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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Mar 21. 2022

스텝 바이 스텝으로 즈려밟다

모 아니면 도. 나였다. ‘하는 만큼만' 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고 ‘온전히'가 아닐 바엔 말아버리는 식이었다. 본인이 개나 걸도 아닌 ‘모’만 바라봐 놓고선 일이 잘 안 풀리면 ‘도’가 나온 양 제 풀에 꺾였다. 목표는 절대값도 아닌 '남'이 되기 일쑤. 출근길 걸음마저 옆 레이스에 뒤처지면 내 백팩은 번호표로 바뀌고 물 속 오리발처럼 엔진을 올려댔다. 그러던 내가, 레이스 주자에서 벗어나 내 호흡에 몸을 맡기게 되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균형 못 잡고 몸 비틀댈 때, 근력이 부실해 동작마다 바들바들 떨 때,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 헥헥 댈 때, 트레이닝 운동을 시작했다. ‘스쿼트’란 외계어도 배우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모를 몸에 근육 하나, 근육 둘... 마흔 한 살, 마흔 두 살... 소복소복 쌓이고 쌓여 어느새 내 손엔 자격증이 들렸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체육회가 주관인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보디빌딩 자격을 획득했다. 운동에 대한 역학, 생리학, 심리학, 윤리학과 사회학을 알게 되고 국가지침에 따른 80개 동작을 가르칠 정도로 몸이 기억한다는 것이 증명서보다 기쁜 일이었다.


멋모르고 폴댄스에 발을 담갔다. 퇴근길에 호기심이 부추긴 1일 체험. 출근길 아닌 퇴근길이라 그런지 귀가 얇을 대로 얇아져 무쇠팔 힘 하나 믿고 단박에 회원님이 되었다. 막상 수강권 끊고 동작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데 오호라, 잘못된 길로 내비게이션에 로밍이 걸렸다. 가뜩이나 ‘이건 아니지’란 멜로디가 마음에서 울려 퍼지는데 의사고 트레이너고 가족이고 마주칠 때마다 “아서라” 난리다. 봉에 매달리고, 손발 떼고, 뒤집고...하루, 이틀... 6개월, 1년, 1년반... 2급 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코로나19로 심사위원 대면심사를 3분짜리 작품영상(고정폴+스핀폴)으로 대체해 합격했다. 소쩍새가 소쩍소쩍 울듯이 몸 여기저기가 삐끗삐끗 했다. 팔다리는 피멍으로 도배, 오그라든 가슴과 다리는 집 매트 위에서 다리미질을 해댔다. 신체구조상 안 되는 동작도 있지만 ‘안 될 것’이라 설정한 가설이 문제지 나이나 질병에 발목 잡힐 일은 아니었다. ‘한걸음’과 ‘꾸준히’가 기술력을 담보했다. 20대가 나보다 더 잘하는 건 나이 때문이 아니라 연습시간이 더 어르신인 걸로.


휘트니스센터 안에 플라잉요가란 게 있었다. 폴댄스처럼 공중에 매달려주면 되겠거니, 하여 G.X 플라잉요가 수업에 참여했다. 여러 명 틈 속에 껴 어제까지 배운 사람처럼 해야 하니 마치 모방 게임 같았다. 맨 뒷자리에서 눈치껏 따라하다 중간에 막히면 조용히 내려와 다른 이들 발만 바라봤다. 바닥에 언제 내려오나. 조용히 내려오면 다행이지, 발목이 해먹에 묶여 혼자 풀지도 못할 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에서 기다려야 했다. 날 구출해줄 손을. 제일 못하는 주제에 강사도 안 보이는 구석에서 하니 이건 플라잉이 아닌 매트 요가였다. 맨 앞자리로 진출! 하루 한 동작 성공을 목표로 회사 사정으로는 수업을 빠질지언정 내 사정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플라잉요가 모방 게임이 익숙해질 무렵 기본개념과 동작을 배우고자 이지애플라잉요가라는 전문센터에서 과제 제출, 필기시험, 약 80개 동작의 준비된 티칭과 현장 돌발 티칭이란 검정시험을 거쳐 강사 자격증을 땄다.


브래드 스털버그의 <피크 퍼포먼스>에는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를 비롯해 운동선수, 화가,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가 나온다. 최고의 성과를 판가름하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얼마나 오랫동안 의식적으로 연습하는가’란 사실을 밝혀냈다.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 고도의 집중력으로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의 운동도 ‘얼마나’가 아닌 ‘어떻게’가 성과를 좌우했다. 다름과 차이는 의식의 개입 여부였다. 시작은 다르더라도 의식을 차곡차곡 쌓다보면 등산객이 내딛은 발처럼 언젠가는 거대한 산에 점으로 보이는 내가 서 있다.


아는 것이 힘.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움직인다. 자격증이라는 메달 획득보다 더 값어치 있는 건 아는 만큼 집중할 수 있는 힘이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왜 그러한지, 뭐가 좋은지, 어떻게 조절할지 등 의식을 양념 치는 게 중요하다. 어느 운동이든 선생님 말씀에 가장 늦게 반응하고 가장 많이 틀린 사람은 나였다. 자격증을 준비하는 그들보다 스무 살이나 더 많고 이해력도 그저 그렇게 태어난 데다 요령 없이 무턱대고 움직이는 판에 어느 그룹에서건 느림보를 자처했다.


“발이 네 개인 짐승에게는 날개가 없다. 새는 날개가 달린 대신 발이 두 개요, 발가락은 세 개다. 소는 윗니가 없다. 토끼는 앞발이 시원찮다. 발 네 개에 날개까지 달리고, 뿔에다 윗니까지 갖춘 동물은 세상에 없다(정민, 김영사, <일침> 104p).”


내겐 균형 있는 척추 대신 꾸준히 반복하는 힘이 있다. 옆 사람을 보면 가랑이 찢어질 만큼의 실력 차가 있었지만 나만의 호흡으로 모두가 나를 앞질러 전속질주 하더라도 언제가 닿을 결승선을 향해 오늘이고 내일이고 그저 딱 ‘나’만큼만 달렸다.


한 발 한 발 내 수준껏 형편껏 걸으면 어찌됐건 출발점에선 멀어진다. 보폭이 넓진 않아도 발자국은 남는다. 걸어온 발자취는 한데 모여 '기회' 교차로를 만난다. 실제로 걸음걸이도 바뀌었다. 몸 구석구석 근육이 모자랄 땐 팔자걸음이 심했다. 주기적인 깔창 교체가 일어날 정도로. 8자에 3을 더한 11자 걸음이 되었다. 젊어서도 못해본 모델 스텝을 나이 들어 밟는다.


지금 쓰는 이 글도 마음 같아선 하루 한 꼭지씩 뚝딱뚝딱 찍어내면 좋으련만, 상황은 꼭 시샘하는 법이니 형편 닿는 대로 한 문장, 한 문단, 근육 하나, 운동신경 하나, 3년을 걷고 또 걸었다. 걷다보니 다시 쓰고 고쳐 쓰는 기회도 만난다.


두세 계단 뛰면 가랑이도 찢어진다. 낮은 계단을 딛어야 다음 계단도 무리 없이 밟힌다. 단계를 건너뛰는 것보다 단계별로 걷는 게 더 빠를 수 있다. 뛰어난 기량보단 부상 없이 가는 길, 실수 없이 가는 길이 지름길일 수 있다. 되돌아가는 일만 줄여도 삶이 더 단순하고 탁월할 수 있다.


글도 마찬가지. 뭐라도 써야 고치던지, 뭐라도 있어야 추가하던지 한다. 썼다 지우는 편지처럼 운동도 삶도 단계가 있는 법. 핑계 없는 무덤 없고 단계 없는 무덤 없다. 내 무덤은 파지 않도록.


유키즈온더블락의 <스텝 바이 스텝> 노래 가사다.

I really think its just a matter of time

(우리 사이가 가까워지는 건 단순히 시간문제라고 생각해)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 잠자코 앉아 흘려보낸 시간이 아닌 공들인 시간을 두고 하는 말일 수 있다. 세상 못할 일은 없다. 시간 들이기가 귀찮아 하지 않는 것일 뿐.


스텝 바이 스텝~

오 베이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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