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칩과 가을.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서 부랴부랴 왔건만 아이가 먼저 도착해 있다.
"엄마, 다녀오셨어요?"
눈꼬리 반으로 접어 웃으며 '폭' 안기는 작은 몸을 꼭 안아준다.
"응, 엄마는 잘 다녀왔지. 우리 별이도 학교 잘 다녀왔어?"
대답 대신 머리통이 곰실곰실 위아래로 고갯짓을 한다. 끄덕이는 머릿통을 슥슥 쓰다듬어 준다.
'오늘도 애썼어.' 담아서 한 번. '엄마도 보고 싶었어.' 담아서 또 한 번.
기분 좋게 부비적거리던 아이가 고개를 들고 말한다.
"엄마, 초코칩 먹고 싶어요. 초코칩 사러 가요."
우리 별이 최애 과자가 다 떨어졌나 보다.
"그럼, 가야지."
가방만 장바구니로 바꿔 들고 집을 나선다.
아파트 단지를 따라 걷는데 바닥이 유독 노랗고 빨갛다.
매일 지나면서도 정신없이 걸었던 길에 어느새 낙엽이 이불처럼 덮였다. 하루 만에 이렇게 덮이진 않았을 텐데 '나도 참 정신이 없구나.' 생각하며 일부러 힘주어 낙엽을 밟아본다.
바스락바스락. 버스럭버스럭.
옆에서도 같은 소리가 난다. 아이가 밟는 좀 더 통통 튀는 바스락 소리.
함께 울리는 소리에 기분 좋게 걷는데 아이가 말한다.
"엄마, 학교에서 내일 동시 짓기 한대요. 주제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가을에 비유해서 표현하는 거예요."
그냥 좋아하는 음식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그걸 또 가을에 비유해야 한단다.
아이들에게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어, 그래? 별이는 생각해 놓은 게 있어?"
"음, 벌써 다 생각해 놨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시자마자 딱 떠오르는 게 있었어요. 그걸로 쓸 거예요."
자신만만한 말투에 궁금증이 슬며시 인다.
"어, 궁금하다. 궁금해. 엄마한테만 살짝 알려주면 안 될까?"
"그럼, 한 번 들어보세요. 좋아하는 음식은 과자로 할 거예요. 초코칩."
"음, 초코칩. 우리 별이가 좋아하지. 그 초코칩은 가을이랑 어떻게 연관이 될까?"
"초코칩을 먹을 때 입안에서 바삭바삭 소리가 나잖아요. 낙엽은 밟을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고요. 그래서 초코칩을 먹을 때마다 내 입 안에 가을이 찾아온다고 쓸 거예요."
오!!!! 그럴듯해!
"오! 그렇네. 초코칩 먹는 소리랑 낙엽 밟는 소리가 비슷하네. 그걸 표현할 생각을 하다니 멋지다."
내 말투에 진심이 듬뿍 느껴졌나 보다. 올려다보며 웃더니 한마디 더 한다.
"이제 초코칩 먹을 때마다 가을 낙엽이 생각날 것 같아요."
오늘 우리 별이에게 가을을, 낙엽을 기억하는 추억버튼이 하나 생긴 것 같다.
앞으로 초코칩을 먹을 때마다 이 순간을 기억하겠지?
나에게도 초코칩은, 이 낙엽 쌓인 길과 그 길 위에서 우리 별이와 나누었던 대화들. 그리고 별이의 동시로 기억될 것 같다.
바삭바삭. 바스락바스락.
가을을 기억하는 추억버튼이 하나 늘었다.
가을은 가을은 노란색
은행잎을 보세요
그래그래 가을은 노란색
아주 예쁜 노란색
흥얼흥얼.
절로 나오는 노래를 작게 부르며 아이와 아이 손에 꼭 쥐어진 초코칩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흔한 어느 가을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