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의 육아법
남편이 지인에게서 바지락 한 상자(한 봉지가 아니라 한 상자다!)를 얻어왔다.
살이 통통하고 해감까지 된 실한 바지락이다. 완전 횡재했다.
마침 비도 오고, 남편이 수제비 먹고 싶다기에 바지락 듬뿍 넣어 수제비를 끓여주기로 했다.
뭐든 사먹긴 쉬워도 직접 만들어먹긴 번거로운 법이다. 수제비도 그렇다. 밀가루 반죽부터가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남편이 아이와 잘 놀아주기만 하면 뭔들 못하리.
점심을 거른 남편이 배고프겠다 싶어 더 손이 바빠진다.
그렇게 열심히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들 녀석이 와서 치대기 시작한다.
"엄마 놀자~"
"아빠랑 잘 놀더니 왜 또~"
"이제 엄마랑 놀래. 엄마 놀자."
"엄마 '요리공주 루피' 됐어~ 아빠 배고프대. 엄마 수제비 만드는 동안 아빠랑 놀자~?"
남편이 다시 아들 녀석을 데려간다. 하지만 소용 없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냄비에 밀가루
반죽을 퐁당퐁당 던져넣고 있으려니 다시 녀석이 주방 쪽으로 온다.
"엄마랑 놀고 싶어. 엄마 놀자, 응?"
"안돼. 뜨거워, 위험해, 저리 가서 놀아."
남편도 처음 한두 번은 희운이를 달래서 데려가 놀지만 소용 없다.
"엄마랑 놀고 싶어. 엄마아아~~"
이럴 땐 정말 우째야 하는 건지... 요리할 땐 정말 중간에 관두기도 애매하다.
"희운아. 엄마 요리 빨리 끝내야 놀 수 있어. 요리할 때 희운이가 방해하면 더 못 놀아."
그러면서 나는 하던 요리 마저 끝내려고 했다. 우는 아이를 그냥 두고, 애써 무시한다.
드디어 수제비가 완성됐다. 그릇에 담으면서 드디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흐뭇하다.
"엄마, 이제 놀 거야? 그거 먹고 놀자. 엄마랑 놀고 싶어."
"자기야, 맛있겠지? 아웅~ 요 바지락 토실토실한 거 봐."
"엄마, 나랑 놀 거지? 엄마랑 놀고 싶어."
"숟가락 젓가락 좀 놔봐. 근데 너무 많이 끓였나? 다 못 먹으면 어떡하지?"
"엄마..."
"애가 옆에서 말하잖아. 대답이라도 좀 해주면 안 되니?"
남편의 언성이 높아진그때서야 희운이가 내 옆에 와 있다는 걸 알았다.
저녁을 먹고 나서야 희운이는 그토록 원했던 엄마와 놀기를 할 수 있었다. 아이와 놀아주면서 내심 미안했다.
원할 때 제때 못 놀아준 건 둘째치고, 자신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는 엄마를 보며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시당했다고 생각했겠지, 심지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건 아니었을까?
"늘 말하잖아. 희운이 말에 제발 귀를 기울이라고. 자기는 가만 보면 못 듣는 게 아니라 안 듣는 거 같아."
남편 말이 맞다. 희운이가 계속 아까부터 했던 말, 엄마랑 놀고 싶다는 말...
한 시간 전부터 계속 똑같은 말 반복이라 그저 무심하게 넘겼던 말.
엄마랑 놀고 싶어, 엄마 놀아줘, 엄마 같이 놀자, 엄마, 엄마, 엄마...
아이가 하는 말을 나는 분명 들었다. 열 번도 넘게 들었지만 나는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라는 말은 우리 남편이 나에게 수도 없이 했던 말이다.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한데, 왜 이렇게 지키기 힘든 건지... 집안일에 정신 없었다고 해봐야 결국 핑계일 뿐이다.
엄마랑 놀고 싶어. 이 말도 언젠가는 못 듣는 날이 올 텐데... 조금만 더 크면 엄마 말고 친구랑 놀려고 할 텐데.
그때가 오기 전에,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정말 정말 아이의 말을 잘 '들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