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역 3번 출구로 나옵니다. 한강 들어가는 입구에 따릉이 대여소가 있습니다. 예전엔 거치대 번호에 따라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복잡했던거같은데 요즘엔 QR인식 한번이면 됩니다. 자전거를 끌고 경의중앙선 역사 밑 터널을 통과하면 가려져있던 한강의 야경이 탁 트입니다. 동호대교가 주황빛으로 빛납니다. 한강표면에는 교량 아래쪽 군청색 조명이 물결과 함께 흔들립니다. 전 항상 오른쪽으로 향합니다.
페달을 밟고 바람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공기가 멈춰있어도 공기속을 빠르게 지르며 흐름을 느낍니다. 바람이 없어도 바람인줄 압니다. 한강의 공기에는 이끼 냄새가 숨어있습니다. 어디에 이끼가 있는지는 몰라도 저는 그 습기찬 냄새를 이끼 냄새라고 인식합니다. 도시 속에 살다보면 잊혀지는 감각이 깨어납니다. 자연의 냄새가 제 생명력을 건드는 듯 합니다. 해방감이 느껴집니다.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려던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신나서 빠르게 페달을 밟게됩니다. 어김없습니다. 나아가다보면 어느새 잠수교에 다다릅니다.
잠수교는 무지개분수로 유명합니다. 무지개분수를 제대로 즐기려면 잠수교 위보다는 잠수교를 건너 광장에 앉아 구경하는 편이 낫습니다. 하지만 반포한강공원쪽 광장은 구경하는 사람들이 넘쳐나 이쪽으론 잘 가지 않는 편입니다. 잠수교를 건너지 않고 아주 조금 더 직진하면 사람 없는 흙밭이 나옵니다. 자전거도로에선 거리가 있어 자전거를 세워두고 조금 더 들어가야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여유롭습니다.
유부초밥과 방울토마토로 싼 도시락을 챙겨 이 흙밭 앞에 내려 무지개분수를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어쩐일인지 무지개분수는 가동되지 않았습니다. 여기가 무지개 분수가 잘보이는, 사람들은 모르는 명당이라며 의기양양했던 전 머쓱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구경거리 하나 없이 도시락만 까먹고는 자전거만 달려댔습니다. 이게 뭐야!! 웃음 나는 허무함까지 추억이었습니다. 이촌으로 페달을 밟으며 추억을 가로지릅니다.
이촌 한강공원을 지나면 사람이 많든 적든 도로가 고요합니다. 갈대가 펼쳐진 직선도로가 나옵니다. 이 도로는 밤에 지날 때가 더 많았는데도 이 곳을 달릴때면 노을지던 풍경이 떠오릅니다. 노을지는 갈대들 사이 벤치에 과거의 제가 앉아있습니다. 그때도 자전거는 옆에 세워두었습니다. 수양버들의 늘어진 잎들이 바람에 쏴아쏴아-흔들립니다. 한참이나 혼자인듯한 감각으로 기억과 생각들을 가로지릅니다.
그날의 공기마다 비슷한 온도대의 기억이 녹아있습니다. 기억을 되씹고 기분좋게 소화합니다. 예전에 했던 고민들, 답답함에 질주하던 감각들, 관계가 엉켰을 때 실마리를 풀어가던 시도들을 "지나갑니다!" 소리에 옆으로 비키곤 현실로 돌아옵니다. 국회의사당이 보일때면 그제서야 따릉이 대여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궁금해집니다.
상쾌합니다! 모든 기억과 생각들을 국회의사당 앞에쯤에 내려놓습니다. 이후론 오로지 속도만을 즐깁니다. 시간 안에 반납해야한다는 마음에 돌아가는 길은 더 빠릅니다. 달은 선명하고, 밤이 어둡지만 강이 밝습니다. 한강의 공기에는 이끼냄새뿐 아니라 거리마다 놓고온 생각과 고민과 추억과 기억이 숨어있습니다. 일상 속에 살다보면 잊혀지는 기억을 깨우고 싶을 때 한강을 찾습니다. 그 거리를 모두 지나며 공기 속에 숨어있는 기억을 꺼내 맡으려면 자전거를 타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