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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May 15. 2020

운동이 자극한 침샘 근육

맛 근육과 감정 근육까지 빵빵한 나는야 뽀빠이! 

격무를 핑계로 ‘단짠’ 맛 수시로 부르던 때가 있었다. 종일 정신이 털리거나 몸이 쉴 틈 없던 날은 노동의 대가를 ‘단짠’ 음식으로 보상했다. 옹달샘 찾는 토끼마냥 과자 부스러기로 목을 축였다. 사람과 상황을 씹는 대신 간식류를 씹어댔다. 가뜩이나 집과 회사 정수기 옆에는 과자나 쵸컬릿 등이 즐비했으니 물 한 방울 마시지 않는 이상 그 코스를 어찌 지나치랴. ‘나 잡아 잡수’ 하고 누운 그들에게도 출퇴근 도장을 찍었다.   


 '단짠'이란 단어가 달고 짠 음식 하나일 수도 있고 '단것을 먹은 후 짠 것을 먹고 이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먹을 수 있다'는 뜻도 지닌다. 단것을 먹으면 짠 음식을 먹고 싶다는 뜻으로 ‘단짠단짠’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난 그 개념에 충실한 개념 있는 사람이었다. 입 안에 단내가 감돌면 매운 맛으로 화끈하게 마무리했다. 맵기로 유명한 떡볶이 집은 거의 관광을 마쳤다. 달고 맵고 짠 성분이 스트레스에 좋다는 ‘의(疑)학’을 믿었다. 


상황이 이런 식습관을 불렀다손 치더라도 태어날 때부터 혀가 부른 맛은 따로 있었다. 사람들은 통상 고향의 맛, 집 밥이 그리울 때 청국장이나 된장 향을 떠올린다. 내가 느끼는 향수는 코팅지 입힌 윤기 좔좔 흐르는 기름기 음식이다. 튀김류, 제과류, 돈까스, 치킨, 토스트, 케익, 피자, 스파게티, 라면... 이 정도만 적어도 패턴은 눈치 챘을테니 그만 적겠다(침샘 자극되어 종이 비 맞을라). 어떻게 서양 음식만 그리 좋아하느냐 할까봐 하는 소리인데 설렁탕처럼 탕이란 탕도 좋아한다. 비빔밥처럼 한 그릇 음식은  몇 수저로 한 방에 뚝딱이다. 음식 부류인진 몰라도 주류도 한 몫 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이 먹고 가리는 음식이 없다는 기본 틀에는 변함이 없다. 단지 그 안에 든 구성품이 달라졌을 뿐이다. 운동이 내 체형과 체질을 바꾸어 놓았듯이 혀 운동도 새단장했다. 단백질, 야채, 과일이 주를 이루고 탄수화물은 고구마나 잡곡, 과일을 통해 얻는다. 고기나 달걀, 생선은 양념 맛으로 먹었던 내가, 굳이 뭘 뿌리거나 찍지 않아도 결이 주는 감촉과 향을 음미한다. 고기가 서운해 할 정도로 다 똑같은, 거기서 거기라 취급했는데 이젠 부위 하나하나가 가진 개성이 혀와 상호작용을 한다. 


어쩌다 만난 샐러드도 누가 주인공인지 모를 만큼 드레싱 종류에 집착을 했다. 이젠 드레싱을 굳이 뒤집어쓰지 않아도 아삭아삭, 상큼한 맛을 그대로 느낀다. 상큼발랄한 사람이 되는 착각마저 든다. 운동은 몸 전체를 흔든다. 속도 덩달아 움직인다. 근육은 남들 보기 좋으라고 겉에만 들러붙는 게 아니다. 혀, 목구멍, 식도, 위장, 소장, 대장에 이르는 근육까지 건전해진다(구내염, 임파선・편도염, 위장염, 기관지염 등등 길길이 날뛰던 염증 기를 확 꺾어 놓은 원인은 파헤치는 중이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말할 때 찬 물 끼얹는 소릴 한다고 한다. 고단백섬유식이를 몸속에 드레싱처럼 들이부으니 신선함 끼얹는 소릴 할지도 모르겠다. 각종 탕에 밥을 한바탕 말아 먹던 것도 끊고, 빨간 장으로 뒤범벅된 비빔밥도 끊고, 뽀얗게 부풀은 밀가루도 끊고, 간에 기별 갈 정도로 강한 향신료도 끊었다. 남보다는 모르겠고 전보다는 신선놀음을 할 것 같다.


단짠 메뉴도 ‘단(斷)짠’ 했다. ‘단짠단짠’은 ‘담삼담삼’으로 장단 맞춘다.  담백하고 삼삼한 맛으로 산다. 신선놀음이 다 좋은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입이 단백한대신 지갑은 단출해진다는 것. 처음에는 먹던 가락이 있어 한 번에 고기 3인분을 먹고, 달걀 4개까지 깨부수니 인스턴트로 때우던 전보단 씀씀이가 늘었다. 눈치 없이 신진대사까지 활발하다. 뱃속에 적금 붓는 셈치고 다른 지출을 줄이고 있다. 노후에 이자 붙은 몸으로 찾아먹으려고.


몸 근육은 맛 근육과 감정 근육까지 발달시킨다.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건 쓸 재료가 부족해서 그러했을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맛이 있다 없다, 기분이 좋다 나쁘다로 저울질한다. 감정 샘이 그리 풍족하지가 않다. 맛은 기분과도 밀접하다. 즉, 맛은 감정이자 느낌이다. 


입이 오물오물할 때 눈은 휴대폰과 만났었다. 이젠 미각이 전하는 마음을 본다. 심심하다, 씁쓸하다, 얼얼하다, 칼칼하다, 밍밍하다는 맛부터 시큼털털하다, 달콤쌉싸름하다, 비리비리하다, 달착지근하다...는 기분 맛도 담금질 한다. 있는 그대로 너의 맛과 나의 맛이 하나가 된다. 어쩔 땐 감사 맛도 목이 메일정도로 목구멍을 지나친다.   

삶도 ‘담삼담삼’ 리듬에 맞추고 싶다. 느끼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그 삶에 빠지고 싶다. 이 침샘, 어째 마르지 않는 샘인 듯하다. 알코올은 이제 시샘해도 어림없다. 



아 또, 맛과 결 얘기 나오니 입이 또 씰룩댄다. 글쓰기는 다단계임에 틀림 없어.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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