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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Jun 10. 2020

지구에서 지구인으로 살아남기

- 유산소랑 체력이랑 먹고 지구에 살으리랏다 -

학창시절 체력장에서 오래 매달리기는 늘 1초였다. 1초 기록 12관왕. 1초는 금메달이 왔다 갔다 하는 숫자다. 내게는 요지부동 숫자였지만. 난 그런 사람이려니 규정하고는 체력장에서 매달리기 종목은 버리는 카드였다. 휴지통 종목으로 카드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오래 달리기다. 운동장 한 바퀴 겨우 돌고 중간에 털썩 주저앉는 사람이었다. ‘여기 돌 굴러 가유’가 아니라 ‘여기 숨 넘어 가유’ 소리치며 중도하차 하는 사람. ‘오래’ 자가 붙은 건 운동 뿐 아니라 매사 그랬다. 몸이 그러니 의지마저 부족해 싫증도 금방 느꼈다. 몸은 기질 탓을 하겠지만.    


마흔까지 입에 달고 산 단어는 “피곤”이었다. 몸은 늘 피곤한데 책임감으로 버티는 것 마냥 습관처럼 내뱉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유산소’란 말을 접했다. 유산소란 이름 그대로 산소를 태우는 걸 의미한다. 아니, 산소 없는 운동도 있나. 그래서 최근에는 유산소니 무산소니  하는 경계가 모호해졌다. 산소를 완전히 태운다는 측면에서 유산소운동 하면 보통 걷기, 달리기, 수영, 자전거, 줄넘기를 떠올린다. 통상 다이어트나 체력에는 유산소, 근력 강화에는 무산소운동을 한다. 똑같은 운동이라도 나의 기초체력에 따라(운동초보자 유무) 유산소와 무산소가 갈린다. 시대가 바뀌고 트렌드가 변하고 산소가 뒤집혀도 흔들림 없는 진리 하나, 유산소운동을 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는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택한 유산소 운동은 달리기다. 인간이 사냥하면서 쫓고 쫓길 때 쓰던, 진화와 함께한  운동 말이다. 전통 말이 나왔으니 내 역사도 짚어 본다. 학창시절 가장 도망치고 싶었던 시간은 오래달리기였다. 20대는 22kg 늘은 몸으로 출산준비운동을 해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통증’을 부를 정도로 무릎이 말썽이었다. 30대는 건강검진에서 골밀도 수치가 적도와 같이 0°를 나타냈다. 골반은 틀어진데다 허벅지는 근육이 없어 팔자걸음이 심했다. 40대 초입까지는 척추협착증과 거북목으로 신경차단술을 받았다. 불부터 끄고 보자 하여 근력운동부터 시작했다. 골골대던 신체 부위를 근육으로 땜질한 후 도전한 유산소운동이 달리기다.


걷기와 자전거는 남녀노소 접근이 가능하고 별도로 시간내기엔 싫증을 금방 내는 내 성향이 허락지 않는다. 수영은 물 공포증에 맞서 싸우고 싶지 않고 전후 준비과정을 포용할만한 부지런함도 없다. 줄넘기는 점프가 주는 메리트가 커도 콘서트 현장이 아닌 이상 위아래로 뛰는 건 흥미가 없다(근력운동에서도 점프스쿼트, 점프런지가 미운털이었다). 그래서 내 몸도  내 정신머리도 뜯어고칠 겸, 일상 패턴에 보조역할도 할 겸 해서 달리기를 선정했다. 만난 지 3년 되었다. 대부분 사무실에서 앉아 지내고, 예측 불가능한 업무 패턴이라 짧은 시간에 고강도로 취약한 부위를 공략하는 건 달리기였다.


달리기는 골반을 중심으로 엉덩이, 허벅지, 배(코어), 허리 근육을 주로 쓴다. 이곳이야말로 ‘핫플레이스(Hot Place)’다. 뒷발이 힘껏 차 주어야 다른 발이 추진력을 발휘한다. 이 때 쓰는 근육이 햄스트링이다. 평소 자세에서 억압받았던 곳이 핫플레이스와 햄스트링이다. 달리기는 자세를 점검할 수 있다. 팔자가 아닌 11자 걸음이어야 뛸 수 있기 때문이다. 걸을 때 스마트폰 보던 습관도 고칠 수 있다. 달릴 때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는 게 좋은데 어차피 런닝 머신 위에서 창에 비친 모습 보며 자세를 점검한다. 포니테일 흔들림과 발소리 강약이 교정 도구다. 곱슬머리로 머릿결도 별로고 머리칼도 부지기수로 빠지지만 긴 머리를 고수하는 이유다.                      


처음 달릴 땐 1분이 왜 그렇게 긴지 5분이 50분처럼 느껴졌다. 모래사장에서 뛰는 것만 같고 물속에서 뛰는 것 같았다. 두 다리는 꿈에서 뛰는 줄 알았을 게다. 뛰다가 손가락은 런닝 머신의 STOP 버튼 위를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5분을 넘기고, 10분을 넘어 40분까지 달릴 땐 눈에서도 땀이 났다. 뛸 수 있는 다리가 있다는 사실에. 학창시절 오래달리기에서 숨 넘어 간다며 주저앉은 건 의지를 양심에 팔아넘긴 꼴이었다. 바깥 환경에서 땅을 딛고 시속 10km를 넘어서는 러너들에겐 코웃음 기록이지만 전에 비하면 개천에서 용 났다. 또 누가 아나. 자연을 배경화면삼아 번호판 붙은 등판 사진이 나뒹굴지.   



작년말 호주 출장지에서 한 유산소운동: 달리기와 노젓기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헬스장에서 이틀에 한번 꼴로 달리기를 했다. ‘나’라는 사람이 재정의 되는 순간 그 길로 습관이 되었다. 어쩌면 코로나19가 사람이 몰린 곳은 자제하고 안에서 뛰던 놈은 밖으로 내모는 사태가 아닌지 모르겠다. 수많은 연구결과에서 자연과, 사람과 함께 뛰는 효과를 그렇게나 들이대도 ‘My way’를 고집했던지라. 달리기는 주말에 만난다. 유산소운동은 ‘의지의 운동’이라 그런지 몸은 추억보존의 법칙이 성립한다. 달리기의 빈틈을 다른 유산소운동으로 대체하고 있다. 월수금주말로 주4회 한다(화목토는 하체, 등, 가슴 근력운동을 한다).


월요일과 금요일은 커틀벨 스윙, 수요일과 일요일은 엎드려 달리기를 한다. 19층 계단 오르기와 8천보이상 걷기는 교집합이다. 매일 하는 운동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니 하는 것이지, 별도로 시간 내는 건 아니다. 어차피 출근하고, 19층 사무실에 올라가 앉으니 운동보단 들르는 꼴이다. 보따리도 적고 점심약속도 없는 날엔 19층 계단을 두 번 오른다. 계단을 오를 땐 달리기에서 ‘핫플레이스’인 엉덩이와 허벅지, 배와 허리 근육을 쓰게 된다. 걷기는 출퇴근에 6천보가 채워진다. 2천보를 채우기 위해 의식적으로 더 움직이게 된다. 달리기가 허벅지를 자극한다면 걷기는 발목과 종아리를 공략한다. 평소와 다른 길을 택한 날엔 1만 2천보가 된다. 걷다가 얻어 걸린 아이디어도 1만2천개 같다. ‘금강산 찾아가자 1만2천보’ 콧노래도 얻어 걸린다.


엎드려 뛰기는 말 그대로 엎드려 팔굽혀펴기 한 자세에서 두 발만 뛰는 것이다. 두 팔이 바닥 신세라 다리는 가슴높이까지 들어올린다. 30개씩 3세트를 하는데 1세트당 30초가 걸린다. 커틀벨 스윙은 폭탄처럼 생긴 커틀벨을 양손으로 잡고 양다리 사이와 배 높이까지 왔다갔다 그네를 태우는 것이다. 12kg의 커틀벨을 이용한다. 유산소와 무산소의 경계는 근육이 감당하는 역치에 달렸는데 커틀벨이 20kg정도 되었다면 근력운동인 무산소가 되었을 것이다. 커틀벨 스윙도 30개씩 3세트를 하는데 1세트당 1분 걸린다. 달리기의 핫플레이스를 제대로 자극시키는 운동이다.  


유산소 운동은 몸속 지방을 태워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살이 빠지는 것보다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은 변신로봇마냥 강철체력이 되는 것이다. 체력이 되니 이렇게 글도 쓰는 거 아니냐며 서론도 길기도 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일주일에 150분을 적당한 강도로 운동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수피의 「헬스의 정석」에서도 기초체력을 위한 트레이닝으로 달리기 같은 중강도의 운동을 20분 내외로 주3-4회 할 것을 권장한다. 유산소 운동을 해 보니 지방 태우는 건 하찮게 보일 정도로 심폐기능의 신비한 세계를 느낀다.     


심장은 1초에 1번 남짓, 하루에 약 10만 번, 평생에 35억 번을 율동적으로 뛰면서 온몸으로 피를 밀어낸다고 한다. 심장의 대동맥이 잘린다면 피가 3미터나 솟구칠 만큼 힘찬 수축을 한다. 피가 온몸을 한 번 도는 데에 약 50초가 걸린다. 다리 근육이 수축할 때 판막 펌프질로 하체의 피가 심장으로 돌아올 수 있는데 건강한 사람은 어깨와 발목의 혈압 차이가 20퍼센트 미만이라며 노팅엄 대학교 의과대학의 쇼반 러프너의 말을 인용했다. (빌브라이슨의 「바디-우리 몸 안내서」, 160p-162p 참조)  


유산소운동을 20분만해도 피가 몸속을 24바퀴 돈 셈이다. 심장과 다리 판막이 협업한 성과다.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을 만나거들랑 발품부터 팔아야겠다. 발에 매몰된 피가 중력을 이겨내고 심장으로 귀환하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심장 근육이 무거워지는 ‘심장비대’라는 질병이 있다. 유산소운동을 하면 심장도 바빠져 비대해질 틈이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삶의 근육이 비대해지면 했지.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입에 마스크를 쓴 것처럼 솥뚜껑 보고도 놀라지 않게 심장에 유산소 마스크를 씌운다.


근력운동이 무게를 순간 포착하는 힘이라면, 유산소운동은 긴 국수 가락을 뽑아내는 힘이다. 호흡에 비유하자면 짧게 ‘훕’하는 들숨은 근력운동, 길게 ‘후’하는 날숨은 유산소운동이다. 유산소운동으로 입에 달고 살던 “피곤”은 “집중”으로 교체되었다. “피곤”을 내뱉을 때보다 일의 가지 수는 늘었지만 ‘집중 지수’가 높아졌다. 피곤으로 치장했을 땐 현재에 미래 걱정까지 끌어다 붙였지만 체력이 현재를 빨아들인다.


체력이 국력이란 말을 이제 실감한다. 체력이 ‘나’라는 사람을 세우고 ‘나라’도 세우니. 자식에게 물려줄 유산으로도 유산소운동이 딱이다. 본인들에게 기대지 않고 산다는데 자식들도 환영할 일이다. 유산소운동으로 산소 같은 여자가 되었다. 탄소 같은 성질 도로 튀어나오지 않게 꾸준히 단속해야겠다. 유산소운동을 건너뛰면 몸에 일산화탄소가 쌓여 누군가를 질식시킬 수도 있으니.


예기치 않은 상황에 부딪쳤을 때, 닥친 상황을 들숨으로 마셨더라도, 지그시 날숨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힘, 그 원천이 지구력이자 유산소운동이다. 지구상에서 지구인으로 온전히 살아남으려면 틈틈이 비축해 놓아야겠다. ‘관계’에서도 지구력이 필요하다. 고맙게도 지인들의 지구력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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