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절 다 갔다, 란 소리가 봄이 오는 소리를 앞지른다. 요즘 부쩍 힘들다는 사람이 많다. 혼자만 잘 지내 보여 그런지, 그동안의 인내 봉오리가 터진 건지 내게 답답함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20대부터 70대까지 상황도 제각각. 배경과 이유는 가지각색이나 공통점은 하나. 마음과 다른 현실이라는 점. 신세 한탄과 푸념으로라도 푼다는 것이다.
환절기 때 감기에 잘 걸리듯 1~2월을 지난 3월이라 더욱 그런가 보다. 방학 지난 학업에, 계획 대비 실행에 드라이브를 걸 시기라서. 좋은 시절은 갔습니다, 아, 나의 님은 갔습니다, 분위기에서 나온 말들은 이랬다.
"진작 여행이라도 다녀올 걸" "신선한 자극이 필요해요"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아요" "골치 아픈 건들로 훌쩍 떠나고 싶어요" "남들은 잘만 쉬는데 나만 바쁜 것 같아요"
발발거리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 성향과 정반대인 조직에 20년 넘게 잘 붙어 있는 내가, 집순이가 된 사연이 있다. 아들 역시 지난 6년간(중고딩) 여행이 남부럽지 않았던 이유다. 애미로서 학원 픽업이라고는 드럼과 클라이밍 밖에 없었으니 공부하느라, 돈에 쪼들려 여행이 뒷전인 건 아닌 셈. 굳이 먼 데 가지 않아도 여행 맛 느낌을 전할까 한다.
* 퇴근길 늦은 시간 오랜만의 안부와 함께 촬영 협조까지 받아 준 <본필라테스>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1. 스위밍 프렙(Swimming Prep)
코어 잡고 첨벙첨벙 수영하는 듯한 "스위밍"이라는 동작이 있는데요. 사전 예비동작인 '프렙' 동작이에요. 무릎으로 앉은 자세(닐링 kneeling position)에서 양팔 머리위 만세로 움직이는 거에요. 몸통은 고정한 채 어깨 관절 안에서의 작은 움직임을 느낄 수 있어요.
마치 몸통은 바다고 양팔로 물방울이 튀지 않게 물장구를 치는 느낌이죠. 어깨가 아닌 팔꿈치나 손목으로 팔을 저으면 '스위밍'이 아닌 관광버스 춤이 되요. 전혀 다르죠. 어깨 면에서 공이 굴러가는 관절 속 느낌을 리드미컬하게 느껴 보세요.
2. 스위밍(Swimming)
프렙(Prep)으로 코어 잡고 물장구 치셨으니 이제 진면목인 항해를 떠나야죠. 엎드려서 슈퍼맨처럼 몸을 붕 띄워 팔다리 모두를 움직이는 거에요. 두둥실 더 뜨는 느낌이 결국 코어 발란스에 도전하는 셈이에요. '보수'라는 둥글고 말캉한 도구에 배를 대고 엎드려요.
맨바닥도 어려운데 얼마나 아슬아슬 하겠습니까. 팔다리를 떼는 것만으로 상당히 어려워 몸은 비행기 모드로 전환된 듯 하죠. 코어를 잔뜩 붙들고 팔다리로 물장구 치는 게 더 힘들지만 여행 느낌으로서는 리얼이에요.
3. 동작 없이 탐험
동작 모양도 해변을 연상케 하지만 몸 안에서의 자극은 새로운 경험으로 작용해요. '아이고, 그럼 차라리 접영 포즈를 취하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전보다 가동범위가 늘어났거나 근육이 꿈틀꿈틀 자극되는 걸 느낄 때 현실을 벗어난 느낌이 들어요. 각성 상태로 끓어오르는 체력을 느낄 때에도 몸 속 여행 기분이에요.
몸을 움직이면 물리적/화학적/심리적 변화를 일으켜 세포들이 몸 속 구석구석을 여행하잖아요. 몸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감각을 깨우면 뭘 더 바라거나 욕망하는 일이 줄어들더라고요. 입으로만 느끼는 '맛'을 전신으로 느낀달까요. 신개념 '맛'집 여행! '새로움'을 먹고 자라는 '뇌' 역시 '몸'과 일심동체랍니다.
이제 대학생이 된 아이. 얼마 전 동아리는 들었는지 물었다. '배드민턴' 동아리에 가입해 이미 활동 중이란다. 작곡이 버킷리스트인 데다 고3때 드럼에 몰입했고 도시건축대학에 밴드 동아리도 있는데 선택한 동아리는 배드민턴이라니.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이가 초6일 때 내가 배드민턴을 가르쳤고 토요일엔 청소년수련관 체육관도 찜 해 함께 쳤던 기억이...
어릴적 배드민턴 크루즈라도 한 걸까.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나를 따라 헬스장도 등록했다. 그때 11kg을 감량하고 몸매와 마음을 여태 유지 중이다. 그때 내게 했던 말도 덩달아 수면 위로 두둥실 떠올라 인용하며 마무리.
얼마 전 함께 운동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엄마, 난 어디로 여행 가지 않아도 좋아. 굳이 어디 데려가지 않아도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내 속도 그랬다. 핏줄 아니랄까 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나 가슴 토할 정도로 소리 지르고 싶었던 곳이 이젠 생각나지 않는다. 현실의 허물을 탁 트인 바다에 벗어 던지고 싶었던 기억조차 바람따라 바다로 떠내려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