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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May 27. 2022

결혼, 할 수만 있다면

새로운 식구를 찾아서 2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했던 기간이 훨씬 지나갔다. 여전히 C의 전화는 꺼져있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C가 좋아했던 옷을 입고 그의 물건을 종이가방 한가득 챙겼다. 집이 어딘지도 모르는 데 울면서 한 시간 반이 걸리는 C의 동네로 무작정 찾아갔다. 안정적이고 편안했던 관계가 한순간에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D와는 어쩌다, 결국엔 사랑에 빠졌다. D와 일이 끝나고는 밥을 따로 먹으러 갔다. D도 나도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나는 D에게 C의 존재가 있다는 걸 알렸고, 그게 우리 관계의 브레이크가 되어 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약속을 잡아 전시를 보러 갈 수 있었다. 서로의 사진을 찍었다. 차를 마시러 가선 테이블 위에 서로 포개놓은 손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해가 지도록 청계천을 걸었다. 묵묵히 걷는 D 옆에서 C를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D를 더 알고 싶었고, 더 오래 함께하고 싶었다.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을 C의 존재 만으로 막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C를 더 좋아하지 않는 걸까. 


D와 키스를 하고서도 C를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사랑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C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 역시 사랑하고 있다고. C가 싫어진 게 아니었다. 그저 나는 다른 사람을 각각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쓰레기인 것 같았다. 그래도 두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친구에게 고민을 얘기했더니, 


“ 너 폴리아모리 아니야?” 


폴리아모리? 구글에 쳤다.                               

'많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폴리’(poly)와 ‘사랑’을 뜻하는 라틴어 ‘아모르’(amor)의 합성어이다.


세 명 이상의 사람이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 사랑하는 상태. "비독점적 다자 연애"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오픈 릴레이션십에 속해있는 개념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부일처제, 일 대 일 연애 관계를 독점 관계라고 불렀다. 내게 마음은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해하는 사랑의 방식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생겼다. 그래, 내가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은 무한하다. 


사랑하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게 되고서부터는 자신의 사랑의 개념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의 연애가 힘들어졌다. 우정, 사랑이 나뉘는 그 모호한 경계를 애인에게 언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지 헷갈렸다. 다른 시기 다른 사람을 사랑했던 일은 괜찮지만, 왜 같은 시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둘 다 사랑하는데 그 감정이 다 배반같이 느껴져야만 하는 걸까. 왜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괜찮고, 다른 애인을 사랑한다고 하는 건 안되는가. 나와 연인의 사랑하는 방식은 당연히 다른데 둘 사이의 관계에서 언제나 잘못의 전제는 내가 되는 걸까. 연애할 때면 다른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항상 상대가 전전긍긍했다. 


둘이서만 독점적으로 사랑하겠다는 결혼 계약. 연애도 결혼에서도 나는 그 보편적인 계약을 언제나 어길 사람이었다. 결혼이라는 약속에 기대되는 헌신적인 역할을 애초에 폴리아모리는 이해할 수 없다. 좋은 파트너, 며느리가 되기에는 애초에 글렀다. 


그리고 애당초 연인과 함께 같은 지붕 아래 살고 싶지도 않았다. 더 사랑하지 않는 순간에 공간이라는 계약에 묶여 한집에서 계속 살기는 싫었다. 같은 공간에서 못 볼 꼴 다 보여주면서 나중에는 결국 정으로 같이 사는 수많은 친구 같은 부부의 전례를 밟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친구 같은 부부, 정으로 산다는데 맨 처음부터 사랑하는 친구 중에 맘 맞는 사람과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혼자 살기에는 불안한 미래에 연인이 아니더라도 서로 든든히 지켜줄 줄 누군가 있었으면 한다. 


나처럼 수많은 주변 성소수자(이하 퀴어)** 친구들 역시 연애 방식, 성 정체성, 성적 취향, 연애에 대한 관점도 전혀 다르다. 당장에 이들이 통과해내고 있는 관계부터가 너무 다양하다. 남성과 만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바이 섹슈얼 친구는 여성과 만나다, 한 번 남자와 만나 어쩌다 보니 결혼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실제로 그런 분들의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리기도 한다. 레즈비언 친구는 결혼을 선택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결혼을 원했다. 외동인 무성애자 친구는 홀로 고독사 하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결혼하고 싶다. 내게 결혼이라는 제도가 어떻게 해도 들어맞지 않을 것 같아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결혼이라는 제도에 걸맞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내가 원하는 관계에서 결혼이 가진 법적 권리를 준다면 나는 기꺼이 선택할 테다. 나는 비혼 선언을 할 수 없는 퀴어, 비혼이고 싶은 미혼인이다. 


*여기서 나오는 퀴어들의 이야기는 미디어, 책, 실제 사례, 주변 이야기를 취합해 보편적으로 나온 이야기들을 각색한 내용입니다. 

**성소수자. 주로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 섹슈얼, 트렌스젠더)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퀴어라는 의미는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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