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바이엘.
찬바람에 발갛게 언 얼굴로 아이가 들어섭니다.
피아노 학원 마쳤다는 전화를 받은 지 5분이 채 되지 않았으니 분명 헐레벌떡 뛰어왔을 겁니다.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아이가 소리칩니다.
"엄마, 나 내일부터 체르니 들어가요."
발개진 얼굴만큼 목소리도 벌겋게 부풀어 있습니다. 아이의 부푼 마음이 가득 들어가 '뻥' 터질 듯 쩌렁쩌렁합니다.
나와 함께 손잡고 쭈뼛거리며 들어섰던 학원.
첫날 수업 마치고서,
"빨리 친구들처럼 내 손가락도 피아노 위를 날아다녔으면 좋겠어요." 하고 종알거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일 년이 지났습니다.
서툰 동당거림이 어느 날부터 제법 그럴싸한 멜로디를 만들어 내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같이 흥얼거리게 된 시간들.
손에 익은 멜로디를 연주할 때는 집안에 있는 악기들 모두 가지고 나와 합주를 신청하곤 했지요.
리코더, 오카리나, 칼림바, 멜로디언까지.
아이 피아노 반주를 기본으로 제각각 연주하는 따로따로 합주.
결국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엉망진창인 연주를 대신하던 그런 시간들, 1년이 지났습니다.
자타공인 '성실맨'인 아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
'바이엘' 끝나고 '체르니' 들어간다고 해서 하루 만에 실력이 겅중겅중 건너뛰는 건 아닐 텐데 아이가 이토록 기다리는 건, 아이의 노력과 성장을 축하받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별 건 아닙니다. 그저 아이가 좋아하는 작은 초코케이크 하나 놓아두고,
"우와, 1년이나 꾸준히 다녔어. 대단한데!"
"좋아하는 피아노 곡이 또 생겼다고? 얼른 듣고 싶다."
"엄마는 별이가 피아노 연주하는 걸 들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져. 올라오던 화가 '쑥' 가라앉지. 엄마의 '홧병통치약'이야."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체르니'를 경험하게 되는 별이야, 앞으로 가족들에게도 체르니는 어떤지 많이 알려줘."
같은 말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난무하는 그런 작은 축하의 시간입니다.
아이 스스로 1년간의 노력을 되돌아보고, 가족들에게 그 시간을 인정받는 순간들.
마음 뿌듯하고 어깨 으쓱해지는 그 시간들을 아이는 사랑합니다.
집에 들어서는 아이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건, 그 시간 속에서 '사랑받는 사람. 노력하는 사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을 선물 받을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럼, 이제 초코케이크 사러 갑니다.
안녕, 바이엘.
반가워, 체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