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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May 28. 2022

상상력을 가로막는 규칙

새로운 식구를 찾아서 3


“내 기숙사 룸메이트는 새벽 3시에도 자기가 원하면 스탠드를 켠다니까? 그것도 침대를 향해서?”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기숙사 룸메이트의 욕을 하던 친구는 내가 공동체를 고민한다고 할 때면 자기는 혼자 살 거라며 몸서리를 쳤다. 자기는 혼자가 딱 맞는 사람이라면서. 


군대에도, 기숙사에도 규칙이 존재한다. 외박의 횟수라든지, 점등 시간, 청소 확인, 등.  그 때문에 방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들 간의 소통이 사라져도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통금이 있는 기숙사라 입실은 12시까지, 불 소등은 새벽 1시까지라는 기준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어쩌다 바쁜 일 때문에 늦게 자야 하는 경우 상대에게 이해를 구할 수 있을 일도 상대가 넘어가야 하는 일이 된다. 늦게 자는 사람이 규칙을 어긴 사람, 상대는 관용을 베푸는 일로 옳고 그름이 생겨버린다.


청소에 대한 규칙이 있는 경우 청소 점검 시간 외의 더러운 상태는 이야기하기 어려워진다. 청결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면 깨끗함에 대해서 유난 떠는 사람이 돼버린다. 그리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깨끗함의 기준은 다르다. 그래서 눈에 유독 들어오는 더러운 곳도 다르다. 그러나 청소의 기준은 공통의 규칙에 머무른다.


이런 경우 같이 사는 것에 대한 합의는 상호 간이 아니라 집단에 있다. 더부살이에서 전체의 규칙을 지키는 것부터가 먼저다. 구성원들에게 피해만 안 끼치면 될 뿐 규칙은 머리에서 적용된다. 구성원의 기준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일도 규칙에 맞는가 틀렸는가로 이해된다. 서로 배려하고 이해해가며 공동체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상황이 생기기 어렵다. 큰 규칙이 하에 구성원을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의 틈은 좁아진다. 


이런 고민을 통해 규칙을 서로 세울 수 있는 상황에서 살게 된다면 살면서 일어나는 문제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로 싸울 수 있고, 불만이 생기는 건 당연하기에 서로 이해하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동거인과의 문제는 조율될 수 있을 거라며 친구를 꾀었다. 우리는 이미 오랜 친구였기에 서로를 잘 알았다. 살기 전에도 충분히 예상되는 문제와  경제적 조건, 청소의 기준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학교 주변 월세보다 훨씬 싼 비용으로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기에 친구와 투룸을 구하기로 했다. 그때 공인중개사는 ‘결혼 이전에 잠시 같이 사는가 보다’ 하는 시선으로 바라봤고, 그러한 시선이 불편하지 않았다. 


같이 살기 전에 너와 나, 우리는 명확했다. 같이 있는 순간에는 우리였고, 그 외의 서로가 모르는 시간에 대해서 우리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얘기했다. 같이 살면서는 너와 나, 우리의 범위가 모호해졌다. 처음에는 그런 우리가 좋았다. 집에 돌아와 함께 영화를 보고 맥주를 마셨다. 그렇게 서서히 각자 혼자가 되고 싶은 순간이 언제인지 알기 힘들었다. 각자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더부살이에서 정하는 약속들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 나의 기준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되어갔다. 처음에 세웠던 여러 규칙 중 유일하게 지켜졌던 건 생활비 정산과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월세뿐이었다. 


일정 계약이 있는 월세, 혹은 보증금, 돈이라는 것이 함께 사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어갔다. 삶의 유예상태, 잠시 한때 살아가는 삶이라는 공인중개사의 시선처럼 우리의 생활을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꾸려나가고 싶은 우리의 현재가 없으니 불편함을 참는 이유는 돈으로 귀결했다. 곧 끝날 계약 만료일을 바라보며 관계에 대한 인내심은 하루하루 버텨가고 있었다. 


지붕 아래 ‘우리’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우리의 커다란 규칙은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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