여,,, 팀장님도 계시는데,,,,어쩌고 저쩌고,,, "
앗! 난, 절대로 재킷을 어깨에 걸치고 있다고 건방지다고 생각하거나 엉덩이를 의자에 깊이 넣어 등을 대고 앉아 있다고 뭐라하지 않는데, K대리는 왜 그러지? 잠깐 불러서 물어 보았다. 본인은 선배들에게 더 혹독하게 훈련(?)받았다고 했다. 생활이 나태하면 안된다고 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왜 이리 군기를 잡는걸까,,, 나는 우리 팀원이 눈치를 보거나 주눅드는 것이 싫다. 고스란히 업무에 반영될 분 아니라 얼마나 회사 오기 싫을까,,,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어느 정도 겪어봤기 때문에...
오래 전, 바로 위 사수인 S선배가 나를 상품 창고로 불렀다. 영업부에서 긴급으로 매장 보낼 상품을 정리하는 곳이라 도서관처럼 높은 랙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었다. "너, 왜 아까 칼국수 시켰어?" 다짜고짜 점심 메뉴로 나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본인은 밥 종류를 먹고 싶었는데 뭐먹을까 정하는 과정에서 내가 칼국수 얘기를 하는 바람에 식당이 정해져서 한 군데서 시키는 바람에 선배가 먹기 싫은 메뉴를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 정말 난감해,,, 내가 어떤 종류 드실거냐고 이미 여러사람에게 물어봤건만,,, 그 날, 눈믈 쏙 빼고 나서, 다음 날부터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종류를 얘기하더라도 선배 취향대로 메뉴를 선정했다. 한 번 본인 뜻대로 되자 사소한 것부터 상품 창고로 불려가기게 되었다. 네가 쓰는 향수 향이 마음에 안든다,,, 등등(이제는 기억도 잘 안난다) 회사에는 S선배가 후배들을 힘들게 한다는 소문이 살짝 돌기는 했으나 절대 누구에게도 말할 순 없었다.
어느 날, 선배가 나를 또 상품 창고로 불렀다. 그 날은 상품랙 옆에 다른 직원들이 상품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높은 랙에 가득한 상품들에 가려 건너편에 누가 있을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지 선배는 내게 대뜸 말했다. "너, 어제 마네킨 왜 그렇게 입혔어? 사람들이 너 이쁘게 입혔다 하니까 좋아? 선배앞에서 나보다 더 일 잘하는거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그랬어???" 이게 무슨 말인가, 아, 어제 매장에 갔는데 유난히 그날 스타일링이 좀 잘 되었고 다들 내가 연출한 것이 이쁘다 고했다. 많이 컸어...등의 칭찬과 함께. 그 말들은 사원에게 격려하는 선배들의 말이지, 그게 함께 일한 S선배에게 스크레치 낼 일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S선배의 생각은 "S선배가 잘 가르쳐줘서, 그래요, 선배한테 다 배웠어요." 라는 드립을 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온갖 억지(?)를 부리다가 내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보고는 멈추었다. 그런데 바로 옆 랙, 그러니까 1m도 안되는 거리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상품 정리를 하며 듣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보고를 드렸는지 본부장님이 부르셔서 사실을 확인하셨다. 난 그저 "예'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고, 그 뒤로 S선배는 다른 브랜드로 배치되었다.
그 무렵 S선배로 인한 스트레스로 회사 가기 싫어서 많이도 울었다. 부모님께 말 할 수도 없고, 친구들에게 전화로 혹은 일요일마다 교회가서 기도하며 울었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이니 어쩔 수 없었고 얼마간의 경력을 쌓았어야 할 터였다. 지금으로 치면 직장 내 괴롭힘에 딱이다. S선배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정말 이쁘고 딱 부러지는 성격에 남에게 지는걸 못참아 하는 완벽한 성격이었다. 모든 것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고 어디를 가든 스포트를 받아야하는 성격이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완벽한 코디를 위해 월급은 항상 모자랐고, 500g이라도 살이 찐다는 느낌이면 절대 먹지 않았다. 키가 크지 않아서 항상 높은 힐만 신었다. 헤어 스타일도 완벽했다. 처음 입사했을 땐 롤모델이었는데 점점 다른데서 만날까봐 두려운 사람이 되었다. 패션업에 종사하는 지인들과 함께 얘기하다보면 " 더한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너는 그런 사람 한 번이면 다행이다" 라고 하는 이도 더러 있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감정을 타인에게 쏟아낼까, 어떤 이는 디자인 업무를 하는 사람은 예민해서 그럴 수 있다고도 한다.
친구들을 만나면, 품평회나 패션쇼, 안테나샵에 필요한 소품 때문에 비 오는 날 짐 들고 뛰기도 하고(소품은 젖으면 안되고, 양손에 짐이라 우산을 들 손이 없다), 몸보다 2배는 큰 트리가 엘리베이터에 실리지 않아 계단으로 들고 올랐던 이야기들을 한다. 맨날 만나면 지긋지긋한 회사 이야기, 상사 이야기, 업계 이야기로 수다는 끝이 없다. "왜 그렇게 열심히 했어?" 하며 웃다가, "그러다 보니 이렇게까지 일하고 있나봐" 하면서 마무리 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앤드리아'가 명품백을 호수에 던지고 미란다를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앤드리아가 이 바닥(?)을 평정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떠난다.
영화에서조차 이 곳은 떠나야할 곳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