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뜨거운 여름이 지나갈 무렵,
나의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20년이 넘는 직장생활 동안 생길 수 있는 모든 안좋은 일은 동시에 터져 버린 듯했다.
나는 회사의 비주얼을 관리하고 실행하는 팀장으로, 직급은 부장이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다양했던 브랜드들이 정리되고 업무는 많이 간결해졌지만 비주얼에 대한 높아진 인식으로 우리 팀에 대한 타부서의 관여도와 회사 내 다양한 환경 변화로 조금은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잘 넘기면 또 지나갈 수 있는 바람 같은 것이었을텐데 그 때는 그러지 못했다. 내 일인듯 아닌 듯 웃으며 일 했다면 괜찮았을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만 불거졌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픈 시간이 늘어났고 잠을 설치는 날이 계속되었다. 새벽에 설핏 잠이 들어 알람 소리에 깨서 일어나면 하루 종일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예민한 시간이 늘어나면서 주변 사람들과 자주 부딪쳤다. 조금은 남의 일인듯 일 했더라면 괜찮았을까.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업계에서 마음 터놓고 일했던 한 팀장님이 정신과 치료를 권했고 진료를 받기 위해 회사 근처의 병원에 예약했다. 가장 빠르게 진료받을 수 있는 곳이 2주 뒤였다. 그렇게 나의 정신과 치료는 3번에 걸쳐 2달 정도 진행되었다. 첫 날, 많은 서류를 작성하고 의사 선생님께 내 이야기를 털어 놓는데 그 시간도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이러저러하게 설명하는 것도 생각보다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약을 처방 받았는데 생각보다 양이 꽤 되었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닌데 이렇게 약을 먹는 것이 필요한지 묻는 내게 마음을 릴렉스하게 가지면 중요한 결정을 급하게 하거나 위태로운 일이 생길 수 있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이를테면 퇴사 같은 거예요, 갑자기 욱하는 마음으로 사직서를 써버리기라도 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되고 결국은 본인을 원망하게 되는 거예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조금 유연한 마음으로 너그럽게 환경을 바라볼 수 있을 거예요."
두 번째 진료가 끝나고 약이 꽤 늘었다. 세 번째 진료가 끝나니 한 번에 먹어야 하는 약의 양이 반 주먹 분량은 되어 보였다. 병원에서는 잠시 쉴 것을 권했고 나는 회사에 병가를 냈다.
후덥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도 하고 카페에서 책도 보며 시간을 보냈다. 2개월의 병가가 끝날 무렵, 회사에서 거취에 대한 연락이 왔고 자연스럽게(?) 퇴사가 결정되었다. 20년이 넘는 직장 생활 동안 몇 번의 이직이 있었기에 퇴사가 새삼스럽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송별회도 없는 뭔가 사라지는 무드, 쉐이드 아웃되는 느낌의 퇴사는 처음이다. 그리고 이번 퇴사는 인생 마지막 퇴사가 될 것이라는 진한 감정이 올라왔다. 마지막 회사, 마지막 퇴사 뭐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게 정신과 치료를 권했던 팀장님이 내 스타일의 꽃다발을 준비해 주셨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송별회도 못하고 어떡하냐며... 화려한 컬러 꽃 보고 기분 좋아지라고, 힘 내라고 했다. 맛있는 거 먹고 건강 챙기자고 했다.
연차를 포함한 2개월 반의 병가 기간, 몇 개월치의 위로금, 11개월의 실업급여, 6년 8개월 동안 업무의 퇴직금이 당분간 나를 편안하게 해 줄 것 같아 마음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이 과정까지 겪으며 회사와 나, 아름답게 헤어지는 방법은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 하늘 아래 이렇게 눈부신 꽃다발과 함께 퇴사 1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