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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19회 전국 미시즈 모델 선발대회

과정이 곧 결과다

by 푸시퀸 이지

세상사.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로 이루어진 인간사. 후자를 몸으로 푸는 인간. 음악과 하나 되거나 마음 몸이 하나 되며 푼다. 듣보잡 경험일 땐 온통 다 풀리기도.


틀을 벗어나면 큰일 나는, 창의력이 끼어 들면 이상한, 조직에서의 답답함을 우연히 뜬 광고(2025년 전국 미시즈 모델 선발대회)로 풀었다.


새로운 시간, 공간, 사람, 지원비도 무료. 콜! 지난 주에 1차심사 합격 통보를 받았다. 오늘은 예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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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인상이 요 모양 요 꼴, 대회에선 무조건 웃자!


6개월 간 머리 잡초는 허리춤에 닿을 지경, 드라이 받으려고 오늘 잘랐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머리도 감겨 주고, 좋은 트리트먼트도 발라 주고 두피 마사지까지 톡톡히 힐링 했다.


너무 오랜만에 본다고, 빗이 내려가지 않는 곱슬부슬머리를 다리미질 해 주었다. 머리 자를 때 드라이만 하는 걸 고대기까지 말아 주었다. 1년에 꼴랑 두 번 오는 손님에게 이런 서비스까지 감사할 따름이다. 메이크업 디자이너 실장님도 오랜만에 본다며 눈썹 손질 만원을 받지 않고 산신령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에게 또 이런 친절을.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6시에도 구름 눈썹 사이로 태양 눈동자가 점점 커지는 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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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도 아닌 예선전인데, 생얼로 갈까. 어쩌다 한 번인데 사기도 뭐 하고 하기도 귀찮고...<올리브영>에 감사를 표한다. 곳곳에 놓인 샘플로 얼굴도 찍어 바르고 눈 두덩이도 문대고, 눈썹도 그리고, 마스카라도 하고, 립밤까지...화장을 마쳤다. 에너지바 1개 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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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이를 이식해야 할 만큼 심각한 길치이자, 뭐 좀 먹으려고 30분 일찍 도착했다. 서울YWCA 건물이 보이는 곳으로 공원을 가로질렀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풀밭에 남성이 쓰러져 있었다. 할아버지인데 돌아가신 건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니 손 좀 잡아달라고 소리쳤다. 막걸리 통이 주변에 나뒹굴고 술냄새가 진동했다. 혼자 일어설 수 없다고 손을 잡아달라 애원 했다. 할아버지 등 쪽에서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앞으로 가 손 잡고, 힘 다해 상체를 일으켰다. 벤치 위에 앉히는 건 역부족이었다. 술로 늘어지는 힘-내가 당기는 힘, 작용-반작용.


20대로 보이는 남성이 멀리 지나가는 게 보였다. "저기요! 저 좀 도와 주세요" 크게 소리쳤다. 젊은이는 오더니 날 바라보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물었다. 내가 앞에서 할아버지 팔 잡고 들어 올릴 테니 젊은이는 등 뒤에 가서 할아버지 겨드랑이에 양손 끼워 들라고 했다. 하나, 둘, 셋! 영차!! 성공. 할아버지 신발까지 안내 하고 현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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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앞에서 힘 자랑 좀 하고 점심을 안 먹었더니 팔이 좀 후들거렸다. 미시즈 대회는 오후 1시30분부터 4시까지다. 선착순 입장이었다. 등록 접수대에서 이름, 나이, 지역, 4조(40/50대 구간) 적고 들어가라는데 안 되겠다. 잠깐 나가 에너지바를 욱여 넣었다. 볼이 터져라 정적 깨며 와그작와그작 씹는데 반짝이 드레스 입은 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옷이 너무 꽉 끼어 내게 지퍼 좀 올려 달라고 했다. 내 팔 힘과 악력이 아니었으면 정말 허리부터 목까지 이어지는 지퍼 상행선은 지연될 뻔 했다. 내게 손을 내민 사람들에게 인정 받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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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실에 있다가 6명씩 심사장으로 들어갔다. STAFF은 "다음 조 들어 오세요. 절대 떨지 마세요. 다들 떨지 마세요!" 강조 했다. '인터뷰 내용은 현장 배포'라더니만. 미리 알려줬음 준비 부담 있을 텐데 참 다행이다. 사회자 2명, 심사위원 8명이 디귿자로 앉았다. 진행 맡은 남성 분, 유머감각이 있었다. 난 웃음을 못 참는 게 문젠데 사회자는 웃으라고 계속 안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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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시간. 심사위원만 마이크가 있고 일렬로 선 우린 마이크가 없었다. 복식호흡 하고 혹여 들리지 않을까봐 군인 모드로 내가 첫 테입 끊었다. 자기소개 들어 보니 모델 학원 출신이 꽤 있었다. 워킹 등 매력 느껴 오늘 대회 지원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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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워킹 시간. 평소 내가 어떻게 걷는지 알아차림 시간으로 삼자. 안에서 방송이 나왔다.

"이지님, 워킹!"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정렬에 몰입해 대회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한마디 하셨다.


"음악이 흐르면 그에 따라 입장하는 건데 음악도 없이 벌써부터 들어 오시네요. NG NG 다시~"


다시 돌아가 하는 사람 나 1인.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빵 터져 너무 크게 웃었다. 그 소리에 놀라 심사위원님들도 웃고... 어딜가든 어리바리.


3차 어필 시간. 심사점수에는 반영하지 않겠단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어필할 사람 손들란다. 5초,

"5, 4 ....."

"저요!"

"이지님 나오세요"


"NG도 당연하게 받아 들이는 당근 이지!

(웨이브 댄스를 보여 드리고) 제법 이지?

(바닥에서 정렬 맞춰 푸시업) 반전 이지!

이상 이지!! 였습니다" 하고 들어왔다.


유머감각 진행 말씀에 또 빵 터졌다. 나만 웃긴가? 다들 안 웃긴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했던 여정, 죽어도 여한이 없는 느낌,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하루였다. 과정이 즐거우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 또 한번 절절히 느꼈다.


본선 진출하면 새로운 경험이라 좋고 아니면 휴가 내고 원주에서 올라가지 않아 좋고. 이러든 저러든 63세 톰 크루즈처럼 미션 임파서블이 인생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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