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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영낭자 May 18. 2016

스승의 날 선물에 관하여

내 남편의 육아법

"언니, 스승의 날에 유치원 선생님 선물 뭐할 거야?"

같은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친한 동생이 물어보기 전까지, 나는 낼 모레가 '스승의 날'이라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스승의 날에 선물해야 돼?"

나의 대답에 동생은 뜨악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당연한 거 아냐? 언니, 희운이가 선생님한테 

이쁨받았음 좋겠지? 그럼 선생님한테 신경써야지. 나도 학원에서 애들 가르쳐봤지만, 나한테 커피라도 사다주는 엄마 애한테 사탕 하나라도 더 주게 되더라. 그게 인지상정이야. 

친한 동생의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있자니 슬슬 갈등이 생긴다. 멀리 찾을 것도 없이 내 막내동생이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김영란 법'이 발의되기 전부터 스승의 날이라고 선물 주는 관행은 이미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나도 스승의 날 선물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주위 엄마들은 달랐다. 

머리하러 미용실에 갔는데, 웬 양키 캔들 상자가 있다. 뭐냐고 물어보니 '스승의 날'에 돌릴 선물이란다. 

(미용실 원장 딸도 우리 애와 같은 유치원에 다닌다). 뭘 이렇게 많이 샀냐고 물어보니, 담임 선생님 꺼, 

원장님 꺼, 부원장님 꺼, 원감 선생님 꺼 골고루 돌릴 거란다. 

헐~! 뭐야, 담임 선생님은 기본이고 원장님 선물까지 챙기는 거야? 

희운이랑 어린이집부터 유치원까지 같이 다니는 애기 엄마한테도 슬쩍 물어본다. 

"혹시 스승의 날 선물했어요?"

"되게 약소한 거 드렸어요."

"뭔데요?"

"화장품요."

띵~! 되게 약소한 수준이 화장품이라고?! 게다가 어떤 엄마는 '홍삼'을 돌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뭐시기? 호, 홍삼이라고라?!

이쯤 되니, 스승의 날 선물을 하나도 안한 엄마는 나 뿐이다. 심히 초조해진다.

'다른 엄마들은 다 스승의 날 선물 돌렸네. 나만 안했어. 이제라도 드려야 하나?'

갈등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한다. 

"선물 줬다고  예뻐하고, 안 줬다고 안 예뻐하면 그게 선생이야?"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선물 받으면 사탕 하나라도 더 챙겨주겠지. 그게 인지상정이라잖아."

"다른 엄마들이 스승의 날에 선물 왜 해? 솔직히 선생님이 고마워서라기보다는 우리 애 좀 잘 봐주십사 부탁하는 거잖아. 그런 생각 자체가 문제야. 한번 그렇게 생각하면 애가 대학갈 때까지 선물줘야 직성이 풀릴 거라고."

남편 말이 맞는 것 같다.  심란한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다. 그래도 찜찜함은 쉽게 떨칠 수 없다. 

그렇게 스승의 날이 지나고 며칠 후. 맞벌이로 바쁜 이웃집 아이를 돌봐주시는 도우미 이모님을 만났다.

"희운이 엄마, 나는 애 둘 키우면서 한번도 학교에 찾아간 적도 없어. 근데도 잘만 컸잖아. 그런 거 안해도 돼."

우리 엄마뻘 되시는 도우미 이모님의 말씀을 듣자니 마음이 놓인다.

하긴, 우리 엄마도 나랑 내 동생 키울 때 '스승의 날' 선물은 커녕 학교에 한번도 와보지 않으셨다. 심지어 졸업식 때도 일하느라 못 오셨으니 할말 다했지 뭐. 그렇다고 내가 선생님한테 차별받거나 미움(?)받았나? 아니, 그런 기억은  한번도 없다. 희운이도,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수업시간에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의젓하게 행동한다고 하니, 알아서 이쁨받으며 잘 지낼 것이다. 

"우리 희운이를 믿어봐. 엄마가 아무리 선물을 해도 미운 짓 하는 애는 선생님이 힘들 거고, 엄마가 선물같은 거 안해도 애가 이쁜 짓하면 선생님이 편하지 않겠어? 진짜 스승의 날 선물은 애 교육 똑바로 시켜서 보내는 거야."

역시 남편의 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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