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믿는다
이 문장을 보았을 때 ①누군가(의 가능성)를 믿는다 ②누군가(의 진심)를 믿는다 둘 중 어떤 의미가 먼저 떠오르는가. 이 질문을 여럿에게 물었다. 여기서 여럿은 스무명 이상을 말한다. 결과는 엇비슷하게 갈렸다. 다른 의미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같은 문장이어도 받아들이는 의미가 이렇게나 다르다. 이 글은 오롯이 나의 관점으로 쓰여진 글임을 미리 밝힌다.
말로 꺼내지는 믿음
"난 널 믿어"
말로 꺼내어지는 믿음은 누군가에게 건네는 위로와 응원이다.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는다. 누군가가 결국은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믿음이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말에 담는다.
최근 이러한 믿음을 꺼낸 건 동생과 함께 그네를 탈 때였다. 동생과의 전통이다. 누구 한 명이 울적해하거나 답답해할 때 집 앞 놀이터에서 그네를 탄다. 그네를 타며 나지막이 요즘의 생각과 고민을 털어놓는다. 최근 동생은 대학원 준비로 기약 없는 답답함을 견디는 중이다. 동생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하지만 무너지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믿음을 건넨다. "원래 터널 속에 있으면 바깥을 믿기 어려워. 못 나올 거 같잖아. 근데 난 널 봐왔잖아. 그래서 알아. 넌 할 수 있어. 난 널 믿어"
제3자 눈엔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나 대처 방식이 빛나는 자원임이 명확하다. 하지만 당사자에겐 이미 그것들이 익숙하고 당연해서 자신의 자원인 줄도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굳이 굳이 꺼내어 보여준다.
속에서 울리는 믿음
'난 널 믿어'
속에서 울려 퍼지는 믿음은 나에게 건네지는 든든함이다. 누군가가 내 편임을 믿는다. 누군가가 나에게 가지는 진심을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문장으로 존재하기보다 든든함이라는 느낌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쉽사리 밖으로 꺼내어지지 않고 뭉클함과 고마움으로 어렴풋이 믿음의 존재를 확인한다.
속에서 믿음을 울리는 두 명의 친구가 있다. 기숙사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사람을 얘기하며 피어났던 우정이 벌써 10년이 다 되었다. 그땐 그게 우리끼리의 비밀이었다. 긴 시간 동안 심신의 민낯을 한꺼풀씩 공개했음에도 떠나지 않는 것이 믿음의 근거일까? 모르겠다. 연락이 몇 달간 끊어질 때도 만남 횟수가 일 년에 손을 꼽을 때에도 마음 한켠엔 내가 무너져도 내 편이 있다는 든든함이 있다. 어떤 모습의 나여도 된다는 용기를 준다. 믿음은 꽁꽁 숨어있다가 내가 힘들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준다.
말로 꺼내어지는 순간 나를 배반해서는 안된다는 강요처럼 들릴 수 있다. 그래서 이 믿음은 속으로만 간직한다.
나는 과연 누군가의 믿음이던가. 글을 쓰는 내내 일상에서 주고받지 않은 생소한 단어를 곱씹으며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도, 누군가의 진심을 믿는다는 것도 어쩌면 용기를 주고받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말로 꺼내지는 믿음은 용기를 주고, 속에서 울리는 믿음에선 용기를 받는다. 그렇다면 내가 나를 믿는 순간, 나는 나와 용기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나는 나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용기를 받을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나의 믿음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