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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Mar 21. 2022

바람 잘 날 ‘세상’에 가지가지 하는 ‘몸’

“여기가 ‘절’인감?” “너의 ‘잣’인감?”


한때 유행했던 ‘감’ 시리즈다(세대 들통). 온몸을 기어다니던 ‘저린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신감’이 들어찼다. 내겐 개그가 아닌 눈물겨운 명언이다. 자신감은 호기심을 부르고 미지의 세계에 얼굴도 들이밀게 했다. 아파서 간 휘트니스센터, 근력운동을 하다가 GX 줌바댄스를 접하고는 국제 인증 줌바(JIN 베이직) 과정도 수료하게 되었다. 땅바닥 말고 공중은 또 어떤가 싶어 폴댄스에 발을 들였다. 폴에서 올라가는 동작인 ‘클라임’을 하다 클라이밍도, 몸을 뒤집고 늘리는 게 비슷한 플라잉요가도 하게 되었다.


어느 운동이든 코어 힘이 관건이고 오래 버티는 힘, 바른 자세가 필요했다. 비단 운동만의 일도 아니지만. 동작마다 어떻게 작용하고 몸에 뭐가 좋은지, 호기심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또 금방 지쳐 나가떨어지니 눈에 보이는 근육이 민망하기 짝이 없다. 이른바 겉과 속이 다른 여자. 하여 현재는 필라테스 지도자 과정을 밟는 중이다. 누군가의 운동 질문으로 원리를 쫓다보니 어느새 자격증들이 내 손에 들렸다. 호기심과 호기심의 결합상품이랄까. 마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가 된 셈.  


운동은 내게 시간관리법을 알려줬다. 이효리의 ‘져스트 텐미닛’, 김연자의 ‘십분 내로’ 노래가 히트 친 만큼 내겐 ‘삶을 바꾸는 10분’이었다. 성경쓰기, 필사, 낭독, 독서, 글쓰기, 스트레칭, 일기+습관 노트... 매일 10분이 모여 나를 만들었다. 3년을 했으니 적어도 한 종목당 10,950분이 쌓인 셈. 183시간, 주5일 하루8시간 일을 한다치면 한 달을 근무한 시간이다. 변화의 체감도로는 10분의 총합이 아닌 10분의 제곱근은 된다. 말이 10분이지 독서나 글을 10분만 땡 하고 손 놓기는 더 힘들다. 점프 날을 줄이기 위한 최소기준이다. 스마트폰 집중모드 앱에서 10분을 쏠쏠히 썼다. 운동도 10개만 하자, 에서 하나 더, 가 현재를 낳았다. 나 자신도 깜짝 놀랄 변화 공식이다.         


운동으로 찍은 점과 점의 연결로 선(線)을 이루었다. 선(善)이 고운 여자가 된 것 같다. 선녀와 나무꾼도 아닌 선녀와 운동꾼. 이젠 더 이상 내 몸을, 나 자신을 ‘나무’라지 않는다. 앞으로도 어떤 점을 잇느냐에 따라 선은 달라질 테고 점의 선택은 내 몸, 내 몫이다. ‘선’을 넘고 또 넘지 않으려 한다. 넘어야 할 한계선과 넘지 말아야 할 절제선, 그 사이에서 ‘점선 따라 이으시오’를 풀고자 한다. 풀이과정이 인생이고 지금, 여기에서 그게 최선이다.


자존감에 휘발성이 높은 사람인지라 나만의 포상 수여식을 한다. ‘매순간’에는 ‘지금의 몰입왕’, ‘매일’에는 ‘오늘의 감사왕’, ‘매월’에는 ‘이달의 도전왕’이 있다. 일을 마음껏 저지르고 수습할 수 있는 체계다. '나'로서의 1인기업을 5년째 운영중이다. 재미 용기 책임, 이란 핵심가치에 따라 매순간 ‘점’을 찍고, 우선순위에 따라 오늘의 '점'을 배치해 매월 매년의 ‘선’이 되었다. 선은 '길'이고 '삶'이었다.


실제로 길 위에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출퇴근 걷는 시간, 왕복 50분. 생활스포츠, 플라잉요가, 폴댄스 지도사의 시험 공부가 이루어진 곳이다. 교재를 녹음해 귀로 듣고 입으로 중얼대며 동작을 연상해 필기와 구술, 실기시험에 대비했다. 차장 승진시험 준비할 때 써먹었던 방법이다. 하나 더 보태자면 스포츠지도사 구술, 실기시험을 앞두고 갑작스레 부장 승진대비 역량평가 대상자가 되었는데 그 시험도 합격했다. 대한체육회 국가고시는 1년에 1번, 회사 시험은 1년에 2번이 기회이니 전자는 3개월, 후자는 3일 공부했다. 그 길이 그 길이고 원리는 다 통했다. 길이 답이고 발이 답이다. 답답할 땐 발길 따라.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2002년 대통령 후보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나의 입사 연도이기도 하다. 살림살이는 결국 시간이었다. '하루' 중 회사생활을 뺀 나머지 시간이 내가 쓸 살림이다. 우선순위에 따라 이리저리 메꾸는 것. 없는 살림 쪼개 쓰던 어버이 세대처럼 없는 시간 쪼개 쓰는 게 진정한 살림꾼이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게 물가라고, 살림살이 어렵다고들 한다. 20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건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몸과 시간이다. 운동은 시간이 남아돌아 하는 게 아니다. 운동을 하면 시간이 남는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데 운동을 하면서부터 음식을 오감(五感)으로 먹게 되었다. 눈과 코로 시식 하고 음식 재료마다의 높낮음과 결을 느낀다. 재료 자체의 본질과 조화의 맛을 느낀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내 몸 상태에 따라 오미(五味)가 달라진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몸의 반응이 다르다. 결국 맛 없는 음식이 없고 내 입에 달지 않은 게 없다. 뱉을 일이 없다. 세상을 느끼는 맛도, 가 닿는 시선도, 꽂히는 자연 음색은 물론 풍기는 기억 향기까지. 운동세포가 감각세포를 들쑤셔 포유류에서 ‘감각류’가 되었다.


감각 더듬이로 새로운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한 지붕 아래 사는 아버지는 홈트와 걷기, 어머니는 근력운동과 에어로빅, 대딩 질녀와 고딩 아들은 클라이밍과 필라테스로 세상 맛을 느낀다. 난 회사에서 사내강사다. 업무로서가 아닌 운동으로. 몸을 바꾸고 싶은 직원들이 점심시간 쪼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매트 위에 서서 말똥말똥 나를 바라본다. 그 눈이 세상 아름답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식구들, 함께 사는 가족,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샐 듯하다. 몸과 마음이 아픈 곳, 아름다워지는 곳에 가지를 뻗으리라.


가지가지 하는 몸인데 분량 제한 있으니 이쯤에서 가지치기 한다. 뻗을 자리 보고 마저 펼치자. '철인 3종' 경기, 난 '라인 3종' 경기를 펼친다. '폴, 플, 필'로 외유내강(外强內柔) 바디 라인 한 판!  


*'ㅍ' 3종 경기: 폴댄스, 플라잉요가, 필라테스

*'ㅍ' 5종 경기: 3종 + 푸시업 + 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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