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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Jan 05. 2023

나를 일으켜 세운 척추세움근(기립근)

*신용어 '척추세움근'은 많이 알려진 구용어 '척추기립근'으로 표기



집안을 일으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리 숙여 올려둔 건 주루룩 쏟아질 것 같던 등판이었다. 어깨까지 전염돼 덩달아 앞으로 쏠렸다. 생긴 건 그래도 맛이 좋은 음식처럼 아프지만 않아도 다행이었다. 헬스로 급한 불은 일단락되었다. 슬슬 스포츠 좀 즐기려니 하는 족족 "기립근에 힘!"을 외친다. 대충 '등' 한복판 어딘가려니 했는데...


머릿속에 근육 삽화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근육 키우는 걸 떠나 일상에서의 힘과 자세, 즐기는 자체가 달랐다.


척추기립근.


이름 그대로 척추를 일으켜 세우는 근육인데 등짝 스매싱 하는 곳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엉치뼈(천골)부터 뒤통수뼈까지 뻗쳤다. 척추를 감당하기가 근육 하나로는 부족했는지 세 줄기로 가지가 쭉쭉 뻗었다. 척추의 최측근인 '가시근', 그 옆으로 '가장긴근', 제일 바깥쪽의 '엉덩갈비근'이 있다.  근육도 337 박수를 치나. 이 세 근육은 또 3개(목, 등, 허리)의 근육으로 가지치기 한다.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러시아 인형 마트로시카 같다. 노래 가사처럼 볼수록 아름답고 신비롭구나.   




척추기립근은 주로 등을 뒤로 제치거나 상체를 옆으로 구부릴 때 자극된다. 엉덩이부터 뒤통수까지 고속도로로 이어진 걸 보면 골반을 중립으로 바로 세울 때나 팔다리를 뻗을 때 얼마나 조연으로 버텨주었는지도 실감한다.


개구리 올챙이 적은 뭐가 됐든 간간히 곱씹을 필요가 있다. 현재가 더 나으면 기고만장, 못하면 뜨끔만장이니. 등이 말리고 맥아리가 없을 땐 두 손이 빈털털이였어도 상체 들어올리기가 영 힘들었다. 등부터 머리끝의 방사통이 없었다면 척추기립근과는 남남이었을지 모른다.


부엌보다 거실에서 간장통 집어 드는 일이 더 잦아졌다.  빨래할 때보다 세제통을 더 많이 잡아 올렸다. 땅에 떨어진 물건은 팔이 아닌 척추기립근으로 주웠다. 상체가 제 구실 하니 벋정다리로 햄스트링도 자극하며 제 역할 했다. 신개념 배꼽 인사로 인사성도 발라진 듯하다(스티프 레그 익스텐전).




우거진 숲처럼 촘촘히 얼기설기 된 근육을 보니, 주변도 제대로 못 보고 살 때 근육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속을 들여다봐야 서로 같은 곳도 바라볼 수 있다. 상대가 말한 기립근과 내가 그린 기립근이 달랐으니. 그러면서 왜 안 되느냐는 탓만 했으니. 오해는 말에서만 비롯되는 게 아니었다. 근육에서도 일어난다. 삶의 근육이 다른 사람끼리는 오죽이나.


역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몸 속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봐야 진정 내가 보인다. ‘존재감’이란 내가 뭘 더 해서 드러나는 게 아니다. 가진 것을 볼 줄 알 때 생기는 감각이다. 움직일 줄 알아서 좋은 게 아니라 몸 속에 존재하는 그 자체로 내가 좋다. 가슴이 활짝 열린 자세가 세로토닌 분비는 물론 자신감, 인내, 리더십 등등 좋다는 연구는 기립근 만큼이나 숱하게 늘어져 있다.  


우리는 왜 아파야 존재감을 느끼는 걸까. 눈에 뵈는 게 없도록 날 세워 주는, 거저 받은 기회를 발로 걷어찰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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