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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Mar 21. 2022

역학, 악력까지 끌어올리는 클라이밍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내게 맞는지, 매우 중요한 자가진단이다. 자물쇠 걸린 삶의 비밀번호다. 남에게는 약인데 나에게는 독인 것도 찾아준다. 사람마다 신체구조가 다르고 신경세포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나’와 화학 반응하는 뭔가를 발견하는 건 보물찾기만큼 기쁜 일이다. 내가 원하는 욕구를 찾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제목에 건 클라이밍을 바로 말할 것이지 뭐그리 전주곡이 긴가, 할 것이다. 지나가는 비에 목욕까지 한 것 마냥 ‘클라이밍’은 우연찮게 패키지로 흥분시켰다. 패키지라 함은, 나를 포함한 대딩 질녀와 고2 아들이다(시작은 고2, 중3, 여전히 40대).


질녀는 운동을 벌레 보듯 하는 아이였다. 외식한다면 먹는 일보다 밖에 나가는 일이 더 큰 사안일정도로. 우물을 깊게 파기보단 넓고 얕은 물이 좋은, 싫증을 잘 느끼는 성향이다. 분석도구지에서도 예술성으로 드레싱 한 ‘강한 우뇌형’이다. 질녀를 정기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건 나무를 옮겨 심는 일과도 같았다. ‘절친’ 찬스를 이용해 복싱을 끊어주니 친구 없으면 가질 않아 실패. 집구석보다 쾌적한 목욕탕과 엎어지면 코 닿을 휘트스센터로 인도했으나 런닝머신 몇 번 딛고는 실패. 덜렁거리는 팔뚝살이 고민이라 해 기회는 이때다 싶어 홈트를 시도했으나 역시나 실패였다. 코로나19 초반, 헐렁하기 그지없던 시기에 클라이밍 일일체험을 했다. 낚시밥에 걸려 들었다. 질녀 인생에 운동 입학 드디어 성공!


클라이밍은 실내암벽이라고도 불린다. 벽에는 ‘홀드’라는 돌이 박혀 있다. 크기와 모양으로 난도가 판가름 난다. 손가락으로 가뿐히 잡게끔 홈이 파인 것, 손가락과 맞장뜨는 평평한 것, 욕 나올 정도로 얇고 작은 것 등 보기에만 예쁜, 알록달록 벽이 된다. 홀드를 가리키는 라벨 색깔로 레벨을 구분한다. 지구력을 키울 땐 많은 홀드를 잡는다. 볼더링이라는 순발력을 요하는 벽면도 따로 있다. 경사진 벽은 코어와 하체, 등근육, 손가락 힘이 협동해야 한다. 숨도 차고 버텨야 하고 고소공포증도 몰려오는 이 운동에 걸려 들다니.


한발 한발 한손 한손 손끝 발끝으로 지탱하는 몸이 삼각형도 그렸다가 마름모로도 변신한다. 가다가 힘에 부칠 땐 팔 하나 떼서 손을 털기도 하고 후~ 심호흡도 한다. 벽면에서 조깅하는 느낌이다. 사지와 배의 균형이 관건이라 수학, 과학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에게 난 늘 밀린다. 선생님이 문제 내준 홀드를 어떻게 잡고 갈 것인지 이미지 기획을 하고 벽에 붙어야 하는데 난 벽부터 붙고 보니 힘과 호흡 조절에서 학부형 티가 난다. 아이들보다 운동은 내가 더 하는데 갈수록 간극은 더 벌어진다. 제갈량 같은 아이들과 장비 같은 어른이라.  


정상까지 가려면 에너지를 초반에 탕진해서는 안 된다. 여우가 나무에 매달린 포도를 따먹으려면 몸이 받쳐주지 않는 한 꾀가 필요하다. 클라이밍은 과학적 잔꾀까지 총동원해 몸을 조종한다. 학창시절에 배운 힘의 원리, 관성이니 가속도니 작용반작용이니 하는 법칙을 고스란히 팔다리에 녹여야 한다.


아이들의 두 손 두 발을 꽁꽁 묶던 컴퓨터도 클라이밍 앞에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클라이밍은 '운동'보단 순간 '이동'에 가깝다. 평일 학생 노릇, 직원 노릇 하느라 묶였던 소통도 해방된다. 우린 더 높이 더 오래 더 멀리 가는 방법을 논한다. 인생 클라이밍을 논하듯. 우리만의 소통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분까지 끌어오르게 하는 등 뒷편 너머의 소리.


내 발이 홀드에서 미끄덩할 땐 “아우~”하는 알토가, 내 키보다 높은 홀드에 손을 척 뻗을 땐 “이야~”하는 소프라노가 울려 퍼진다. 이어지는 화음소리, “할 수 있다! 다 왔다! 조금만 더!” 그 어떤 멜로디보다 심금을 울린다. 20대로 보이는 그들은 중년 아줌마인 나도 모자라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옥타브 넘나드는 음정으로 응원을 과소비한다.  


클라이밍은 몸이 무거우면 스파이더맨과 멀어진다. 가벼움을 택할 것인가, 힘을 더 키울 것인가. 단골 야식이던 불닭볶음면과 멀어진 질녀, 빵만 찾다 밀가루를 턱에 대줘도 안 먹는 아들, 주말에도 과식은 예외 없다는 나. 무언의 약속인 양 몸을 끌어올리는데 손이 괴로울 짓은 하지 않는다. 클라이밍이 우리 곁에 있는 한.


비우고 버리고 내려 놓아야 발 떼기가 수월하다. 악으로 버티는 건, 클라이밍만 하자. 기어오르는 힘은 원시시대에 짐승을 만나 도주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안전의 욕구와 함께. 본능에 충실한 움직임이 가장 좋은 운동이라 했다. 어쩌면 쇠붙이 무게를 들어올리는 것보다 내 몸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이런 근성으로 일도 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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