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은 앞.
딩동!!
소리와 함께 집 안이 부산스러워집니다.
"엄마, 왔어요. 왔어요."
쌩하니 쫓아나가는 아이 뒤로 남편이 따라갑니다. 곧이어 커다란 아이스박스 두 개를, 남편은 들고 아이는 낑낑거리며 밀고 들어옵니다.
"엄마, 봐요. 여기 엄마 이름 엄청 크게 쓰여 있어요."
아이 말대로 하얀 아이스박스 위엔 까만 매직으로 크고 굵게 쓴 제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주인을 못 찾을 일 따위는 절대 없을 것 같은 커다란 세 글자 앞에서 코 끝이 찡해집니다.
저 이름에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저녁, 전화가 왔습니다.
"김치 보냈어. 조금만 보냈으니까 먹고 또 가져가."
김장하셨다고, 김치를 보냈다는 엄마의 전화였습니다. 그 말에 평소 같으면 "우와, 엄마 김치!"를 먼저 외쳤을 텐데 타박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무릎뼈에 금이 가서 한 달 내내 깁스했다가 깁스 풀고 물리치료 다닌 지 이제 일주일.
연세도 있으니 치료에 집중하면 좋을 텐데 그새를 못 참고 동동거렸을 엄마 모습이 선하게 떠올라 말이 툭 튀어나갑니다.
"아이 참, 김장하지 말라니까요. 그냥 사 먹거나 조금 해 먹으면 되는데 다리도 불편한데 왜 했어요."
내 타박을 짐작이라도 한 듯 엄마는,
"운동삼아 하는 거지. 그게 뭐 힘들어. 진짜 조금 했어." 내 말을 얼른 받아칩니다.
"김서방 좋아하는 배추김치, 우주 좋아하는 깍두기, 별이 좋아하는 백김치 조금 했어. 다 먹으면 또 말해라. 응?"
받아치고선 대답까지 종용합니다.
"마음이 허할 땐 잘 먹어야 해. 김서방이랑 우주랑 별이랑 잘 챙겨 먹여. 너도 잘 챙겨 먹고. 속이 든든하면 머리도 좀 가벼워진다. 너무 애끓지 말고. 괜찮을 거야. 그럼 괜찮고 말고. 다 지나간다. 괜찮아."
내게 하는 말인지, 엄마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담담하게 시작했던 말은 급하게 마무리되며 전화가 끊겼습니다.
그 다급함 뒤에 숨은, 엄마의 마음이 귓가에 달라붙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 못 가고 있는 우주 걱정, 그런 우주 보며 속 끓이는 딸내미 걱정. 무던하지만 속 깊은 사위 걱정...'
그 걱정들을 꼭꼭 버무려 '괜찮아' 주문을 갈아 넣으며 만들었을 김치.
끊어진 전화를 붙들고 서 있다가,
<잘 먹을게요. 엄마 김치가 최고야.> 문자를 보냅니다.
<응. 사랑한다. 딸.> 돌아온 답 문자에 또 울컥합니다.
'내가 우주를 보며 아픈 것처럼 엄마도 나를 보며 아프구나.'
죄송하고 감사하고, 든든한 마음.
그 마음으로 기다린 김치가 도착했습니다.
이미 저녁을 먹은 뒤지만 참을 수 없다며 남편과 우주는 라면을 또 끓입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배추김치, 우주가 좋아하는 깍두기, 별이가 좋아하는 백김치.
종류별로 꺼내놓고 연신 맛나다며 후루룩 쩝쩝 거리는 삼부자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냅니다.
<엄마 마음을 먹는 중. 맛나다고 난리 났음.>
내 문자에 엄마가 보낸 답문자는, 엉덩이를 흔들며 춤추고 있습니다.
순간 피식 터진 웃음은 엄마가 내게 준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