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
선생님과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이가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엄마 충전!!!” 합니다. 걸음은 터덜거려도 눈매는 미소가 어려 있습니다. 곧 다가올 일에 대한 기대, 혹은 즐거움이 녹아 있는 눈. 설거지 하다가 고무장갑을 벗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향해 돌아서서는 두 팔 크게 벌리고는 아이를 푹~ 안아줍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꼭 안고서는 머리를 쓰담쓰담, 등을 토닥토닥. 그리고는 “충전~~”하고 크게 소리 냅니다.
꼭 끌어안은 채 같이 몸을 흔들흔들, 숨 막히게 꽉 조였다가 간지럼도 살살 태워봅니다. 까르르. 크크큭.
새우자세로 등이 구부러진 아이가 눈 꼬리에 웃음을 매달고는 “한 번 더!!”를 외칩니다.
뭐 어려운 일일까요. 한 번 더 합니다.
꼭 끌어안고, 쓰담쓰담. 토닥토닥. 흔들흔들. 간질간질. 충전~~.
가슴에 웃음이 가득 차올라 아이 숨이 넘어갈 때까지, 마음이 뽀송해져서 다시 자기 할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채워질 때까지 충전!!
아이들은 모두 다릅니다. 백 명의 아이가 있으면 백 명 모두 생김새도, 성격도, 마음의 결도 다르지요.
우리 첫째는 마음의 결이 예민한 아이입니다. 마음이 아픈 아이는 아닙니다. 그저 다른 아이들보다 주변 자극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그 자극 때문에 같은 일을 경험해도, 긴 관찰 시간이 필요하고, 더 많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고, 실제로 도전하기까지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아이지요. 주위에서 아이를 보면 다들 한마디씩 할 만큼 까칠하고 예민하지요.
첫 아이를 낳고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생각도 해보지 못한 채 육아의 늪에서 허덕거리다가 내 안에, 내가 모르는 밑바닥까지 들여다 본 뒤에야 무언가 절실해졌습니다.
내가 아이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 정신없이 찾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육아서, 부모교육, 상담, 심리학공부까지.
그러면서 길이 보이더군요. 아이를 알고 나를 알아가며, 아이가 어떤 것을 힘들어하는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내가 견디기 힘든 것은 무엇인지, 나와 아이가 잘 맞는 점은 무엇인지.
아이의 예민한 감각들을 다듬어가고, ‘보통은 이렇지’ 라는 ‘보통’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롯이 내 아이만 보기 위해 인내하고 기다리는 시간들.
그 시간들이 쌓여 아이는 성장해 갑니다.
다른 아이들은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들 앞에서도 멈칫하고, 망설이고, 발을 못디뎌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면서도 기다려 줍니다. 내 아이 안에 힘이 차오를 때까지요.
숨 쉬는 것만큼 쉬운 건 다른 아이들이지 내 아이는 아니니까요.
이 기다림이 절대 쉽진 않았습니다.
‘왜 이게 어렵지?’ 마음속으로 드는 생각들이 날 괴롭히고 내 마음을 할퀴고, 가끔은 아이에게 비춰지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도 쉽진 않습니다.
그저 그래야 하니까 기다려주는 것이지요.
멈칫거리던 걸음이 일주일에 한번에서 한 달에 한번으로, 한 달에 한번에서 서너 달에 한번으로, 서너 달에 한번에서 반년에 한번으로, 반년에 한번에서 일 년에 한번으로...
기다려 주는 만큼 아이 안의 힘이 자라는 게 보이니, 내가 찾은 답대로 기다려줍니다.
‘충전’은 아이와 내가 찾아낸 해답 중 하나입니다.
청각과 촉각이 예민한 아이는 몸으로 표현해주는 사랑표현을 좋아합니다. 말로 건네는 것보다 아이 마음에 훨씬 흡수가 잘 되지요.
아이가 작은 돌부리들에 걸려 넘어져 일어서기 힘들어 할 때 마다 꼭 안아주며 ‘우리 충전할까’하며 시작했던 온몸 포옹.
마음이 허전할 때, 우울할 때, 속상할 때, 슬플 때, 그저 힘이 좀 빠졌을 때.
마음을 채우는 우리 집 마법의 주문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가 몰랐던 내 안의 나와 마주하는 일이고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세상을 키워내는 일이기도 하지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웃음도, 눈물도, 슬픔도, 괴로움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있다면 좀 더 긍정적으로, 따뜻하게 그 과정을 이겨내고 즐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아이의 마음에. 그리고 내 마음에. 마음을 일으켜주는 마법의 주문 가지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