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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Jul 19. 2022

정장 벗어던지고 레깅스를 입는 이유

마흔이라 행복한, 40대 후반전에 몸의 유턴

“걷는 운동만 하시죠. 근력이든 허리를 꺾든 다 안 됩니다.”


신경차단술과 물리치료, 경락마사지로 30대를 연명했다. 하지정맥류 수술 2번 치르고 나니 이젠 의사가 동네만 슬슬 걸으란다. 요추(허리뼈)가 남들은 5개지만 들러붙은 간격을 봐서 4개려니 하고 살라 했다. 다리까지 뻗치는 통증이 정 심하면 걷는 것만 봐주겠다는 식이다. 가뜩이나 혀부터 입, 목, 위, 장까지 몇 십 년째 염증을 달고 사는데 뼈까지 골병드니 그야말로 골(뼈) 때린다.


10대부터 30대까지 별명이 종합병원이었다. 태어날 때만 반짝 멀쩡했던 것 같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 경제활동인구가 되면서 몸값은 두 세배로 껑충 뛰었다. 잘 나가는 몸 값이 아닌 신체 부품 나이로. 몸은 도저히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정신도 그 장단에 놀아나며 우울함이 극에 달했다. 마흔을 넘기며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헬스장 땅을 밟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심정으로 압축파일 같은 허리부터 공략했다. 몸 아래위로, 구석구석까지 근력운동을 확장시켜나갔다. 아픈 감각들은 점차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되면서 다른 운동은 물론 하는 일마다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운동으로 몸이 변하니 음식과 수면의 질도 달라졌다. 체력과 함께 인지력, 기억력, 집중력, 주의력도 특별한 약을 먹은 것 마냥 덩달아 올라갔다(남보다 아닌 전보다). 그로 인한 생산성으로 하루를 24시간보다 몇 시간을 더 얹어 받은듯했다.


그 기운으로 첫 책을 쓰게 되고 연이어 전 직원 월급이 달려있는 기관의 경영평가보고서도 쓰게 됐다. ‘평일’, ‘9A-6P’라는 근무시간을 무참히 깼던 정책지원 업무와 언론홍보 업무를 하면서 한 우물만 파던 성향도 과감히 깨졌다. 오히려 휴일과 퇴근 이후 삶이 보장되던 때는 골골대느라 해 놓은 것 하나 없이 가늘고 긴 세월을 보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신문 스크랩 업무, 실시간 울려대는 사업 부서와 기자 연락으로 한창 정신없을 때 사내 강사가 되었다. 업무 아닌 운동으로(직원들이 점심시간까지 일한다는 느낌이 없도록).  


'이가 없으면 잇몸'이란 전략으로 근력운동을 마스터 하니 그 외 운동에서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란 작전이 펼쳐졌다. 물러터지고 싫증을 금방 느끼는 내가, 나를 아프게 하는 운동에도 도전장을 슬슬 내밀고 있는게 아닌가.


뻔질나게 손바닥 살점이 너덜거린 클라이밍, 호흡곤란과 허벅지가 터질 듯한 줌바댄스, 피부가 까뒤집어지고 피멍이 든 플라잉 요가, 햄스트링, 손목, 등, 팔, 어깨 부상에 이어 갈비뼈 골절까지 맞은 폴댄스. 호기심 따라 기분 따라 흘러가다보니 어느새 그 분야의 전문가와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병으로 아프면 그렇게나 서러운데 운동으로 아픈 건 괜한 우쭐함이 든다. 나이 드는 건 그렇게나 서러운데 통증 없는 나이가 되니 그렇게나 자랑스럽다.


아픔을 넘어서니 그곳엔 몸의 자유가 있었다.

마흔을 넘어서니 헐렁한 정장에서 레깅스로 쏘다니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햄스트링 파열 이후 서서히 들러붙은 징조 사진_다쳤는데 자랑스러운 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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