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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May 20. 2020

지속할 수 있는 힘

- 운동 습관이 만든 인조 인간 -

난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미한 스타일이다. 일명 떠벌리기 선수다. 날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나 자신이기에 떵떵거리며 하는 소리다. 두 번째로는 엄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지금까지 한 집 살림이니 모르면 간첩이다. 그런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넌 시작은 좋은데 어째 마무리가 안 되냐?”이다. 엄마에겐 일처리 흔적이 곧 일의 성과다. 그러니 난 시작만 반인 셈이었다. 계획도 짜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까진 다 좋은데 초장에 들인 공으로 나머지를 먹고 사는 성향이었다. 미지근한데서 몸을 오래 담그질 못하고 열탕과 냉탕 사이를 오가는 스타일이랄까. 


진로(적성) 검사지에서도 창의 지수와 끈기 지수가 열탕과 냉탕처럼 나타났다. 그러던 사람이 운동을 3년째 매일 하고 있다. 밀가루 없는 밥상은 끼니 취급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담삼(담백하고 삼삼한) 메뉴에 폭 빠졌다. 그러니  엄마가 한 지붕 밑에서 동물원 동물마냥 날 볼 수밖에. 자다가도 떡이 나올 정도로 몸을 놀리고 있다. 어느 정도 안정권에 진입해 이제 슬슬 자화자찬할 때가 온 것 같다. 습관으로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직장이나 집안 일로 정신이 시달리는 날이면 ‘관성’에게까지 휘둘렸다. 그럴 땐 몸은 바닥에서 ‘녹초 부침개’ 한 판 붙이고 싶다. 입은 단짠(달고 짠) 한 사발이 당긴다. ‘지겹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노래가 나올 지경이다. 음악 없는 몸짓은 운동도 아니라며 헬스를 혐오했다. 반복은 장르 불문하고 싫어해 내 사전엔 재탕과 재방송은 없었다. 입보다 몸이 앞서려면, 또 가늘고 길게 가려면 더 쌘 자극이 필요했다. 


지속하는 힘은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고 했다. 난 음악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일’이 ‘해야 하는 일’에 스며들어야 한다. 음악은 왜 좋을까. 몸이 까딱까딱 하는 걸 보면 리듬감이 있어서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운동은 어떠한가. 일주일이란 물레방아에 근력운동, 유산소 운동, 스트레칭이 돌아간다. 근력 운동은 하체, 등, 가슴을 주로 하고 복부와 어깨는 양념이다. 유산소 운동은 걷기와 계단 오르기를 주로 하고 달리기와 커틀벨 스윙은 양념이다. 스트레칭은 하체(비둘기), 상체(오프닝), 코어(플랭크)를 주로 하고 거북목과 햄스트링은 양념이다. 


먹는 음식은 어떠한가. 과일, 채소, 생선(고기)을 주로 먹고 고구마와 잡곡이 양념 노릇 한다. 밀가루와 뺀질이 같은 기름기 음식에 정 뗀 것만으로도 참 큰 일 했다. 그래서 그램(g)이나 칼로리(kcal)까지 목줄 죄진 않는다. 강제나 의무감이 끼면 몸 안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무법천지가 될 수 있다. 음식을 입에 갖다 대보지도 못하고 살이 찌면 더 억울하다.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이상 상대와의 음식 리듬도 무시 못 한다. 습관을 3년째 고수한 것만으로 의의를 삼는다.  


나와 동거하는 아이들



운동 하나하나에도 리듬이 있다. 내 다리와 심폐 기능은 단거리(1분 이내) 맞춤형인 줄 알았다. 학창시절 오래달리기 시간엔 구경꾼이었다. 나이 드니 달리기 거리도 늘었다. 한번 뛸 때 3km이상 달린다. 회의나 행사 전날 뛰면 희한하게 일도 잘 풀린다. 런닝 머신에 발 대기까지는 여전히 고역이다. 고역보다 더한 걸로 덮어썼다. 바로 리듬이다. 두 발은 4분의2 박자로 다닥다닥 거리고 뒤로 질끈 묶은 포니테일은 좌우로 춤을 춘다. 창에 비친 내 몸이 악보다. 초반에는 귓구멍에 노래를 넣어줘야 발이 움직였다. 이젠 몸이 내는 리듬으로 뛴다. 근력운동은 작용 반작용 리듬을, 스트레칭은 심호흡 리듬을 타고 있다.


음식은 같은 메뉴라도 매번 맛이 색다르다. 운동으로 미각세포와 내장근육이 발달했지만 리듬이 한 술 더 뜬다. 채소 하나만 보더라도 양상추와 피망, 양파, 배추, 케일, 치커리 등등 각자 내는 소리가 다르다. 이들이 어금니와 맞부딪칠 때 음의 높낮이가 다르다. 앞쪽에 열거한 채소들이 소프라노, 뒤쪽 채소들이 알토를 맡는다. 여기에 과일까지 끼면 한 끼 식사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셈이다. 1,100원짜리 양상추를 일주일 내내 먹어도 매번 맛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운동 습관이 식습관을 불렀다. 그 습관들이 자동재생 되니 다른 습관도 틈새 공략한다. 낭독과 필사가 등장해 2년째 리듬 타는 중이다.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굴러 들어온 리듬이 박힌 리듬 빼내는 격이다. 낭독은 목에 힘 주지 않아도 내용에 따라 악센트와 박자가 묻어 나온다. 문장이 악보다. 처음 필사할 땐 펜이 안단테 박자로 종이를 긁었다. 이젠 알레그로 템포로 놀아난다. 피아노와 펜 소리의 화음은 환상적이다. 



펜과 목소리가 리듬 타는 소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단골 뉴스인 미세먼지를 압도했다. 본능 보다 더한 놈을 습관에 심어 놓았다. 뭔가를 해내고 나면 그보다 떨어지지는 말자 생각했다. 비교급인 부등호 전략과 과정의 즐거움이 지속하는 힘을 주었다. 여자 나이 40세부터 근력 손실과 함께 자율신경계가 둔해진다고 한다. 노화로 인한 감소분은 습관으로 보충한다. ‘자연증감율’ 리듬이랄까. 리듬이 반복재생 되는 게 삶이다. 그래서 삶은 파도타기라며 그리 우려먹나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의 두 손 두 발을 묶어 놓았다. 일상의 감사함이 돌림노래가 되었다. 바이러스만 불청객 되리라는 법은 없다. 어느 날 멀쩡하던 내 팔다리가 돌연사 할 수도 있다. 나이 들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손수 할 것인지, 남의 손발을 빌릴 것인지는 내 선택에 달려 있다. 그래도 근력 바이러스는 내 손으로 막아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마터면 일상 날아갈 뻔.            


음악을 들으면 그에 얽힌 추억이 떠오른다. 기억은 머리로 하지 않는다. 기억은 의미와 함께할 때 존재감을 드러낸다. 일상의 리듬은 삶의 의미이자 추억이다. 그 추억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 국가의 소유물이다. 이 한 몸이 얼마나 의미있는 존재인지, 그 소중함이 또 지속성을 이끈다. 이어폰 하나로 나눠 끼고 일상 음악에 함께 리듬 타고 싶어 여기까지 왔다. 


나만의 바이오리듬을 찾는 것, 그게 여행길이다. 

쉬지 않고 가다보면 어느새 길들여진 나를 만난다. 


습관은 일상의 일탈을 막는다. 

습관으로 사람 됐다. 

로보트 마징가H(Habit)로 인조인간 나셨다.






* 자율신경이란?


인체의 혈관 전체(연결하면 지구2바퀴 반의 길이)를 따라 연결된 신경으로 내장기관 전체, 특히 혈액순환을 조절하는 신경이다. 체온 조정과 위장운동, 면역 등도 관장한다. 뇌에서 명령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인체의 중요한 생명유지 장치이기도 하다...남성은30세, 여성은 40세를 경계로 자율신경을 구성하는 2가지 신경인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깨지고, 이후 10년마다 15%씩 활동이 저하된다.


- 죽기 전까지 걷고 싶다면 스쿼트를 하라, 고바야시 히로유키 저 (32~33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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