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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Jul 20. 2023

다 이유 있다


출근시간. 수원시청역에서 내린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좁은문 마냥 개찰구에는 줄이 늘어섰다. 카드 찍고 나가는 구멍 4개. 길고 짧은 걸 줄기차게 대어보는 줄. 기껏 줄 서서 카드를 내미려 마이턴을 외치던 찰나에 한 아주머니가 훅 들어가 찍고 나갔다. 멀찌감치서 엑셀을 마구 밟아 끼어들기 해 외곽고속도로로 빠져나간 느낌이랄까. 밉상의 뒷모습을 쫓았더니 반대편 전철을 타러 성급히 가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밴댕이 납시오.


등교시간. 아이 학교는 동네지만 회사는 1시간 소요라 아이보다 먼저 출근한다. 등교 모습에는 까망눈이라 목에 칼이 들어와도 유비무환 정신을 고수하는 엄마 눈에는 손주가 나무늘보다.  꾸물거림이 엄마 입을 근질근질하게 했나보다. 내 귀에 대고 답답함을 호소한다. 진로데이트 수업 강연 날, 아이 등교시간에 따라 나갔다. 학교 앞 신호등과 딱 맞아 떨어지는 시간이었다. 그럼 그렇지, 수학을 좋아하는 계산적 아들.  


출근 때마다 1층 로비에서 만나는 여성이 있다. 매일 전철역까지 허겁지겁 뛴다. 머리카락에 붙은 물방울 원심력까지 흘리면서. 1,2분 좀 일찍 나오지, 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5분 일찍 집을 나섰다. 1층 로비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만남을 결국 전철역 건널목에서 만났다. 결국 건널목 신호에서 그녀를 내가 기다리게 된 셈. 그럼 그렇지, 일찍 나와라 마라, 아이고 꼰대. 


정신간호학에서 '강박증'을 배울 때 보도블럭에 선을 밟지 않고 걷는 사람을 예로 들었다. 출근할 때 어떤 날은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안짱 걸음으로, 또 어떤 날은 새끼발가락에 힘주어 걷기도 한다. 내전근, 햄스트링, 중둔근을 번갈아 자극하기 위해서다. 보도블럭 그 사람 혹시...강박증이 아니고 운동할 시간이 하도 없어  금을 건너뛴 건 아닐까. 게 편 드는 가재인가. 


다 나름의 다 이유가 있다.

이 사실만 인지한다면 이해 못 할 일도, 왈가왈부 할 일도 없다. 상대의 말과 행동에는 수많은 이유가 녹아 있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도 없으려니...



© brigittetohm,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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