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쯤 되면 노곤함이 밀려온다. 아침부터 동동거리며 보낸 하루의 피곤으로 신경이 좀 날카로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종일 함께하는 건 즐거운 고행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에 갇혀 지내는 요즘은 가끔 ‘즐거운’을 뗀 그냥 고행이기도 하다. 오늘은 기꺼이 감내해야 하는 그 고행의 날 중 하루였다.
“양치하고 엄마랑 책 읽자”라고 말해놓고 먼저 방으로 가서 눕는다. 몸이 가라앉는다. 온몸이 침대에 스며드는 것 같다. 절로 감기는 눈꺼풀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잠시 쉴 틈이 없었던 오늘의 내게 ‘오늘도 고생했다’ 칭찬을 건네 본다.
‘스스슥...’
‘부스럭..’
‘키득키득..’
열려 있는 내 귓가로 소리들이 전진해 온다.
거실에서 문간으로. 문간에서 침대 아래로.
전진해 오다 자기들끼리 부딪혀 오만소리가 섞여 깔깔댄다. 웃음에 섞인 밝은 기운이 먼저 도착해 눈꺼풀을 살며시 밀어 올린다. 실눈을 뜨고 바라보는 침대 아래가 고요하다. 오르락내리락 검은빛이 어른거리다가 동그마니 까만 해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슬금슬금. 멈칫멈칫.
눈치 보며 야금야금 올라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커다랗고 동그란 눈이 더 커지더니 까르르르 웃으며 폭풍처럼 덮쳐온다. 순식간에 침대를 기어오르더니 어느새 내 배 위에 납작 엎드려 킁킁거린다. 강아지처럼 꼬무락거리더니 해실해실 웃으며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엄마가 두 번째로 좋아요.”
아, 요 예쁜 녀석!
우리 둘째는 궁금한 것이 정말 많은 아이이다. 하루종일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얘기 나누다 보면 저 머릿속엔 무슨 주머니가 저렇게 많을까, 이번엔 또 어떤 주머니를 꺼낼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