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은 몸이고 정신이고 마음이고 간에 잿빛인데 겉으로는 열심히 하는 척, 일 잘하는 척, 강한 척을 한 게 문제라면 문제지 누굴 원망하고 무엇을 탓하랴. 돈, 승진, 명예라는 욕심 품고 괜찮은 척 했던 내 안의 ‘3척동자’가 문제지. 내가 그럼 그렇지.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나 자신이 과녁판이 되어 화살 역시 열심히 쏘아댔다. 거울 속 나와 눈도 마주치기가 싫었다. 자신을 보호하는 면역세포인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나기 일보직전. 제 살 깎아먹는 자가면역세포의 암 덩어리를 끌어안고 사는 듯했다. 평생 이렇게 살판인데 100세시대고 자시고 수명이 절반이었으면, 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어딘가. 이제 지하실 집에 살지 않는 것도 어딘가, 집 밖의 공용 화장실을 쓰지 않는 것도 어딘가,.. 의지력을 쥐어짰다. ‘감사’를 종용하는 현실이 싫으면서도 할 줄 아는 건 순종 밖에 없었다, 겉과 속이 다른 괴리감이 세상에는 나 혼자라는 독도병을 만들었다. 이 병조차 티 안 나게 앓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 활달하고 긍정적이었으니 스쳐 지나는 감기처럼 앓으면 그뿐이었다.
몸과 마음에 잡념이 잔뜩 들어찬 채 고개 돌려 멍하니 식구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틱장애에 비만, 대인기피, 질녀는 긴장형 만성 두통에 기형종으로 응급수술을, 어머니는 심장발작으로 응급 전기 충격을, 아버지는 술로 쓰러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어쩌면 속이 터질듯 한 게 얼굴로, 심장으로, 난소로 표현된 건 아닌지. 속이 타들어 가는 걸 알콜에게 털어놓은 건 아닌지. 우린 모두 표현에 서투른, 참는 게 습관이 된, 괜찮은 척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을지 모른다. 곪은 게 터져버린 것일 수도.
*기형종: 내배엽, 중배엽, 외배엽에서 유래한 조직이 혼합되어 생긴, 구조가 복잡한 혼합 종양(네이버 어학사전).
내 몸이 이렇다고 식구들까지 평생 아프게 살 순 없는 노릇이다. 내가 벌지 않으면 다들 제대로 먹지도 못할 텐데 일으키려면 내가 먼저 일어설 수밖에. 비행기 사고가 났을 때 산소마스크도 아이보다 엄마를 먼저 씌우지 않던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가 내 가족 건드렸냐며 주먹 불끈 쥐는 영화 속 주인공도 되었다가 내 새끼 건드려 으르렁대는 동물의 세계 주인공도 되었다가 조급증과 불안증이 몰려왔다. 세상이라는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나라는 경고창이다. 내가 기운 차리지 않으면 도미노가 될 판이다. 나부터 일어서고 보자. 그 생각이 내 몸을 움직였다.
© Jiji Mu Ng, 출처 OG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