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작은 것 하나를 해냈을 때, 되지 않던 게 될 때는 도파민과 엔돌핀을 고용량으로 때려 부은 느낌이다. 스트레칭이든 유산소든 그 어떤 운동이든 다 그렇다. 하다못해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무릎 구부리지 않고 햄스트링으로 주을 때도. 이생에서는 절대 만나볼 수 없는 자세인 비둘기가 되고, 고양이가 되고, 학이 되었을 땐 이거 뭔가 되겠다는 근거 있는 감(感)마저 왔다.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자극을 맛보면 슬슬 몸은 즐길 태세를 갖춘다. 내가 원하는 타깃에 제대로 접근하고 제대로된 원리만 적용한다면 노동이 아닌 운동으로 자리매김한다. 어디 운동뿐이랴.
지난 6년간 몸과 뇌가 좋아하는 짓을 했다. 내 성향상 내 상황상 거창할 것까진 없고 일상 자체에서 잘 움직이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 것. 매일 기록하며 몸의 반응을 살폈다. 내 몸은 어떤 상태를 좋아하고 힘들어 하는지. 몸, 건강, 삶, 습관, 부자 관련 책을 독파하고 강의를 들으며 내 몸을 교차 실험했다. ‘통증’은 '망각'을, ‘피로’는 '기억' 상실증이 되면서 내가 나에게 "당신 누구세요?" 할만큼 놀라운 변화에 이르렀다.
어느 순간 피부도 좋아지고 어느 순간 머리털도 덜 빠졌다. 어느 순간 몸이 일자로 늘어지면서 시선도 정면을 향했다. 어느 순간 산삼 먹은 활력에 소름 끼치도록 지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몰입력과 의사결정력 지수가 상승하면서 호기심을 빌미로 새로운 환경에 ‘몸’이 '마음'을 몰아넣고 있었다. 틈만 나면 (몸)집으로 끌고 들어오던 우울도, 이젠 우울할 틈이 없다.
형태로서가 아닌 제 기능을 다하는 몸이 되고서 삶의 주체, 독립된 개체가 된 듯하다. 고통으로부터, 상처로부터, 외모지상주의로부터,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신경끄기 기술'이 발휘되었다. 몸 밖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굴하지 않고 몸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 경이로움에, 함부로 대한 지난 날에 때론 눈물이 난다. 감사로 하루를 채우는 이유다.
20-30대 별명은 애늙은이였다. 정신이 어른스럽다기보다는 생겨먹은 게 그랬다. 20대에는 화장을 쥐 잡아 먹듯이 떡칠했다. 지금은 로션만 바른다. 20대에는 나풀대는 정장을 갖춰 입었다. 지금은 티셔츠 한 장 걸친다. 20대에는 감정을 꺼내지 못했다. 지금은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다. 30대에 골감소증과 60대의 형체를 띤 척추관협착증을 진단받았다. 지금은 골밀도와 근육양이 안정궤도를 넘어섰다. 40대 초반에 갱년기가 왔다. 45세를 넘기고 이제 와서 20대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어제 출장 회의에서도). 최근에 받은 건강검진에서는 심혈관계 나이가 39세란다. 8년 연하를 데리고 사는 셈이니.
20대에는 해외여행에, 자기 차도 몰고 다니고, 명품이란 것도 키우며, 대학원까지 다니는 친구들을 의식했는지 나이 밝히기가 부끄러웠다.월급의 75%를 적금과 빚에 때려 붓고 5천원짜리 천 쪼가리에 젖 물리며 애 키우고 회사 다니는 티가 날까봐. 똑같이 5천원짜리 레깅스에 신발에 티인데 지금은 당당히 말한다. 난 용띠고 5천원짜리 득템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