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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May 01. 2020

질병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 복근

- 습관 마스크팩이 부른 식스팩 -

식스팩이란 단어를 헬스장 드나들며 처음 들었다. 마흔 넘어 귀가 틔었다는 소리다. 식스팩 말을 들었어도 그림이 안 그려져 바람 따라 스쳐 지났을 수도 있다. 늘상 다루던 팩은 기껏해야 찜질팩이나 우유팩이니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연상되진 않았다. 운동을 ‘배밀이’라도 하는 게 어디냐는 식이라 식스팩을 염두 할 리는 만무했다. 배는 허리 보조자요, 시소게임을 일삼는 몸 받침대에 불과했다.     


식스팩은 고사하고 배에는 임신 때 발현한 유물이 있다. 몸에 얹혀진 22kg의 무게를 배가 짊어지면서 감당하지 못한 잔해다. 튼 살로 난도질당한 내 배를 보고 엄마는 “네가 할머니”라며 놀리곤 했다. 안쓰러워하기는커녕 자신이 더 젊다는 양 엄마 입가엔 미소 살이 텄다. 튼 살 머금은 나의 뱃살은 불도그를 연상케 했다. 개의 코와 배꼽만 달랐지, 양옆으로 흘러내린 살은 구도가 같았다. 나조차도 풍선 바람 빠진 배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배는 운동하기 전까지 햇빛 구경 한번 제대로 못했다. 배는 헐렁 티셔츠를 천막 삼아 은둔생활을 했다.  


운동 우선순위로 치면 배가 등에게 밀린다. 등과 배는 이웃사촌이라 등 운동을 하다보면 배 근육도 자극되기 때문이다. 38선을 사이에 둔 뼈아픈 현실처럼 등과 배는 ‘척추기립근’이라는 속근육을 사이에 두고 있다. 척추 환자이기도 하거니와 골반과 어깨가 틀어져 있어 배 운동은 교정 용도로 삼았다. 몸의 중심지인 뱃심(코어) 기르는 게 급선무였다. 백짓장도 맞들면 나으니 등과 한 배 탄 ‘배 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바디프로필 사진과 휴대폰 사진의 비교 체험



헬스장에서 처음 만난 후 지금까지 매일하는 복근운동이 있다.  ‘크런치’라는 건데 윗몸일으키기를 절반만 했다 생각하면 된다. 하늘 보고 누워 허리는 바닥에 붙인 채 상체를 들어 올린다. 언뜻 보면 체력장에서 깔짝대며 깨부리듯이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것 같다. 이 동작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최대한 상체를 올려 배에 통증이 느껴지면 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을 톡 건드리면 동그랗게 마는 ‘공벌레’처럼 상반신을 쥐어짜면 타들어가는 느낌이 온다(*디스크 환자나 운동 신입생은 둥글게 말지 말고, 허리 정렬을 유지해 준다).         


어떤 일로 마음이 쪼그라들었거나 과식으로 위장이 늘어졌을 때 이 동작으로 배를 인정사정없이 구긴다. 다리는 하늘 향해 90도로 꺾거나 쭉 뻗기도 한다. 등과 배를 올릴수록 나란히 뻗은 양 팔은 하늘을 더 찌른다. 손가락이 삿대질 모양이면 스트레스도 풀린다. ‘숫자보단 감각’을 부르짖는 감각예찬론자로서, 복근은 특히나 느림의 미학을 중시한다. 복근운동이 목적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난 몇 개 했느냐보다 뱃살 접어 몇 번 아팠느냐를 따진다. 소 등에 올라타 풍경을 둘러보듯이 그 순간을 음미한다.      


배에 힘이 붙어 자전거 타는 운동(바이시클 메뉴버)도 한다. 윗몸일으키기처럼 양 손을 귀 에 살짝 얹고 상체를 들어 올린 상태에서 좌우로 허리를 비트는 동작이다. 한 쪽 다리는 뻗고 다른 다리는 구부려 반대 편 팔꿈치와 만나면 된다. 상반신을 든 채로 배의 앞면(복직근)과 옆구리(외복사근)를 쥐어짜니 복부지방을 두 번 죽이는 꼴이다. 옆구리 비틀 때 시선은 팔꿈치 너머 먼 곳에 둘수록 다리는 낮출수록 자극이 더 크다. 운동한지 얼마 안 됐는데 ‘이 동작 얼마든지 하겠다!’라고 한다면  '시범'인지 '시늉'인지 자세부터 의심해 보자. 잘 굴러가는 자전거가 아니라 덜컹대는 달구지는 아닌지. 크런치(20개 1분)와 바이시클 메뉴버(20개 40초) 운동을 번갈아 3세트씩 하고 있다. 가끔 철봉에 매달려 배를 접기도 한다. 복근 가속도는 물론 척추환자에겐 임자 만난 동작이다.



바이시클 메뉴버와 크런치 동작, 네이버 사진 훔친 게 뜨끔해 추후 직접 촬영 해야겠다!



보조 취급한 복근운동은 다른 운동의 효율성도 높였다. 운전 실력이 늘면 몸은 무의식, 정신은 의식으로 유체이탈이 가능하다. 배를 구긴 상태에서 소리 내어 신문도 읽는다. 낭독이나 발표할 때 울림통도 달라졌다. 뱃심은 다른 습관까지 물귀신 작전을 펼친다. 호흡에도 집중하게 되었다. 복근운동은 호흡이 중요하다. 얼굴 시뻘게질 정도로 용쓰며 상체를 들어올리면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는 수가 있다. 호흡을 내뱉어야 배가 들어가 더 올라간다. 욕심을 내뱉는 긴 호흡이라고나 할까.      


열 받아 뚜껑 열리는 날엔 복근운동이 제격이다. 움직이다보면 땀구멍은 물론 몸의 감각기관들도 함께 열린다. 다리와 상체를 들어 올려 몸은 승리의 ‘V’자를 하고 글을 읽으면 ‘화’가 유체이탈 한다. 눈에 담은 글밥을 입으로도 읽고 귀로도 들으니 감각이 열리지 않고 베길 수가 없다. 굳이 몸을 물속에 담그지 않아도 이 자체가 전신욕이다.         

     

얼굴에 붙이는 마스크팩 마냥 어느 날 배에 식스팩이 생겼다. 내 몸에 근육을 붙여 보니 근육 보는 눈도 생겼다. 배가 논밭처럼 갈라져 있으면 모두가 다 근육인 줄 알았는데 깡말라서 생긴 구역과는 달랐다. 딱딱한 건 다 근육인 줄 알았는데 지방이 잔뜩 껴서 단단해진 뱃살과는 달랐다. 내장지방이 복근을 지지하고 있어 지방이 크는대로 덩달아 단단해졌다. 누가 봐도 배가 불룩한데 이게 다 근육이라고 우기면 곤란하겠다.       


살면서 속이 타는 상황을 피할 순 없다. 그럴 때마다 인상 구기지 말고 배부터 구기는 건 어떨까(설마 ‘구기자’ 열매의 탄생 비밀은 아니겠지). 속은 홀가분해지고 지방은 타들어가 수익이 꽤 짭짤하다. 20대 이후 20년 만에 배를 드러냈다. 어둠의 자식 같던 배, 드리워진 커튼을 이제 열어제쳤다. 기름기, 밀가루 음식과 결별하며 내장지방과 헐렁 티셔츠를 걷어냈다. 커튼 없는 이중창, 속이 다 후련하다.     

 

원기둥 몸이 모래시계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오늘도 몸을 놀린다. 근육 보는 눈도 생겼는데 이젠 사람 보는 눈도, 상황 보는 눈도 좀 생기려나. 배부른 소릴 하는 걸 보니 배보다 배꼽이 크긴 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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