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학교 마치고 돌아와서는 자전거를 타겠다며 주섬주섬 준비를 합니다. 날씨 좋은 주말 아침이면 아빠와 둘이서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데 왕복 2시간 정도 걸리는 대성리역까지 갔다가 돌아옵니다. 평일엔 그저 놀이터에나 타고 나가는데 며칠 전부터 멀리 나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합니다. 그러더니,
" 혼자 갈 수 있어요. 갈 수 있는 데까지 갔다가 힘들면 중간에 돌아올게요."
하고 허락을 구하듯이 쳐다봅니다. 얼굴 바짝 들이밀고 눈을 반으로 접어 웃으며 온몸으로 '가고 싶어요' 광선을 발사합니다.
'혼자서 위험하진 않을까, 괜찮을까..... 혼자서...'
엄마 마음에 걱정이 마구 일어납니다. 하지만 안된다는 말은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먼저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이 별로 없는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외면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어느 길로 갈 건지, 건널목은 어떻게 건너는지, 목표 장소에 도착하면 전화하고 힘들면 중간에 돌아오라고... 숨기지 못한 걱정을 딸려서 보냈습니다.
한껏 상기돼서 아이가 돌아옵니다. 현관 입구부터 개선장군 마냥 목소리를 높여 홀로 라이딩의 무용담을 쏟아 냅니다. 평소와 같은 길, 같은 건물 앞을 지났을 텐데 아이 입에서 나오는 길과 건물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얻은 자신감만큼 길은 넓어져 있고 건물은 높아져 있습니다.
그리고 난 뒤 며칠째 아이는 홀로 라이딩을 나섭니다.
아마도 점점 넓어지는 도로와 점점 더 높아지는 건물을 보고서 돌아올 겁니다. 어깨가 반 뼘쯤 더 올라가서는 "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고 나서는 아이 등 뒤로 문득 그날이 떠오릅니다.
4년 전, 1학년 입학식 다음날인 3월 3일.
긴장과 기대와 불안을 모두 안고 집을 나서는 아이와 학교까지 동행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늘 호기심보단 두려움이 압도적으로 앞서 있는 아이이기에 입학 전부터 학교도 자주 가보고 여러 책으로도 접하게 했지만 그다지 소용이 없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쉴 틈 없이 부산스럽게 맞물리는 손가락들을 보면서 어떻게 긴장을 좀 풀어줄까 고민하며 걷는데 아이가 갑자기 멈춰 섭니다.
" 엄마, 할 게 있어요."
학교 가던 길가에 멈춰 서서 아이가 하는 모양새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훅! 하더니 하늘로 두 팔을 치켜올리며 소리칩니다.
"눈물아, 날아가라!!!"
아!!! 순간 제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학교 입학 전 잠자리에 누워서 아이에게 종종 해주었던 말이 있습니다.
"우주야, 학교라는 공간이 너무나 낯설고 새로운 곳이지만 네게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어. 어린이집에서 자주 눈물을 보였잖아. 혹시라도 그런 네 모습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학교는 새로운 기회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니까 새로운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어."
7살 아이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알 순 없지만 이런 말을 종종 해주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이 두렵긴 하지만 늘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 조금 용기 내어 보면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새로운 일상을 만날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는 이 말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기억만 한 게 아니고 가슴에 꼭꼭 새겨두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 눈물아, 날아가라~~~!!"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듣는 줄 알았던 작은 가슴에 엄마가 해준, 알 듯 말 듯한 말들을 홀로 새기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이 안의 두려움 속에 숨어있던 달라지고 싶다는 소망.
두렵지만 용기 내어 보겠다는 다짐들.
내가 알아채지 못했던 순간들 속의 아이 마음이 보이는 듯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뜨거워진 내 눈시울을 꾹꾹 누르며 정말 멋진 생각이라고 아이를 마주 보며 눈빛을 반짝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외쳤습니다.
" 눈물아, 날아가라~"
" 눈물아, 날아가라~~~~!!!!!!!"
걱정도, 두려움도, 내 아이 가슴 안에 있는 작은 티끌까지 모두 날아가라!
일종의 의식을 치르 듯 비장하게 시작한 목소리에 어느새 까르르 웃음소리가 섞여 높아집니다.
그날, 아이는 이렇게 자라는구나...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우리 우주의 그릇은 이렇게 커지고 있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가슴이 간지러웠습니다.
그 이후에도 종종 가슴이 간지러운 날들을 만납니다.
홀로 라이딩에 나서는 아이 뒷모습을 보는 오늘도 가슴이 간질간질합니다.
우리 우주의 그릇이 또 커졌구나!
지지고 볶고 늘 그대로 인 듯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내 아이는 오늘도 가슴속 그릇을 채워가고 있구나!
아이가 대견합니다.
기특합니다.
사랑스럽습니다.
이제는 믿고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성장해 주었음에 고맙습니다.
그리고 잘 키워내고 있는 내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날입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하고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내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잘하고 있어.' 격려하는 박수.
'앞으로도 잘 해낼 거야.' 응원하는 박수.
혼자 치는 박수 속에 조바심도 올라옵니다.
'아이의 그릇이 커지는 만큼 나도 내 그릇을 매일매일 키워내야지.'
아이의 그릇을 본보기 삼아 나의 그릇도 키워갑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 그로 인해 더 넓어진 세상을 만나게 하는 힘.
아이가 주는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